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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부-김수용] 에너지 주권(主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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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용 논설실장
김수용 논설실장

베네수엘라는 실패한 산유국으로 묘사되지만 사실 한때 미국 에너지 시스템의 핵심 내부자였다. 기술 혁명 덕분에 저렴한 비용으로 황 함량이나 점도가 낮은 경질유(輕質油) '셰일 오일'을 뽑아내면서 미국은 세계 최대 원유 생산국이 됐다. 하지만 미국 걸프만 일대 정유 시설 상당수는 중질유(重質油) 처리에 특화돼 있다. 확인된 원유 매장량 1위 국가 베네수엘라가 바로 중질유를 생산한다. 넘쳐나는 경질유는 수출하고, 처리가 까다로운 중질유를 수입해야 미국의 정유산업 경쟁력, 석유제품 수출국 지위, 에너지 패권을 유지할 수 있다. 베네수엘라를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트럼프가 '사야 할 자산(資産)'으로 표현한 그린란드는 전기차·풍력·국방 산업 등 미래 기술의 핵심 전략 광물인 희토류를 둘러싼 경쟁의 최전선에 있다. '얼음 덩어리' 그린란드는 기후 변화로 빙하가 녹아 북극항로가 열리면서 희토류·우라늄·리튬 등이 집중된 땅으로 주목받고 있다. 남부 크바네필드 광산은 방대한 희토류와 우라늄 매장량으로 유명하다. 그린란드 의회가 2021년 고농도 우라늄 채굴 금지법을 통과시키면서 현재 채굴 자체가 불가능하지만 트럼프의 거래에 따라 바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에너지의 정치성이 노골적으로 드러난 장면은 1977년 워싱턴에서다.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은 취임 첫해 연설에서 에너지 위기를 "전쟁에 상응(相應)하는 도덕적 시험(Moral Equivalent of War)"으로 규정했다. 베트남전 직후 오일 쇼크 충격 속에 카터는 석유 부족을 시장 문제가 아니라 국가 생존과 공동체 결속을 시험하는 정치적 위기로 바꿨다. 연료를 전략 자산으로, 에너지 정책을 안보 문제로 선언한 것이다.

덴마크가 추진하는 북해의 대규모 인공 에너지 섬은 재생에너지 인프라 허브를 목표로 한다. 초기 3GW 용량을 1천만 가구 규모의 전력 공급이 가능한 10GW로 키워 유럽 전체 재생에너지 주권을 쥐겠다는 의도다. 에너지의 생산·집중·분배가 이뤄지는 곳에서 정치적 갈등은 불가피해 보인다. 현대 에너지 경쟁은 형태만 바뀐 전쟁에 가깝다. 제국은 사라졌지만 연료를 둘러싼 정치적 계산은 유효하다. 에너지는 경제의 얼굴로 등장하지만 결정적 순간, 정치의 손에 쥐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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