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신문 전국 어린이 사진공모전 70년]<1977년 23회>은상 안희탁 작 "술래잡기"

로봇
mWiz 이 기사 포인트

은상 안희탁 작
은상 안희탁 작 "술래잡기"

1976년 늦가을, 대구 근교의 어느 작은 시골마을어귀.

서산으로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며 흙마당에는 아이들의 긴 그림자가 드리워지기 시작했다.제법 찬 기운이 감돌았지만 아이들에게 계절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학교가 끝나기만 하면 동네아이들은 책가방을 집에 던져 놓고 마을 어귀 공터로 달려 나갔다. 그곳은 아이들의 놀이터이자 세상의 전부였다.

그날도 영숙이와 영희,철수,영옥이를 비롯한 동네 아이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누군가는 고무줄을 챙겨 왔고, 누군가는 구슬주머니를 들고 왔지만 결국 아이들이 선택한 놀이는 술래잡기였다. 그것도 가장 재미있는 눈가리고 술래잡기.

영숙이는 낡은 흰 헝겊으로 눈을 가리고 술래가 되었다. 친구들이 헝겊을 뒤에서 단단히 묶어주자 영숙이는 두 손을 앞으로 내밀며 말했다.

"너희들 가만 안 둔다!"

그러자 아이들은 까르르 웃으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영숙아, 나 여기 있지롱!" 영숙이의 등 뒤에서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도망치는 주황색 스웨터의 아이가 바로 '영희'

"여기 잡아 봐라!"

"영숙아, 뒤에 있다!"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영숙이는 소리가 나는 쪽으로 몸을 돌려 두 팔을 벌여 뛰어갔지만 아이들은 어느새 다른 곳으로 달아나 있었다. 눈을 가렸으니 방향을 잡기도 쉽지 않았다. 몇 걸음 뛰다가 허공을 잡고, 또 몇 걸음 뛰다가 친구들의 웃음소리에 속아 엉뚱한 곳으로 향했다.

영희는 일부러 영숙이 가까이 다가가 손뼉을 치고는 재빨리 달아났다. 그 모습을 본 아이들은 배를 잡고 웃었다. 마을어귀에는 아이들의 발자국이 뒤엉켰고, 흙먼지가 햇살 속에서 금빛으로 피어올랐다.

그 시절 아이들에게는 특별한 장난감이 없었다. 스마트폰도 없었고, 게임기도 없었다. 하지만 친구들의 이름을 부르며 뛰어다니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모자랄 만큼 즐거웠다. 헝겊 한 장이면 술래잡기가 되었고, 작은 돌멩이 몇 개면 공기놀이가 되었으며, 빈 공터 하나면 온 세상이 놀이터가 되었다.

한참을 뛰어다니던 영숙이가 마침내 누군가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잡았다!"

순간 공터가 떠나갈 듯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눈가리개를 벗은 영숙이는 숨을 헐떡이며 환하게 웃었고, 붙잡힌 아이는 영희였다. 영희는 억울한 표정을 지었지만 입가에는 웃음이 번졌다. 이제 다음 술래는 영희 차례였다.

영희는 머리를 긁적이며 멋쩍게 웃었다. 술래가 되는 것이 싫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조금 전까지 남을 놀리며 도망치던 처지에서 이제는 자신이 눈을 가리고 친구들을 쫓아야 한다는 사실이 아쉬웠을 뿐이다.

눈을 가린 영희가 두 팔을 앞으로 뻗으며 외쳤다.

"이번에는 내가 다 잡는다!" 그러자 아이들은 또다시 깔깔거리며 사방으로 흩어졌다.숨을 헐떡이며 뛰노는 사이 해는 서산 너머로 기울자, 아이들은 하나둘 집으로 돌아갔다.

반세기의 세월이 흘렀다. 그 공터는 다른 모습으로 변했을지 모른다. 영숙이와 영희와 이름모를 사진 속 아이들은 이제 어른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마음속 어딘가에는 여전히 1976년 늦가을, 그 골목길에서 울려 퍼지던 웃음소리가 남아있을 것이다. 이 사진을 보며 잠시나마 삭막한 현실을 잊고, 순수했던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가 따뜻한 추억여행을 떠나보자.

가작 성재경 작
가작 성재경 작 "푸른꿈 푸른하늘"
가작 정원섭 작
가작 정원섭 작 "겨울아이 여름아이"
금상 최시병 작
금상 최시병 작 "강강수월래"
동상 권기룡 작
동상 권기룡 작 "스트라이크"

최신 기사

0700
AI 뉴스브리핑
정치 경제 사회 국제
대구경북(TK) 정치권이 반도체 산업의 새로운 기회를 놓치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으며,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가 호남 및 충청권으로 반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반도체 생산 거점을 호남 지역으로 확대할 가능성이 커지면서 지역의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정부의 지역 균형발전 기...
인천의 한 재활용 쓰레기 처리장에서 어린아이의 시신 일부로 추정되는 물체가 발견돼 경찰이 수사에 나섰으며, 발견된 물체는 약 30~33㎝ 길...
이란은 미국의 공습에 대응해 호르무즈 해협을 완전히 폐쇄하고 해협을 통과하는 모든 선박에 발포하겠다고 경고했다. 이란군은 미국의 핵심 시설 ..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