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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과의 전쟁]현장르포 "10년을 마약으로 살았다"…중독자에서 마약퇴치 재활강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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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세부터 필로폰 10년 중독, 20년 단약…신종목(56)씨의 고백

신종목(56) 씨가 대구함께한걸음센터에서 마약 중독 회복자들을 대상으로 재활 강의를 하고 있다. 10년 중독, 단약 20년 차. 한때 교도소 문 안에 갇혀 있던 그가 이제는 강단에 서서 절망의 끝에 선 이들에게 회복의 길을 안내하고 있다.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신종목(56) 씨가 대구함께한걸음센터에서 마약 중독 회복자들을 대상으로 재활 강의를 하고 있다. 10년 중독, 단약 20년 차. 한때 교도소 문 안에 갇혀 있던 그가 이제는 강단에 서서 절망의 끝에 선 이들에게 회복의 길을 안내하고 있다.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어머니는 국어교사, 아버지는 영어교사였다. 꿈은 판사였다. 그 소년이 스물여섯에 필로폰을 손에 댔다. 10년을 마약으로 살았다. 소년원. 교도소. 재범. 또 교도소. 가족도, 친구도, 돈도 없었다. 나올 때마다 갈 곳이 없었다. 그랬던 그가 지금은 마약 중독자들을 위해 교도소 강단에 선다.

신종목(56) 씨. 10년 중독, 단약 20년 차. "마약요? 그건 백 번 싸워서 백 번 다 지는 겁니다. 열 명이면 열 명 다 인생이 무너집니다. '한 번 해보고 중독까지야 되겠나' 하는 그 생각 한 번에 이미 멸망의 감옥으로 들어가는 겁니다" 그의 인생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강력한 마약 예방 교재다.

◆ "스스로 조절할 수 있다"는 착각… 10년을 삼킨 필로폰

열네 살 소년이 집을 나왔다. 맨발이었다. 4형제 중 막내였다. 귀여움을 받으며 자랐다. 겉으로는 반듯한 가정이었다. 그러나 소년에게 집은 안식처가 아니었다. 부모의 기대는 버거웠다. 아버지는 두려운 존재였다. 어느 날 심하게 맞은 뒤 그는 더는 집에 머물 수 없었다.

집 밖의 세상은 더 차가웠다. 소매치기로 붙잡혔다. 칠곡소년원 1년 6개월. 김천소년교도소 3년 6개월. 대구교도소 1년 6개월. 원주교도소 1년. 청소년 시절 대부분이 법무부 시설 안에서 흘러갔다.

그곳에서 한 선배를 만났다. 마약상이었다. 어느 날 그 선배가 경찰에 쫓기다 급성심장마비로 쓰러졌다. 죽었다. 충격이었다. 공허했다. 그 공허함을 채우려던 순간, 마약이 손안에 들어왔다. 스물여섯 살이었다.

"처음 필로폰을 했을 때는 전기에 감전된 것처럼 짜릿했습니다. 세상이 다 내 것 같은, 수퍼맨이 된 기분이었습니다." 그 순간부터 지옥이 시작됐다. 처음에는 2~3개월에 한 번이었다. 이른바 '분기 투약'. 매일 하는 것도 아니니 괜찮다고 생각했다. 스스로 조절할 수 있다고 믿었다.

"내가 중독자라고는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매일 하는 것도 아니고, 스스로 조절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게 참 어리석은 착각이었습니다." 착각은 길었다. 대가는 혹독했다. 우울과 피해망상, 집착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평범한 안부조차 공격처럼 들렸다. 세상은 자신을 겨냥한 적대적 공간으로 변했다.

"그때부터 창살 없는 감옥이 시작됐습니다" 경찰에 붙잡혔다. 징역을 산 후 출소했다. 그러나 사회 어느곳에는 돌아갈 곳이 없었다. 기다리고 있던 것은 다시 마약이었다. 재범이었다. 또 잡혔다. 또 징역을 살았다. "교도소에서 나와도 갈 곳이 없었습니다. 가족도 없고, 친구도 없고, 돈도 없고. 결국 마약을 하던 사람들에게 돌아가게 됩니다. 그 사람들밖에 없으니까요."

최근 5년간 마약 사범 평균 재범률 45.6%. 두 명 중 한 명꼴로 다시 마약에 손을 댄다. 그 냉혹한 숫자 뒤에는 이런 현실이 있다.

신종목(56) 씨가 대구함께한걸음센터에서 마약 중독 회복자들을 대상으로 재활 강의를 하고 있다. 10년 중독, 단약 20년 차. 한때 교도소 문 안에 갇혀 있던 그가 이제는 강단에 서서 절망의 끝에 선 이들에게 회복의 길을 안내하고 있다.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신종목(56) 씨가 대구함께한걸음센터에서 마약 중독 회복자들을 대상으로 재활 강의를 하고 있다. 10년 중독, 단약 20년 차. 한때 교도소 문 안에 갇혀 있던 그가 이제는 강단에 서서 절망의 끝에 선 이들에게 회복의 길을 안내하고 있다.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 "중독의 반대는 성공이 아니라 회복입니다"

신 씨가 마약을 끊게 된 계기는 대구마약퇴치운동본부와의 만남이었다. 단약을 위한 라파교정교실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회복의 길은 순탄하지 않았다. 환청이 들리며 환시도 보였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았다.

그때 그는 깨달았다. "뇌가 고장 난 상태였습니다. 마음만 먹는다고 되는 게 아니었습니다" 마약이 남긴 기억은 지워지지 않았다. 그는 지금도 그 흔적을 안고 산다. "머릿속에는 마약이 남긴 스크래치가 선명하게 남아 있습니다. 기억은 절대로 지워지지 않습니다. 다만 이제는 그 위를 훌쩍 넘어갈 힘이 조금 생긴 겁니다."

단약 20년 차가 된 지금, 그는 자신있게 말한다. "약물에 자동적으로 반응하던 몸과 마음이 이제는 멈춰 설 수 있게 됐습니다.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이 됐습니다" 회복 이후 신학교에 진학했다. 중·고교 졸업장도 없던 그가 신학대학교 학사·석사 과정을 마치고 목사 안수까지 받았다. 깨어진 삶을 수리하고 존재의 의미를 찾아가는 걸음이었다.

지금 신 씨는 대구·경북·경남 지역 교도소 10여 곳을 다닌다. 14년째 재활 강의를 하고 있다. 하루 강의 시간은 5시간. 강행군이다. 회복 상담도 병행한다. 회복 공동체 '파란우산'도 운영하고 있다.

신 씨는 "제가 교도소 안에 있을 때 아무도 손을 내밀지 않았습니다. 나오면 갈 곳이 없었고, 결국 다시 마약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래서 압니다. 손 하나가 사람 하나를 살린다는 것을. 저는 그 손이 되려고 합니다."고 말했다.

오늘도 그의 발걸음은 교도소로 향한다. 한때 그 문 안에 갇혀 있던 사람이 이제는 그 문 앞에 서서 손을 내밀고 있다. '당신도 할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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