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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로 만나는 약선(藥膳)] 울릉도의 '부지기아초(不知飢餓草)', 부지깽이나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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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희 대구한의대 푸드케어약선학과 외래교수

섬쑥부쟁이 나물
섬쑥부쟁이 나물

사시사철 푸른 나무가 솔이라면, 사시사철 푸른 풀은 '섬쑥부쟁이'이다. 겨울날 울릉도 나들잇길에서 시들지 않은 풀을 보았다. 태하등대 오르는 비탈에서, 봉래폭포 오르는 길섶에서, 석포옛길 돌 틈에서 바다 빛깔을 가득 껴안고 있었다. 동백은 추워서 빨갛게 몸을 데우는 중이었으나 섬쑥부쟁이는 개의치 않았다.

예전 울릉도 춘궁기 때 사람들은 이 나물로 식량을 대체했다. 사방에 나물이 널려 있어 아궁이에 불을 때다 부지깽이만 들고 나가도 한 바구니 뜯어 올 수 있었고, 꺾어 온 줄기를 부지깽이 꽂듯 해도 뿌리를 내렸다. 그래서 '섬쑥부쟁이'를 '부지깽이나물'이라 하였다. 화산토에 뿌리내리고 해풍을 견디는 자생식물 부지깽이나물은 약으로 쓰이고 식량으로도 쓰였다. '배고픔 느끼지 않게 해 주는 풀'이라고 '부지기아초(不知飢餓草)'라 했다.

'구황촬요'는 기아에 빠진 사람을 위한 구급법과 대용 식물 조제법 등을 기술한 조선 시대 문헌이다. 솔잎, 느릅나무껍질 등 대체 식용품이 명시되었는데, 울릉도 사람의 배고픔을 덜어 준 섬쑥부쟁이는 언급되지 않았다. 본초명이 없으니 약재로 분류되지도 못했다. 문헌에 이름조차 올리지 못한 이유는 아마도 육지와 울릉도 간의 지리적 한계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섬쑥부쟁이 나물
섬쑥부쟁이 나물

외국에서도 섬쑥부쟁이는 식용이 아니라 잡초로 취급한다. 구절초, 벌개미취, 감국 등은 산야초로 분류하였으나, 이 식물은 강한 번식력으로 다른 식물에 피해를 준다는 이유에서다. 또한 식문화의 차이를 꼽을 수 있다. 우리 할머니와 어머니들은 독성이 있는 식물조차 삶고 말려서 해독하여 먹을 정도로 나물 요리를 즐겼다. 식생활의 지혜였고, 보릿고개를 견뎌내는 방편이었다.

어린 날, 새순이 돋아나면 산나물 뜯는 행렬이 줄을 이었다. 어머니도 식은밥 한 덩이에 날된장 한 숟가락 싸서 배 씨 아주머니와 조를 맞춰 산으로 향했다. 배고프면 산나물에 쌈을 싸서 먹는다고 했다. '당골(도암골)'이라는 산골 마을이었으나 속리산 줄기 따라 더 깊숙이 안당골과 작은당골을 누비고, 그다음에는 구병산을 올랐다.

농사가 시작되기 전에 최대한 나물을 뜯어야 겨우내 묵나물로 먹고, 친지들께 나눔 할 수 있었다. 고사리는 따로 골라서 데친 후 제사용으로, 다래 순은 묵나물로, 참나물과 여린 취나물은 된장과 들기름에 무쳐서 밥상에 올렸다.

섬쑥부쟁이
섬쑥부쟁이

시골살이하면서 마당 가 둔덕에 부지깽이나물을 심었다. 어떻게든 울타리 안에 보듬고 싶어 수시로 물주고 풀 뽑았다. 둔덕에서 미끄러져 어깻죽지 다치고, 발을 접질려 골절되는 고역의 시간을 보상하듯 이제는 제법 나물 반찬을 안긴다. 보통의 취나물은 식감이 거칠어 된장을 넣어 무치지만, 부지깽이나물은 데쳐서 간장과 참기름만으로 무쳐야 부드러운 식감을 즐길 수 있다. 남은 나물을 데쳐서 소쿠리에 널었다. 봄 햇볕이 따뜻하여 나물 말리는 데는 적격이다.

부지깽이나물은 울릉도 취나물로 분류된다. 취나물은 독특한 향기가 특징인데, 소화를 돕고 폐와 기관지에 한(寒)이나 열(熱)이 몰린 것을 흩어주는 역할을 한다. 당연히 비타민 A와 C가 풍부하다. 현대 한의·본초에는 쑥부쟁이 종류를 '산백국(山白菊)'으로 분류했다. '풍을 제거하고 해열·해독하며, 담을 삭이고 기침을 멎게 한다.'

그러나 '섬쑥부쟁이(부지깽이)'를 구체적으로 명시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주목받지 않았다고 해서 서운해할 일은 아니다. 부지깽이나물은 울릉도뿐만 아니라 육지에서도 봄나물의 선두 주자로 달리고 있다.

노정희 대구한의대 푸드케어약선학과 외래교수
노정희 대구한의대 푸드케어약선학과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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