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시가 기획·제작한 책 <지상대구>는 옛 지도와 주요 시설 도면을 통해 대구가 어떤 길을 걸어 지금의 도시가 됐는지를 따라간다. ▷교통과 인프라 ▷경제와 산업 현장 ▷문화와 휴식 공간 등 대구 발전의 궤적을 4부에 걸쳐 풀어낸다. 이 가운데 2부는 철도와 도로 같은 도시의 필수 시설이 어떻게 자리 잡아왔는지를 조명한다. (편집자 주)
모든 도로는 경상감영과 대구역 일대를 중심으로 짜여졌다. 1906년 대구 대일본 거류민회는 성벽을 철거하고, 중심지 일대에 도로를 건설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1920년대 중반까지 도청을 중심으로 하는 중심부, 대구역 근처, 일본인이 거주하던 동쪽에 도로를 건설했다.
내부를 연결하는 도로가 완성된 이후, 외부와 내부 도로를 자연스럽게 잇는 작업이 시작됐다. 1등 도로는 경성과 부산, 천안 등 비교적 먼 지역을 향했고, 경주와 통영, 부천으로 향하는 도로는 2등 도로의 이름표를 받았다. 도로들이 교차하는 중심은 어김없이 대구역 앞이었다.
시간은 흘러 1965년, 대구 곳곳으로 향하는 크고 작은 도로들이 자리잡기 시작한다. 도로와 도로가 겹치는 부분에 '교통 광장'을 설치할 때가 됐다. 총 14개의 네거리를 형성해 도로가 유기적으로 연결되도록 만들었다. 당시 지은 이름 중 일부는 지금도 남아 우리에게 익숙하다.
중앙대로와 달구벌대로가 만나는 곳은 반월당 네거리로 명명했다. 서대구로와 두류공원로, 달구벌대로가 만나는 두류네거리도 이 때 만들어졌다. 서대구로와 노원로, 팔달로가 만나는 만평네거리 역시 이 당시 기획된 네거리다. 당시 계획을 담은 지도에서는 파란 점으로 표시돼 있다.
중앙대로를 중심으로 대구의 서쪽과 동쪽을 잇는 도로는 완공됐지만, 남북으로 이어지는 교통망은 아직 부족했다. 이에 따라 신천을 따라 아래에서 위를 가로지르는 '신천대로' 계획이 등장하게 된다. 두산동 동대구로에서 팔달교까지 이어졌으며, 총 연장 14.45km, 폭 50m에 달했다.
도로는 1991년 완공을 목표로 연차적으로 건설하도록 설계됐다. 완공된다면, 신천변에 남아있던 불량지구들의 개발을 촉진할 수 있어 '일석이조'의 효과도 볼 수 있으리라 추측했다.



























댓글 많은 뉴스
한동훈 "난 대선까지 출마한 사람…재보선 출마 부수적 문제"
박지원 "강선우, 발달장애 외동딸 있어…선처 고대" 호소
'尹훈장' 거부했던 전직 교장, '이재명 훈장' 받고 "감사합니다"
"투자는 본인이 알아서" 주식 폭락에 李대통령 과거 발언 재조명
한동훈 대구 동행 친한계 8명, 윤리위 제소당해…"즉시 '제명' 사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