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인숙의 옛그림 예찬] <351>전문성을 갖추면 하찮은 주제, 험한 일은 없다

로봇
mWiz 이 기사 포인트

대구의 미술사 연구자

변상벽(1730-1775),
변상벽(1730-1775), '어미닭과 병아리', 비단에 채색, 101×50㎝,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어미닭과 병아리'는 화재(和齋) 변상벽의 영모화다. 다산 정약용은 66세 때인 1827년 어느 가을날 변상벽의 닭그림을 감상하고 '제변상벽모계령자도(題卞尙璧母鷄領子圖)'를 지었다. 이 작품과 비슷했을 듯하다. 첫 구에 "변이변묘칭(卞以卞貓稱)", 변상벽이 '변묘'로 불린다고 했다. 변상벽의 또 다른 별명이 '변계(卞鷄)'다. 고양이, 닭을 잘 그려 20세 무렵부터 매일 백 명이나 집으로 찾아왔고 종실과 귀인들도 그의 그림을 구했다.

변고양이, 변닭이라고 할 정도로 영모화에 집중한 것은 전략적 선택이었다. 그도 당연히 산수화를 잘 그리고 싶었으나 "지금의 화가를 압도해 그 위로 올라설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사물을 골라 연습했다"고 했다. '지금의 화가'는 겸재 정선일 듯하다.

정선은 84세(1759년)까지 장수하며 나이 들어 더욱 필치가 오묘해 "만익공묘(晩益工妙)"라고 했다. 1759년이면 변상벽이 30세 무렵이므로 한창 그림 공부를 할 때 정선은 '넘사벽'이었을 듯. 그래서 변상벽은 "정일물이성명(精一物以成名)", 한 가지에 몰입해 명성을 얻기로 결심하고 고양이, 닭에 집중했다.

'어미닭과 병아리'는 벌 한 마리를 부리에 문 어미가 새끼에게 먹이는 장면이다. 암탉은 듬직한 몸집의 굴곡을 따라 깃털을 하나하나 공들여 그려 윤기가 흐르고, 병아리의 보송보송한 솜털도 만져질 듯 촉각적이다. 옹기종기 어미를 둘러싼 새끼들은 제각각 분주하다. 먹이를 받아먹으려는 아이, 뒤늦게 달려오는 아이, 어미의 다리 사이로 급히 나오는 아이, 졸고 있는 아이, 먹이 하나를 같이 물고 다투는 두 아이, 깨진 사발 위에서 물 한 모금 하늘 한번 중인 두 아이.

정약용의 제화시는 강진에 유배 중이던 22년 전(1805년) 둘째 아들 학유가 닭을 기른다는 소식을 듣고 보낸 편지를 떠올리게 한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양계를 하되 격조 있게 하고 깨끗하게 하면서 다른 집 닭 보다 더 살찌고 알을 잘 낳을 수 있도록 기를 것이며, 생계를 도모하는데 그치지 말고 닭의 모습을 관찰해 시를 짓고, 여러 책에서 닭 기르는 법에 관한 이론을 뽑아내 '계경(鷄經)' 같은 책을 만들어 보라고 한다.

품위를 잃지 않고 전문성을 갖추면 하찮은 주제, 험한 일은 없다.

대구의 미술사 연구자

0700
AI 뉴스브리핑
정치 경제 사회 국제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로 인한 재선거 요구 집회에서 경찰이 공권력을 사용한 사건이 논란을 일으키고 있으며, 국민의힘 의원들은...
브리핑 데이터를 준비중입니다...
제주에서 한 고교생이 초등학교에 몰래 들어가 여교사의 텀블러에 자신의 체액을 넣고, 같은 교실 내 교사 의자에 소변을 남기는 등 범행을 저질...
일본은행이 6개월 만에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해 1%에 도달했으며, 이는 1995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이란 월드컵 축구 대..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