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이란 간 중동 전쟁이 분쟁에 직접 참여하지 않는 국가에 여파를 미치고 있는 가운데, 특히 한국 경제가 주요 피해국으로 지목되면서 에너지·원자재 의존 구조의 취약성이 다시 부각됐다는 미 싱크탱크의 분석이 나왔다.
2일(현지시간) 미국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이날 '이란 분쟁이 한국에 미친 영향: 수치로 보는 분석'이라는 자료를 내고 이번 분쟁의 비전투국 가운데 한국을 최대 피해국으로 지목했다.
CSIS는 "한국은 다양한 핵심 자원에서도 호르무즈 의존도가 높다"며 "향후 2~6개월 동안 운송, 물류, 농업 등 분야에서 물가 상승의 파급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밝혔다.
핵심 배경으로는 높은 중동 의존도가 꼽힌다. 한국은 원유 수입량의 70%를 중동에 의존하고 있고, 반도체 공정에 필요한 헬륨도 64.7%를 카타르에서 들여오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이 사실상 막히면서 에너지와 산업용 원자재 조달에 직접적인 부담이 발생했다는 분석이다.
CSIS는 분쟁 발발 한 달 만에 한국 경제가 에너지, 석유화학, 반도체, 거시경제 전반에 걸쳐 심각한 취약성을 드러냈다고 짚었다. 보고서에 따르면 코스피 지수는 43년 역사상 최악의 하루 낙폭을 기록했고, 원화 가치는 17년 만에 최저 수준까지 떨어졌다.
호르무즈 해협과 페르시아만 일대에는 한국 국적 선박 26척이 발이 묶여 있으며, 이 가운데 23척은 한국 소유 또는 운영 선박으로 파악됐다. 선종별로는 원유 및 유조선 17척, 벌크선 5척, 가스 운반선 2척, 컨테이너선 1척, 자동차 운반선 1척으로 구성됐다.
분쟁 이후 한국 선박의 호르무즈 해협 통항은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CSIS는 분쟁 이전인 2월 한 달 동안 한국 국적 선박 33척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했다고 설명했다.
에너지 수입 차질은 석유화학 분야에도 곧바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국에서 플라스틱, 합성섬유, 석유화학 제품의 핵심 원료로 쓰이는 나프타의 약 35%가 호르무즈 해협을 거쳐 들어오는 것으로 분석됐다. 정부가 나프타를 경제안보 품목으로 지정하고 수출 금지 조치에 나선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반도체 공급망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카타르 역시 이란의 공습 영향으로 라스라판 산업단지 생산이 중단되며 타격을 입었고, 이후 헬륨 가격은 40% 이상 급등한 것으로 전해졌다. 헬륨은 대체가 쉽지 않은 자원인 만큼 한국 반도체 업계에도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한국반도체산업협회는 단기 공급은 충분하고 기업들이 공급처를 다변화했다고 밝혔지만, 정부는 헬륨을 포함한 반도체 원자재 14개 품목에 대한 감시를 강화했다.
석유 비축량을 둘러싼 숫자도 주목된다. 국제에너지기구(IEA) 기준으로 한국은 208일 치 전략 석유 비축량을 보유한 것으로 집계되지만, 이는 순수입량 기준이다. CSIS는 실제 정유 처리량인 하루 290만 배럴을 기준으로 할 경우 정부 비축량 1억10만 배럴로는 34일밖에 버티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민간 부문 비축량까지 합쳐도 약 67일 수준이라는 계산이다.
여기에 한국이 지난 3월 12일 IEA의 4억 배럴 긴급 방출에 동참해 2천250만 배럴을 추가 방출하면서 정부 비축량은 7천760만 배럴로 줄었고, 이는 실제 소비 기준 약 26일 치로 추산됐다. 다만 3월 18일 아랍에미리트(UAE)로부터 2400만 배럴을 긴급 확보하면서 비축 여력은 8~9일 정도 늘어난 것으로 평가됐다.
경제 전망도 악화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한국의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주요 경제국 가운데 가장 큰 폭인 0.4%포인트 낮췄고, 물가상승률 전망치는 2.7%로 상향 조정했다. CSIS는 향후 2~6개월 동안 운송, 물류, 석유화학, 농업, 식음료 부문에서 물가 상승 압력이 커질 것으로 봤다. 고물가, 고금리, 원화 약세가 동시에 닥치는 '삼중 충격' 가능성도 거론됐다.
정부는 이에 대응해 범정부 차원의 대응책을 가동하고 있다. 자료에 따르면 비상 연료 가격 상한제 도입, IEA 비축유 방출 참여, 170억달러 규모의 추가경정예산 편성, UAE로부터 2400만 배럴 원유 확보, 원전 정비 후 조기 재가동, 대통령이 직접 지휘하는 이중 비상대응 체계 구축 등이 추진되고 있다.
정치 일정도 변수로 꼽힌다. 이재명 대통령 정부가 두 달 앞으로 다가온 지방선거와 함께 스태그플레이션 우려가 커지는 상황에서 경제·정치 양면의 압박을 받고 있다고 분석했다. 전쟁의 파급 효과가 6월 지방선거 구도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게 보고서의 분석이다.
그러나 보고서는 한국이 이란과 직접 협상에 나설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봤다. 호르무즈 해협 통항 문제를 놓고 미국과의 관계, 특히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을 의식할 수밖에 없다는 이유다. 한국이 일본의 움직임을 지켜보며 대응 수위를 정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이란과의 직접 협상은 부담이 적지 않다는 평가도 담겼다. 트럼프 대통령이 대이란 압박 기조를 유지할 경우, 한국이 테헤란과 별도 협상을 타결하는 데 부정적 반응을 보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유조선 통항 문제를 가장 큰 영향을 받는 국가들에 맡길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점을 고려하면, 한국이 통행료를 지불하거나 일부 면제를 요청하는 선택지를 검토할 여지도 있다는 분석도 제시됐다.
러시아산 원유와 나프타 수입 문제도 언급됐다. 보고서는 상황이 계속 불안정할 경우 한국이 미국과 협의해 러시아산 원유 제재의 추가 면제를 요청하는 방안을 상대적으로 위험 부담이 적은 선택지로 봤다.
실제 한국은 지난 3월 12일부터 4월 11일 사이 선적된 러시아산 원유 및 석유제품 수입에 대해 30일간 임시 제재 면제를 받은 것으로 제시됐다. 또 LG화학은 원료 부족을 메우기 위해 러시아산 나프타 2만7천톤을 구매했으며, 이는 한국이 4년 만에 러시아산 나프타를 다시 들여온 첫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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