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중반 미국과 유럽의 지식인과 예술가가 동아시아의 선불교에 관심을 가진 배경에는 서구 근대문명에 대한 위기의식이 있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홀로코스트, 원자폭탄이 초래한 파국은 이성과 과학, 진보에 대한 낙관을 흔들었다. 인간의 이성과 기술이 반드시 더 나은 세계를 만든다는 믿음이 무너지면서 일부 지식인은 기존의 서구 철학과 종교 밖에서 새로운 사유의 가능성을 모색했다.
당시 예술 내부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제기되었다. 미술가와 음악가는 작품을 개인의 감정이나 천재성을 표현하는 결과물로 보는 낭만주의적 작가관에 의문을 품었다. 무엇을 표현할 것인가보다 작가의 의도와 통제를 줄였을 때 무엇이 드러나는가가 중요한 질문이 되었다. 개념적 판단에 앞선 직접적인 경험, 자아에 대한 집착의 해체, 일상 속에서의 깨달음을 강조한 선불교는 이러한 문제의식과 맞닿아 있었다.
일본의 불교학자이자 선(禪)사상가인 스즈키 다이세쓰(鈴木大拙, 1870–1966)는 이러한 관심을 확산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는 선을 엄격한 사찰 수행이나 난해한 불교 교리에만 한정하지 않고, 현실을 분별과 개념 이전의 상태에서 직접 경험하는 사유로 설명했다. 영어로 저술하고 강연한 그는 선불교를 서양철학과 심리학, 기독교 신비주의와 연결함으로써 미국과 유럽의 독자가 접근할 수 있는 언어로 재구성했다.
스즈키는 1952년부터 1957년까지 방문교수로 뉴욕 컬럼비아대학교에서 강의했다. 그의 강의는 선불교와 화엄사상을 중심으로 심리학과 서양철학, 기독교 신비주의를 폭넓게 아울렀다. 학생과 일반인, 학자뿐 아니라 뉴욕 문화예술계의 여러 인물도 그의 강의와 사상적 영향권에 있었다. 다만 이는 동아시아의 선이 그대로 서구에 이식된 과정이 아니었다. 스즈키가 근대적으로 재구성한 선사상을 서구 예술가들이 각자의 문제의식과 매체에 따라 선택적으로 해석한 과정이었다.
스즈키의 사상을 가장 직접적이고 지속적으로 받아들인 예술가 가운데 한 사람은 작곡가 존 케이지였다. 케이지는 음악을 작곡가가 음을 조직해 만들어 내는 고정된 구조물이 아니라, 이미 세계에 존재하는 소리를 발견하고 경험하는 과정으로 이해했다. 그는 작곡가의 취향과 의도를 줄이면 이전에는 음악으로 간주되지 않았던 소리까지 새롭게 들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사고는 1952년 뉴욕주 우드스톡의 매버릭 콘서트홀에서 피아니스트 데이비드 튜더의 연주로 초연된 〈4분 33초〉에서 집약적으로 나타났다. 세 악장으로 구성된 이 곡에서 연주자는 정해진 시간 동안 의도적인 악음을 연주하지 않는다. 초연 당시 연주자는 피아노 건반 덮개를 여닫아 각 악장의 시작과 끝을 표시했다. 그러나 공연장은 완전한 침묵에 잠기지 않았다. 공연장 안팎에서는 바람과 빗소리, 관객의 기침과 움직임, 의자의 마찰음과 웅성거림 등이 발생했다. 일반적인 공연에서는 작품을 방해하는 소음으로 취급되던 이러한 소리가 작품의 청취 대상이 된 것이다.
악보에는 세 악장과 연주의 시간적 틀이 제시되어 있지만, 그 안을 채우는 실제 소리는 고정되어 있지 않다. 공연의 장소와 시간, 날씨와 관객에 따라 매번 다른 소리가 발생하므로 〈4분 33초〉는 연주될 때마다 새롭게 구성된다. 작품은 작곡가가 모든 음을 통제하는 결과물에서 우연과 환경, 연주자와 관객이 함께 만드는 사건으로 전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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