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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로 만나는 약선(藥膳)] 귀인이 먹는 음식, 죽순(竹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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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순 요리
죽순 요리

친구 집 뒤란에 대나무가 울울창창하다. 공원이나 관광지의 인위적인 산책길과는 달랐다. 조심스럽게 발을 들이자 댓바람이 친친 감긴다. 자신의 뼈대를 바람에 맡기고 쏴쏴 파도가 밀려오는 듯, 서걱서걱 산짐승이 내달리는 듯 세상과 한 몸 되어 푸른 경(經)을 읽는다.

대나무는 따뜻하고 습기 많으며 물 빠짐 좋은 환경에서 잘 자라는데, 전라남도 담양이 그러하다. 주민들은 대나무로 생활용품을 만들었고, 조선시대 때는 공물로 죽세공품을 진상했을 정도였다. 이러한 경제적 가치 덕분에 대나무숲이 보존되었고 죽녹원은 치유 공원 명소가 되었다.

교토 아라시야마 치쿠린(竹林)에 다녀온 적이 있다. 하늘을 찌를듯한 대나무숲은 터널을 만들었고, 바람이 일자 대숲의 두런거림이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노노미야 신사(野宮神社)는 '히카루 겐지'의 아린 이별을 새겨두었고, 인력거를 타고 지나가는 게이샤 '치요'의 회색 눈동자는 대나무 숲에 박제되었다. 미친 바다가 되지 않으려고 버둥거리는 게이샤의 삶과 사랑을 담은 소설은 아직도 가슴 한편에 남아있다. 이런저런 이유에서 대나무 숲의 바람 소리는 애정(哀情)과 애정(愛情)의 대상이 되었다.

죽순이 맛있는 시기가 돌아왔다. 옛사람들은 여름이 시작되는 입하(立夏)에 영양가 높은 음식을 먹었는데, 제철 재료인 쑥이나 죽순 요리가 그러하다. 중국 오나라의 '맹종'은 죽순이 먹고 싶다는 어머니를 위해 대나무밭으로 향했다. 한겨울에 죽순을 구할 길 없자 하늘을 향해 읍소했다. 그러자 그의 눈물이 떨어진 자리에 눈이 녹으면서 죽순이 돋아났다고 한다. '맹종읍죽(孟宗泣竹)', '맹종설순(孟宗雪笋)'의 고사성어 유래이다. 죽순을 채취하는 '맹종죽(孟宗竹)' 이름을 여기서 따왔는데, 나무가 물러서 세공용으로는 사용하지 못한다.

중국 요령성 농부들은 죽순 요리를 차와 함께 먹었다. 이 음식이 연회용으로 발전하게 되었고, 서태후는 '여덟 가지 보물을 모아 만든 것'처럼 맛이 좋다고 하여 '팔보채(八寶菜)'라 하였다는 설이 전한다. 죽순이 들어간 음식을 '천자의 음식', '귀인의 음식'이라 칭하는 것은 대나무가 선비의 절개와 강인한 의지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죽순은 특히 여름철에 유용한 음식이다. 일사병이나 가슴 답답한 증상에 사용하는 약선 식재료이다. 몸속 열기를 내리고 갈증을 멎게 하며 눈을 밝게 하는 효능이 있다. 현대 영양학적으로도 죽순의 칼륨 성분은 나트륨 배출을 돕고, 항산화 성분은 노화 방지 효과를 나타낸다. 단, 죽순은 성질이 차기 때문에 평소 몸이 차거나 소화력이 약한 사람은 주의한다.

죽순은 반드시 삶아서 요리해야 한다. 생으로 먹으면 설사나 복통을 일으키는 '사이아노젠' 중독 증상이 발생할 수 있는데 열을 가하면 제거된다. 껍질을 벗긴 후 쌀뜨물에 삶으면 '수산'의 떫고 아린 맛을 줄여준다. 그도 저도 어려우면 시판용을 사용해도 된다. 새콤달콤하게 무치면 입맛을 살려주고, 볶음을 해도 담백하다.

간장 장아찌를 만들면 저장식품으로 용이하다. 갓 삶아서 초장에 찍어 먹어도 깔끔하다. 오색 고명을 얹은 죽순찜은 식탁을 돋보이게 하며, 죽순밥은 나름 별미이다. 여름을 맞이하는 계절에 죽순 요리를 차린다.

나무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 곧기는 누가 시키며 속은 어찌 비었는가?저리 하고도 사시(四時)에 푸르니 그를 좋아하노라 -윤선도의 '오우가(五友歌)' 중 竹 부분.

노정희 대구한의대 푸드케어약선학과 외래교수
노정희 대구한의대 푸드케어약선학과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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