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가 광야에 섰다. 비상대책위원장으로 들어와 당 대표까지 지낸 당에서 정치 입문 불과 769일 만에 축출됐다. 급격히 커진 체급 만큼이나 '화양연화' 시절은 짧았고, 이내 정치생명은 단절의 기로에 놓였다. 법무부 장관으로 전격 발탁되며 들었던 '윤석열 정부의 황태자'라는 평도 옛말이 됐다.
한 전 대표는 제명 확정 직후 지지자들에게 "우리가 보수의 주인"이라며 "반드시 돌아오겠다"고 했다. 국민의힘과의 완전한 결별은 없다는 메시지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다만 '어떻게'를 설명하지는 않았다. 다양한 가능성이 제기되지만 승산이 있다는 평가는 쉽게 나오지 않는다.
당 안팎에선 장동혁 현 대표를 비롯한 지도부의 대응이 무리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하지만 한 전 대표의 미진한 대처와 리더십의 부재에서 파국의 원인을 찾는 반론도 적잖은 게 현실이다. 아마 어느 쪽이든 몇 년 전에는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에게 '되치기'를 선사하던 한 장관에게 환호를 보냈을 테다. 한 전 대표는 이랬던 '당심'이 갈라지고 돌아선 이유를 어떻게 읽고 있을까. 앞으로 한 전 대표가 보일 행보에 그 풀이가 담겨있을 것이다.
◆張 복귀 첫 날 '韓 축출' 공식화…'사생결단' 내홍 최고조
국민의힘 최고위원회의는 지난 29일 한동훈 전 대표에 대한 제명을 의결했다. 지도부 9명 중 반대 1(우재준 의원), 기권 1(양향자 의원)의 소수 의견이 있었을 뿐 찬성 의견이 압도적이었다.
지난 2024년 11월쯤 불거진 이른바 '당게 사태'는 한 전 대표의 정치 여정 절반을 교묘하게 따라다니며 발목을 붙잡았다. 한 전 대표는 가족들이 윤 전 대통령 부부 등을 비난하는 게시물을 무더기로 올렸다는 의혹을 인정하지도, 그렇다고 확실히 부정하지도 않는 모호한 태도로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갉아먹었다.
장 대표 취임 이후 본격화한 진상조사의 결과는 의혹이 대체로 사실이라는 것이었다. 이는 한 전 대표의 제명 징계로 귀결됐다.
다만 당 안팎에서는 징계를 내릴 수는 있어도 최고 수위 징계는 과도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관련 보도나 평론에서도 '공멸' '자폭' '사생결단' 등의 표현이 쏟아졌다.
당 내에서는 친한계와 소장파 의원들을 중심으로 강한 반발이 터져나왔다. 친한계 의원 16명은 제명 발표 당일 기자회견을 열고 지도부 총사퇴를 요구했고, 개혁성향 의원 모임 '대안과 미래'도 공동 입장문을 통해 제명 의결을 비판했다.
급기야 당 내 온건파로 분류되는 오세훈 서울시장마저 "장 대표가 처참한 결정을 내렸다"며 "당 대표 자리에서 물러나 그 책임을 져야 한다"고 일갈했다.
지방선거까지 남은 기간은 단 넉 달. 당이 지선 대비에 돌입해야 할 시기다. 야권 일각에서는 당권파 중심의 '친한계 찍어내기'가 이후로도 계속될 경우, 지선 주자들의 공천 갈등과 겹쳐 당이 '사분오열'의 위기로 흘러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치 초보·검사 마인드 한계…벽창호 리더십" '韓 책임론' 수면 위로
반면 당 주류에서는 한 전 대표의 책임을 따지는 목소리가 더 크다. 제대로 된 의혹 인정이나 사과 없이, 상황을 끝없이 악화한 것은 한 전 대표 본인이라는 의견이다. 당게 사태가 불거진 초반에는 친한계 내에서도 사과를 권하는 목소리가 나왔음에도 한 전 대표가 이를 듣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 전 대표에겐 정치 초보·벽창호라는 꼬리표가 늘 따라붙었다. '대화와 타협'이라는 정치인의 기본 소양을 도통 탑재하지 못하고, '옳고 그름'으로 양분하는 검사식 사고를 고수한다거나 주변의 충언을 새겨듣지 않는다는 비판이 매번 제기된 탓이다. 한 전 대표가 이번에도 이 같은 성정을 비슷하게 드러냈다는 평가다.
한 전 대표가 '수습'을 거부한 책임을 무겁게 물었다는 지적도 있다. 먼저 숙이는 태도를 취하며 최악의 사태를 막는 수는 얼마든지 있었다는 주장이다. 이를테면 제명 징계 이후 재심을 신청하고 사건의 진상을 소상히 공개하거나, 장 대표의 단식장을 방문하는 등의 봉합 제스처를 취하는 선택지가 언급된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이에 대한 고려는 없이, 친한계 의원들의 지도부 공개 비판이나 지지자들의 항의 집회를 방관하며 '강대강' 대치를 이어갔다. 국민의힘 의원들 사이에서는 한 전 대표의 제명 의결에 이 같은 장외 여론전 시도가 결정적이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제명 의결을 비판한 대안과 미래 역시 입장문에서 한 전 대표를 향해 "이번 제명을 계기로 희생과 헌신에 대한 고민과 함께 성찰이 있길 바란다"고 꼬집었다.
