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간의 패권 전쟁이 인공지능(AI)이라는 거대한 파도를 타고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이 격랑 속에서 한국 경제는 뜻밖의 기회를 맞이했다. 한국 증시가 5,000(코스피지수) 고지를 목전에 두고 수출과 무역흑자가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는 기염을 토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반도체 설계 기술은 최고지만 제조 역량이 부족하고, 중국은 거대한 공장은 가졌지만 핵심 기술이 봉쇄당한 형국이다. 첨단 메모리 반도체의 기술력과 생산 공장을 동시에 거머쥔 한국이 AI 반도체 '슈퍼 사이클'의 유일한 수혜자로 떠오른 것은 그야말로 천행(天幸)이다.
최근 우리 정부와 시장의 최대 고민은 경기 침체, 환율 약세, 그리고 이른바 '서학개미'로 불리는 개인 투자자들의 거센 자본 유출이다. 해답은 멀리 있지 않다. 대만은 오로지 파운드리 반도체라는 단 하나의 강력한 엔진으로 7% 성장을 달성하며 1인당 국민소득에서 한국을 추월했다. 이제 단순히 덩치를 키우는 '넘버(Number) 1'의 시대는 저물었다. 세계가 그것 없이는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는 '온리(Only) 1', 즉 대체 불가능한 산업을 보유하느냐가 국가의 생존과 환율 방어의 핵심 변수가 되었다.
한국 증시가 5,000을 넘어 5만 포인트를 향해 가기 위해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같은 'Only 1' 기업이 최소 4개는 더 출현해야 한다. 증권가에서는 '달리는 말 위에 올라타라'고 조언한다. 국가 산업 정책도 이와 궤를 같이해야 한다. 잘 달리는 말에게 더 힘을 실어주고 박차를 가해야지, 동력을 잃고 쓰러져가는 산업 연명하는 데 국력을 낭비해서는 미래가 없다.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지만, 돈은 낮은 수익률에서 높은 수익률로, 즉 저성장 국가에서 고성장 국가로 무섭게 흘러간다. 세계 평균 성장률을 한참 밑도는 1%대 성장에 머문다면 자본 유출은 그 어떤 나라님도 막을 수 없다. 서학개미가 국내 주식을 팔고 떠나는 반면, 영리한 외국인 투자자들이 한국의 반도체 기업 만을 골라 담는 현상은 우리에게 명확한 메시지를 던진다. 한국 경제의 체질을 세계 평균 이상의 3%대 성장 국가로 탈바꿈 시키지 못한다면, 환율 안정과 증시 부양은 공염불에 불과하다.
과거 제조업 분야에서 우리는 중국에게 '다거(형님)'라 불리며 대접을 받던 시기가 있었다. 그러나 이제 반도체를 제외하고는 중국에 우위를 점한 분야를 찾기 힘들다. 못하는 분야를 붙잡고 한숨 쉬기보다, 우리가 압도적으로 잘하는 것을 더욱 압도적으로 만드는 선택과 집중의 미학이 절실한 시점이다.
가장 우려스러운 지점은 정치권의 행보다. 선거철만 되면 표심잡기용 '반도체 공단 분할 이전'과 같은 포퓰리즘적 공약이 어김없이 등장한다. 집적과 속도가 생명인 반도체 산업의 특성을 무시한 채, 지역 균형 발전이라는 명분만 앞세우는 것은 지역 사회에는 '희망 고문'을, 국가 전략 산업에는 '치명타'를 입히는 자해 행위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메모리 초호황은 냉정하게 말해 우리가 잘해 만든 결과물이라기 보다는 미·중 전쟁이 일으킨 거대한 밀물에 운 좋게 서 있었던 덕분이다. 그러나 썰물은 반드시 온다. 호황의 단맛에 취해 그저 굴러들어온 노다지를 나눠 먹을 지에만 골몰한다면, 썰물이 닥쳤을 때 가장 먼저 무너질 것이다.
미·중 전쟁이 우리에게 준 이 천행(天幸)을 지속 가능한 국가 성장의 토대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초격차' 구축에 모든 역량을 결집해야 한다. 다른 경쟁국들은 황금알을 낳기는 커녕 알도 못 낳는 닭에게 막대한 보조금을 퍼주며 어떻게든 산업을 육성하려 혈안이 되어 있다. 이런 엄중한 상황에서 우리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다리를 찢어 성장을 가로막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정책의 모든 초점은 다시 '성장률'에 맞춰져야 한다. 성장률이 회복되면 환율, 증시, 내수 문제는 실타래 풀리듯 해결될 것이다. 당리당략이 아닌 오직 국익의 관점에서 반도체 산업을 보호하고, 대체 불가능한 'Only 1' 기술력을 확보하는 것만이 천행을 지속시키고 불행을 막는 유일한 탈출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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