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9년 6월 26일,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주석이자 독립운동의 거두였던 백범 김구 선생이 서울 경교장에서 육군 소위 안두희의 총탄에 서거한 사건은 한국 현대사의 가장 비극적인 장면 중 하나이다. 이 사건의 배경에는 단순한 개인의 범행을 넘어 당시의 복잡한 정치적 갈등과 국제 정세가 얽혀 있다.
◆ 이승만과의 노선 차이
백범 김구 선생의 서거 사건의 가장 핵심적인 배경에는 남한 단독 정부 수립을 둘러싼 이승만 전 대통령과의 극심한 대립에 있다. 이승만은 남한만의 단독 정부 수립을 주장했으나, 김구는 "삼천만 동포에게 읍고함"이라는 성명을 발표하며 동족상잔의 비극을 막기 위해 남북 협상을 추진했다.
1948년 김구·김규식은 평양을 방문해 김일성 등 북한 지도자들과 회담을 통한 통일정부 수립을 시도했으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통일정부 수립이 수포로 돌아가고 1948년 남한만의 단독정부가 수립되자 김구 선생은 경교장 칩거에 들어 갔다. 그 결과 국내 우익 세력으로부터 "공산주의자에게 이용만 당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는 빌미가 되었다.
◆ '한국독립당 당원'이던 육군 소위…초동 발표는 '내부 갈등'
안두희는 김구 피살 석 달 전인 1949년 3월, 32세의 나이에 육군 포병 소위(육사 8기)로 임관했다. 임관 한 달 뒤 그는 한국독립당 조직부장 김학규의 주선으로 비밀 당원이 됐다. 김학규는 안두희를 '크게 기대되는 일꾼'이라고 추천했고, 그 덕분에 안두희는 여러 차례 김구와 독대할 기회를 얻었다.
안두희는 사건 직후 옥중에서 쓴 일기를 엮어 '시역(弑逆)의 고민'이라는 책을 냈다. 여기에는 범행 직전 김구에게 던졌다는 질문들이 적혀 있다. 남북협상 이후의 행보를 문제 삼으며 "왜 미군 철퇴를 주장하고, 미국 원조를 거부하며, 유엔의 처사와 5·10 선거까지 부인하느냐", "왜 정부를 부인하고 이승만을 매도하느냐"는 취지였다. 김구가 '정치적 혼란을 조장한다'는 논리를 범행의 명분으로 내세운 대목이다.
1994년 국회 법사위에 '백범 암살 진상 조사 소위원회'가 설치되자 안두희는 증인으로 소환됐다. 중풍을 앓던 77세 안두희는 들것에 실려 출석했으나 구두 증언이 어려웠고, 대신 중풍 이전 녹음해 둔 카세트테이프 121개 분량의 '마지막 증언'을 제출했다.
사법 처리 과정도 의혹을 키웠다. 1949년 8월 군사법원은 안두희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지만, 그해 11월 15년형, 1950년 3월 10년형으로 감형됐다. 1951년 2월 잔형 면제 처분이 내려졌고, 1953년 2월 복권됐다.
사건 직후 정부·군 당국은 이 사건을 '한국독립당 내부 갈등'으로 규정하는 방향으로 설명을 내놨다. 국방부는 안두희가 김구와 노선을 두고 언쟁을 벌인 끝에 범행에 이르렀다는 취지로 발표했다고 기록돼 있다. 그러나 발표 직후부터 정치적 의미를 축소하려 한다는 비판이 나왔고, 배후 의혹도 확산됐다. 단독·우발 범행이라는 주장과 조직적 개입을 의심하는 시각이 맞서며 논쟁은 길게 이어졌다.
◆ 120만 명 조문, 첫 국민장…예우는 있었고 의혹은 남았다
김구 피살 소식이 전해지자 서울은 곧 애도에 잠겼다. 열흘 동안 조문객이 120만 명에 달했다. 경교장 주변과 도심 곳곳에는 조문 행렬이 이어졌다. 사회 각계의 추모도 멈추지 않았다.
장례는 1949년 7월 5일 국민장으로 치러졌다. 장소는 서울운동장이었다. 대한민국 건국 이후 처음 열린 국민장이었다. 유해는 효창공원에 안장됐다. 효창공원은 본래 왕실 묘역이었으나, 해방 이후 독립운동가 묘역으로 의미가 옮겨갔다. 김구는 생전에 이봉창·윤봉길·백정기 의사의 묘를 이곳으로 옮기는 데 힘을 보탰고, 결국 자신도 그 곁에 묻혔다.
1995년 국회 '백범 김구 선생 암살 진상 조사 보고서'는 사건을 "우발적 단독 범행이 아니라 면밀히 준비·모의된 정권 차원의 범죄"라는 취지로 정리하며 조직적 개입 가능성을 강하게 제기했다. 다만 이에 대해 증거의 한계를 지적하는 견해도 존재한다.
당시 한반도는 이미 두 정부 체제로 굳어져 있었다. 1948년 8월 15일 남한 정부 수립, 9월 9일 북한 공화국 선포 이후 정통성 경쟁이 격화됐다. 김구의 입지가 좁아지던 시기, 그의 암살은 단순한 개인 범행을 넘어 정치 사건으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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