'광막한 광야에 달리는 인생아, 너의 가는 곳 그 어데이냐, 쓸쓸한 세상 험악한 고해에, 너는 무엇을 찾으려 하느냐-눈물로 된 이 세상에 나 죽으면 그만일까, 행복 찾는 인생들아 너 찾는 것 허무' '웃는 저 꽃과 우는 저 새들이, 그 운명이 모두 다 같구나, 삶에 열중한 가련한 인생아, 너는 칼 위에 춤추는 자로다-눈물로 된 이 세상에 나 죽으면 그만일까, 행복 찾는 인생들아 너 찾는 것 허무'
'사의 찬미'는 죽음의 정서를 노래했다. 허무와 자기소멸의 충동이었다. 윤심덕이 부른 '사의 찬미'는 '악의 꽃'이다. 식민지 신여성이었던 윤심덕의 삶 자체가 '악의 꽃'이었다. 세기말 프랑스의 상징주의 시인 보들레르의 시집 '악의 꽃'과 데카당스적 감수성이 일치하기 때문이다. 죽음과 퇴폐를 미적 대상으로 승화시키려 했던 근대적 인간의 절망적 의지의 표현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최초의 대중가요로 꼽는 '희망가'처럼 '사의 찬미'도 번안곡이다. 루마니아 작곡가 이바노비치의 클래식 명곡 '다뉴브강의 잔물결' 일부에 가사를 붙인 것이다. 경쾌하게 흐르면서도 장엄한 선율을 머금은 왈츠곡이 사뭇 비장하게 들리는 것은 윤심덕이 '사의 찬미'에 차용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일제강점기 '사의 찬미' 대유행 또한 희대의 정사(情死)사건과 맞물려있다.
식민지 최고의 엘리트인 일본 유학파 남녀의 동반 자살이었다. 최초의 소프라노 성악가인 윤심덕이 유부남이었던 극작가 김우진과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비관하며 관부(關釜)연락선 밤바다 위에 몸을 던진 것이었다. 사랑의 완성을 위한 죽음이었다. 사건은 신문의 대서특필과 함께 엄청난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다. 신파극을 초월하는 비극미는 그렇게 공전의 히트곡이 되었다.
'사의 찬미'는 가수가 떠난 뒤 피어났다. 노랫말은 염세적이고 비극적인 세계관을 담고 있다. 그것이 식민지 시대의 암울한 집단 정서를 건드린 것이다. 매혹적인 절망감은 조선판 '악의 꽃'이 되었다. 망국민의 감성이 대중가요의 정서로 표출된 것이다. '사의 찬미'가 1920년대의 실존적 허무라면, 고복수의 '사막의 한'은 1930,40년대 유랑과 상실의 누적된 신음이었다.
'자고 나도 사막의 길 꿈 속에도 사막의 길, 사막은 영원의 길 고달픈 나그네 길, 낙타등에 꿈을 싣고 사막을 걸어가면, 황혼의 지평선에 석양도 애달퍼라'. '사막의 한'은 '사의 찬미'와 시대와 서사를 달리하지만 일제강점기를 지배한 염세주의 정서를 공유하는 노래이다. 삶을 긍정할 수 없었던 어두운 시대가 낳은 우리 대중가요사의 순도 높은 데카당스적 발현이다.
윤심덕은 개인의 사상과 욕망 그리고 자유를 인식한 신여성이었다. '사의 찬미'는 근대적 자아의 각성이자 파국이다. 윤심덕이 낙화(落花)한 대한해협의 일본식 명칭 '현해탄'(玄海灘)도 '검푸른 바다의 여울'이란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것은 지리적 공간을 넘어 삶과 죽음이란 실존적 경계의 바다가 된다. 윤심덕의 현해탄 투신은 초월을 지향한 비상이었을까, 현실에 좌절한 추락이었을까.
'산산히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사의 찬미'는 김소월의 '초혼'을 떠올린다. 죽음을 부르며 사랑을 완성하려는 시적 의지가 노래의 서정과 동일선상에 있다. 나라 잃은 설움과 못 이룰 사랑이 파생시킨 염세주의의 극단이다. 불운한 시대를 살았던 근대 지식인들의 고뇌와 예인들의 몸부림, 죽음을 초월과 해방으로 사유했던 그 처연한 성음을 '사의 찬미'에서 듣는다.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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