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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람쥐·쥐 가죽까지 팔았다… 1977년 12월 22일, 수출 100억 달러 돌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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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년 만에 100배… 133개 국에 1,200여 개 품목, 목표보다 4년 앞당겨

1977년 서울 광화문 세종로에 설치된
1977년 서울 광화문 세종로에 설치된 '100억불 수출의 날' 기념 아치. 대한민국은 1977년 연간 수출 100억 달러를 처음 돌파하며 수출 중심 경제성장의 이정표를 세웠다. 아치 뒤로 이순신 장군 동상과 중앙청, 북악산이 보인다. 매일신문DB

1977년 12월 22일 대한민국의 연간 수출액이 사상 처음으로 100억 달러를 넘어섰다. 1964년 1억 달러 고지에 오른 지 13년 만에 규모를 100배로 불렸다. 그해 100억 달러를 넘긴 나라는 전 세계 22개국뿐, 아시아에서는 일본에 이어 두 번째였다.

1960년대까지 원조를 받던 나라가 1970년대 후반 세계 20위권 수출국으로 올라섰다. 전쟁의 폐허에서 20여 년 만에 이룬 '한강의 기적'이었다.

매일신문은 1977년 12월23일자 1면 머리기사와 2·3면에
매일신문은 1977년 12월23일자 1면 머리기사와 2·3면에 '수출 100억불 달성' 관련 소식을 상세하게 보도했다. 1964년 1억달러를 넘어선 지 13년 만에 연간 수출액 100억달러를 돌파한 것이다. 매일신문DB

◆ 다람쥐와 쥐 가죽에서 시작

자원도 자본도 기술도 없었다. 가진 것은 사람뿐이었다. 1964년 첫 수출 1억 달러를 달성하고 '제1회 수출의 날'을 열었다. 그해 내다 판 것은 머리카락과 다람쥐, 은행잎, 쥐 가죽이었다. 돈이 되는 것은 무엇이든 모아 배에 실었다.

쥐 가죽은 변방 품목이 아니었다. 1972년 정부가 잡은 쥐 가죽 가공품 수출 목표는 수십만 달러. 시장 전망이 밝은 효자 상품으로 분류돼 있었다.

품목은 빠르게 갈아탔다. 해태와 오징어, 중석에서 출발해 가발과 합판, 섬유를 거쳐 철강과 전자, 조선과 기계로 옮겨갔다. 1960년대 30%에도 못 미치던 공산품 비중은 100억 달러를 달성하던 해 90%에 이르렀다.

세계 133개 국에 나간 품목은 1,200여 가지였다. 선박과 철도차량만이 아니었다. 깻잎과 고사리, 갯지렁이, 이쑤시개가 같은 목록에 올랐다. 가발을 만들고 남은 머리카락까지 실어 보냈다. 일본이 '걸레에서 미사일까지'를 내세울 때 한국은 '라면에서 유조선까지'라고 했다. 국민 한 사람이 274달러어치씩 판 셈이었다.

1977년 2월27일 국내에서 첫 생산된 자동차 포니가 수출길에 오르고 있다. 매일신문DB
1977년 2월27일 국내에서 첫 생산된 자동차 포니가 수출길에 오르고 있다. 매일신문DB

◆ 16억 달러 나라가 세운 100억 달러 계획

출발은 무모했다. 수출이 고작 16억 달러이던 1972년, 정부는 100억 달러 계획을 내놨다. 이듬해 제1차 석유파동이 터졌다. 세계 경기는 침체로 돌아섰고 한국 경제도 큰 충격을 받았다.

정부는 계획을 접지 않았다. 수입대체 공업화에서 수출지향 공업화로 방향을 틀었다. 1973년 발표한 중화학공업 육성 정책이 분기점이었다. 철강과 조선, 기계, 전자, 석유화학에 투자가 집중됐다. 수출 품목은 다양해지고 부가가치는 높아졌다.

가발과 합판으로는 오래 버틸 수 없었다. 임금이 조금만 올라도 후발국에 따라잡히는 구조였다. 무거운 산업으로 갈아타지 않으면 100억 달러는커녕 그때의 자리도 지킬 수 없다는 판단이었다.

대통령이 직접 주재한 수출진흥확대회의는 한국형 전투사령부였다. 100억 달러를 달성하기까지 162차례 열렸다. 그사이 수출은 연평균 40% 이상 늘었다. 1971년 10억 달러를 넘어선 지 6년 만에 다시 10배가 됐다. 세계 무역사에서도 유례를 찾기 어려운 속도였다. 정부가 잡았던 목표 연도는 1981년이었다. 4년을 앞당겼다.

1977년 12월22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1977년 12월22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100억불 수출의 날' 기념식에 참석한 근로자들의 모습. 수출 100억불의 진정한 주역들이다. 매일신문DB

◆ 세계 6번째 수출 강국...7,000억 달러 돌파

석유파동을 뚫는 방편은 두 가지였다. 중동 건설과 종합무역상사. 최전방에는 현대건설과 정주영 회장이 있었다. 1976년 6월, 현대는 사우디아라비아 주바일 산업항 공사를 9억3,000만 달러에 따냈다. 당시 정부 예산의 절반에 육박하는 금액이었다. 해외 언론은 '20세기 최대의 역사(役事)'라 불렀다.

문제는 공법이었다. 수심 30m 바다 한가운데에 30만t급 유조선 4척을 동시에 댈 정박시설을 세워야 했다. 현대는 400t짜리 하부구조물 재킷 89기를 울산조선소에서 만들었다. 이를 바지선에 싣고 1만2,000km 떨어진 걸프만까지 끌고 갔다. 편도 35일, 열아홉 차례를 오갔다. 모두가 불가능하다던 수송이었다.

다른 한 축은 1975년 도입된 종합무역상사였다. 흩어져 있던 수출 창구를 대기업 중심으로 묶은 제도다. 상사들은 "라면에서 미사일까지 판다"는 구호를 걸고 세계 시장에 뛰어들었다. 중동에서 들어온 오일머니와 상사가 뚫은 판로가 마지막 고비를 넘겼다.

1977년의 100억 달러는 후진국에서 중진국으로 올라선 계기였다. 구로공단이 수출입국의 꿈을 심었고, 구미공단은 주력 품목을 전자제품으로 바꾸며 반도체 코리아의 초석을 놓았다.

1960년 대한민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83달러. 아시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였다. 65년이 흐른 2025년, 한국의 연간 수출은 7,094억 달러를 기록했다. 사상 처음으로 7,000억 달러를 넘어선 세계 여섯 번째 나라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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