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70대 산업화 시기, 피와 땀이 서린 산업현장은 그 자체로 대한민국의 근현대사를 온몸으로 증언하고 있다.산업유산을 단순히 과거의 흔적으로 남길 것이 아니라, 또 다른 문화·관광자원으로 재해석할 수 있는 종합적 계획이 절실하다. 본지는 대한민국 근대 발전을 이끌었던 대구경북이 가진 산업유산들의 가치를 재조명한다. <편집자 주>
◆ "공순이들의 꿈의 터전, 오운여상"
"제가 일해 번 돈으로 오빠, 남동생 학비까지 감당했죠."(뿌듯^^ 뿌듯^^)
산업화 시대(1970~80년대)의 어린 여공들을 이렇듯 산업현장에서 일하며, 공부하며 힘든 여고 시절을 보냈다. 낮에는 공장 생산 라인에서 일하고, 퇴근 후에는 교복으로 갈아입은 후 배움에 대한 간절함으로 피곤도 잃고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밤늦게 수업을 들었다. 이들은 고된 노동 속에서도 오직 가족의 생계와 본인의 꿈을 위해 3교대 근무와 학업을 병행했다.
1979년에 개교한 구미 오운여상은 코오롱 부설 산업체 학교로 여공들의 요람이었다.창업주인 오운(五雲) 이원만 회장을 아호를 따서, 학교명에 붙였다.이원만 회장은 밤늦게 공장 기숙사를 둘러보던 중, 피곤한 몸을 이끌고 희미한 불빛 아래에서 책을 읽거나 영어 단어를 외우는 여공들의 모습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아 학교 설립을 서둘렀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이처럼 오운여상은 단순히 인력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가난 때문에 꿈을 포기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한 이 회장의 진심어린 보상과 배려에서 시작된 결실이었다.
회사는 수업료 면제는 물론 기숙사에 식비까지 무료로 제공했다. 학교에는 다채로운 동아리도 있었다. 특히, 배구부는 전국 대회에 입상할 정도로 명성을 떨치기도 했다. 하지만 산업구조의 재편(자동화 설비 도입)으로 공장의 인력 수요가 감소로, 학생 모집이 어려워지면서 2000년 2월 마지막 졸업식으로 결국 폐교했다.만 20년 동안 3천116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근대화의 산증인, 추억의 기획전
(주)코오롱 인더스트리는 3년 전 옛 자료를 수집하고, 졸업생들로부터 당시 학용품, 실습도구 등을 기증받아 오운여상을 문화 전시장으로 변신시켰다. 1층에는 학교의 역사를 담은 전시관을 비롯해 당시 교실과 실습실 등을 둘러볼 수 있도록 꾸며놨다.
구미시(시장 김장호)는 오운여상을 산업유산에서 문화유산으로 탈바꿈 시키는데 앞장 섰다.국비 공모 사업 '이목구미(耳目口味), 대한민국 산업화 1969' 스토리텔링 중심의 관광 콘텐츠 및 연계 프로그램 개발을 통해 근대 산업역사의 흔적이 구미공단에 살아숨쉬고 있음을 보여주고자 했다.
2023년 2월 16일에는 졸업생 25명을 초청해 '추억의 기획 전시관'을 열기도 했다.당시 졸업생들은 이제 중·장년이 되어, 추억에 새록새록 젖었다. 어느덧 50대 후반이 된 한 졸업생은 "당시 힘든 학창시절이었지만, 늘 곁에 친구가 있어 든든했다. 부모님 역할까지 해준 선생님께도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고 회고했다.
이달초 취재진을 안내한 권승재 (주)코오롱 인더스트리 인력지원팀 주임은 "이곳을 둘러보면, 아직도 당시 공순이들의 요람이 된 이 학교의 온기와 열정이 느껴진다"며 "소중한 산업유산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많은 영감과 교훈을 던져주는 같다"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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