◆가처분·무소속 출마·백의종군?…"반드시 돌아온다"는 약속 어떻게 지키나
국민의힘 당헌·당규에 따르면 제명된 한 전 대표는 향후 5년간 최고위원회 의결 없이는 복당할 수 없다. 당 주류에서 다시 받아주지 않는 이상, 이번 지선·국회의원 보궐선거는 물론 오는 2028년 총선과 2030년 대선에도 국민의힘 후보로는 출마할 수 없는 셈이다.
정치권에서는 한 전 대표가 취할 수 있는 행보를 ▷취소 소송이나 가처분 제기 등 법적 대응 ▷지선 및 국회의원 보궐 선거에 무소속 출마 ▷개인 자격으로 국민의힘 후보 지원 유세 정도로 본다. 개인 지지세가 상당하기는 하지만 신당을 창당하기에는 부족하고, 이준석 전 대표가 이끄는 개혁신당으로 합류하는 시나리오도 현실성이 크게 떨어진다는 것이다.
이중에서도 가장 가능성이 높다고 점쳐지는 것은 '무소속 출마'다. 홍준표 전 대구시장이나 유승민 전 의원 등 당에서 외면한 유력 정치인들도 무소속 출마를 통해 당선된 뒤, 당으로 복귀한 선례가 종종 있다. 사활을 걸고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증명하는, 일종의 승부수다.
문제는 한 전 대표에게 이렇다 할 정치적 기반 지역이 없다는 점이다. 서울 출신의 한 전 대표는 다른 지역과의 연결고리가 검사 시절 발령지였다는 점, 본관이 충청도(청주 한씨)라는 점 정도로 약하다.
'보수의 심장' 대구를 지역구로 둔 현역 국회의원들의 지방선거 출마 선언이 잇따르면서, 한 전 대표가 홍 전 시장이나 유 전 의원처럼 대구에서 보수 유권자들의 선택을 받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하지만 이들과 달리 한 전 대표는 대구에 아무런 연고가 없다는 점에서 당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반론 역시 적잖다.
이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한 전 대표가 서울시장에 도전해야 한다는 조언이 힘을 받고 있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는 29일 "조언한다면 서울시장 무소속으로 출마하는 정도가 본인의 변수를 키울 선택이 될 것"이라고 제안했다.
전용기 민주당 의원 역시 "결국에는 국민의힘도 서울시장 선거를 이기기 위해서는 지지층 결집이 필요한데, 한 전 대표가 무소속으로 출마한다면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표가 그쪽으로 몰려갈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라며 "(선거 구도가) 5대5인데, 한 전 대표가 1에서 2라도 가지고 간다면 국민의힘은 그대로 선거 질 텐가. 어떻게해서라도 한 전 대표와 단일화를 선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 전 대표의 과거 행보를 종합할 때 법적 판단을 구할 가능성도 있다는 관측이 일부 있지만, 성공할 확률은 낮아 보인다는 게 정치권·법조계의 중론이다.
김연기 변호사는 지난 29일 본지 유튜브 '일타뉴스'에 출연해 "한 전 대표는 가처분을 절대 신청하지 않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한 전 대표가 가처분을 신청해도 인용될 가능성이 거의 없는데다, 기각될 경우 얻는 불이익이 현저히 크다는 이유에서다.
김 변호사는 "법원이 정당의 의사결정에 대해 부정하는 경우는 거의 없으니, 실체적 내용에 대해서는 판단을 받지 못할 것"이라며 "결국 절차적 하자가 명백해야지 인정을 받을 수 있을 텐데, 그 부분이 불명확하다. 그러다 가처분을 진다면 일반 대중들은 '썼네, 썼어'하고 판단을 끝낼 것"이라고 부연했다.
한 전 대표가 '백의종군'하며 당 주류의 마음을 돌려 세우는 전략도 거론된다. 개인 자격으로나마 국민의힘 후보 지원 유세에 나서 보수세력의 선거 승리를 위해 희생하는 면모를 부각하라는 취지다.
하지만 이 역시도 ▷선거에서 패할 경우 관련 노력이 퇴색할 수 있다는 점 ▷선출직을 갖고 있지 않은 한 전 대표의 존재감이 선거 이후 급격하게 줄어들 수 있다는 점 ▷당 주류의 반발로 또 다른 갈등이 불거지는 등 지지자들의 피로감이 가중될 수 있다는 점 등이 한계로 꼽힌다.
조응천 전 의원은 지난 30일 '일타뉴스'에서 "(한 전 대표는) 유학 가서 (잠시) 잊혀지는 게 좋아 보인다. 그러면 지방선거가 끝난 후건 언제가 됐건 다시 부름이 있을 것"이라면서도 "한 전 대표는 그렇게 호흡이 긴 사람이 아니어서 그렇게 못할 것이다. '가만히 있으면 나 잊혀진다, 나의 정치적 동력이 상실된다'라는 조바심을 느끼는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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