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 늦은 봄, 철수와 영호는 학교만 끝나면 강가로 달려갔다.그 시절 동네 아이들에게 마을 앞을 흐르던 푸른 강가는 최고의 놀이터였고, 드럼통은 세상에서 가장 멋진 장난감이었다.
하지만 매일하는 멱감기도 지루해질 때쯤, 아이들의 눈에 들어온 것이 있었다. 공사장 구석에 덩그러니 버려져 있던 커다란 드럼통 두 개였다.
"야, 저걸로 배 만들면 우리도 저 넓은 강 너머로 갈 수 있지 않을까?"철수의 눈이 반짝였였으며 둘은 어느새 칡넝쿨과 짚풀을 한 움큼씩 가지고 왔다.칡넝쿨과 새끼줄로 단단히 묶어놓으면, 세상에 단 하나뿐인 '드럼통 호'는 그렇게 탄생했다. 어디선가 구해온 긴 장대는 훌륭한 노가 되었다. 물위에 띄운 드럼통 배가 삐걱거리고 물이 새어 들어와도 누구 하나 겁내지 않았다. 오히려 물결에 흔들릴수록 더 신나게 웃어댔다.
철수는 긴 장대로 강바닥을 힘껏 밀었다.
"영호야, 꽉 잡아라!"
철수가 앞장서서 거친 물살을 향해 힘차게 노를 저었다. 튀어 오르는 강물은 아이들의 얼굴을 적시고 옷을 흠뻑 적셨지만, 그 누구도 찡그리지 않았다. 오히려 얼굴 가득 번진 것은 세상을 다 가진 듯한 장난기 어린 미소와 성취감이었다.영호는 뒤에서 중심을 잡으며 철수의 박자에 맞춰 힘을 보탰고, 또 다른 친구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강 건너편의 미지의 세계를 바라보았다.
아이들은 드럼통배를 타고 강 한가운데로 나가며 마치 탐험가라도 된 듯 들떠 있었다.누군가는 선장이 되었고, 누군가는 해적이 되었다.
때로는 강 건너 모래밭에 상륙해 작은 전쟁놀이를 벌이기도 했다. 배가 뒤집혀 모두 물에 빠지는 날도 있었지만, 그것마저 웃음거리였다. 젖은 옷을 입은 채 집으로 돌아가면 어머니는 "또 드럼통 타고 놀았제?" 하며 혀를 찼지만, 아이들의 얼굴에 번진 웃음까지는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아이들은 버려진 드럼통에서 바다를 보았고, 좁은 강에서도 세상을 건너는 꿈을 꾸었다. 가진 것은 없었지만 마음만은 누구보다 넓고 자유로웠다.세월은 흘러 강가 풍경도 많이 변했다.드럼통배는 사라졌고, 맨발로 강물 속을 뛰어다니던 아이들도 어느새 흰머리가 늘어가는 나이가 되었다. 하지만 여름 햇살 아래 출렁이던 그 강물의 감촉만은 아직도 가슴 한편에 남아 있다.
아마 철수와 영호에게 1974년의 드럼통배는 단순한 놀이기구가 아니었을 것이다.그것은 가난했던 시절을 건너게 해 준 작은 꿈의 배였고, 친구들과 함께 웃던 가장 찬란한 유년의 기억이었다.
사진 속, 튀어 오르는 물방울 너머로 소년들의 거친 숨소리와 활기찬 외침이 들려오는 듯하다. 자갈밭을 치고 나가는 물살의 역동적인 움직임은, 마치 격동의 시기를 온몸으로 부딪치며 살아내던 그 시절 우리 사회의 에너지를 닮아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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