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김승원 법무장관 후보의 낙마 과정을 지켜본 온 국민은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음주운전과 술집 여사장의 신약 임상시험 승인 청탁을 들어줬다는 의혹에도 사퇴를 않던 그는 대통령이 "아직 (법무장관 임명에) 최종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청문회 과정에서 벌어진 많은 지적과 국민의 눈높이 등을 고려해 신중히 결정하겠다"고까지 말한 날에도 버텼습니다.
대통령의 '손절' 입장이 나온 뒤 성추행과 추가 음주운전, 보좌진 갑질 의혹이 또 다시 제기됐습니다. 그는 하루 더 버티다 다음날이 돼서야 자진 사퇴를 했습니다. 가장 존경 받는 직업인 판사 출신 후보가 저런 '안하무인' 행동을 했다는 게 이해가 안 간다는 반응이 나옵니다.
그런데 매일신문이 지켜봐 온 한 판사의 근무 태도와 이를 비호하는 듯한 법원의 비상식적인 대응을 보면 '천룡인(귀족집단)'은 태어나기 보단 만들어지는 것에 가깝습니다. 김 후보의 청문회를 계기로 천룡인 판사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여러분께 소상히 소개해 보는 시간을 가져 보도록 하겠습니다.
◇ 오후 4시 아내의 수호천사로 나타난 판사님
지난 7월6일 서울 서초경찰서에는 사건이 하나 접수됐습니다. 이날 오후 4시쯤 서울 서초구 한 아파트 단지 앞에서 벌어진 30대 여성끼리의 작은 실랑이였습니다. 작지만 이 사건이 특이했던 건 다름 아닌 한 현직 판사가 등장해서였습니다. 경찰 등에 따르면 실랑이에 연루된 30대 여성의 남편인 서울회생법원 소속 A 판사가 갑자기 현장에 등장해 경찰과 아내 곁에서 법조문을 술술 내뱉는 수호천사 역할을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근무를 해야 할 오후 시간에 판사가 아내를 위해 불현듯 나타난 게 신기해 매일신문은 이 판사의 하루 일과를 며칠 관찰해 보기로 했습니다. 그러던 7월23일 매일신문은 놀라운 광경을 목격하게 됐습니다. 이날 오후 3시쯤 사무실을 나선 A 판사는 집에 들렀다가 경기도 안성의 한 골프장으로 달렸습니다. 평일 오후 근무시간 도중에 골프장을 간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궁금해 서울회생법원에 물었습니다. 보통 공무원은 입출 기록이 관리되기 때문에 근무 시간 도중에 저렇게 노골적으로 골프를 치러가기 어렵습니다.
서울회생법원 측은 "사생활이라 A 판사에게 질문을 하기고 좀 어렵다. 직접 질문을 하는 게 맞지 않나 싶다"고 답했습니다. 정식 공보관인데도 소속 판사에게 질문하는 것조차 부담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관리자인 정준영 서울회생법원장 역시 답변을 거부했습니다.
매일신문은 서울회생법원에 A 판사의 출퇴근기록을 요구했습니다. 개인정보라 당연히 받기 쉽지 않지만 못 먹는 감 찔러나 보자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런데 의외의 답이 돌아왔습니다. 서울회생법원 공보판사는 "우리는 출퇴근을 따로 관리하지 않는다"고 답했습니다.
출퇴근을 따로 관리하지 않는 직장이 있다는 게 놀라웠습니다. 마음 속에선 또 다른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법원에는 판사 외 일반사무직군도 있습니다. "설마 일반사무직원의 출퇴근은 관리하면서 판사만 안 하진 않겠지"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울회생법원 답변은 가관이었습니다. 서울회생법원 측은 "일반직원은 근태기록장치로 출퇴근을 관리한다. 그런데 판사는 하지 않는다"고 답했습니다. 서울회생법원은 일반사무직원을 관리 대상으로 바라봤지만 판사는 좀 더 고귀한 존재처럼 여기는 것 같았습니다.
◇ "판사의 출퇴근 시간은 관리 대상이 아닙니다"
매일신문은 서울회생법원만의 문제인지 궁금해졌습니다. 그 범위를 전국의 모든 법원으로 확대했습니다. 대법원 관계자는 "대법원 예하기관 및 각급법원은 법관 및 직원 등의 출퇴근 기록이 가능한 시스템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고 답했습니다.
이상합니다. 앞서 매일신문은 서울회생법원이 일반사무직원과 판사를 각각 나눠 관리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는데 상급법원인 대법원이 "예하기관 및 각급법원은 출퇴근 기록이 가능한 시스템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고 했으니까요.
이 점을 따져 묻자 대법원 관계자 답변은 당황한 듯 이상한 답변을 내놨습니다. 그는 "출입 게이트는 (공무원증) 태그를 해야 열리긴 하는데 그건 청사 방호 목적이지 직원 출결 확인 목적이 아니다"라고 답했습니다.
매일신문 취재에 따르면 출입 게이트에 태그를 하면 입출 기록은 자동적으로 기계에 남습니다. 쉽게 말해 "기록하는 장치도 있고 기록도 있는데 따로 관리를 하지 않는다"는 말이었습니다. 법원의 이런 허술한 근태 관리 시스템 덕에 A 판사는 지각을 밥 먹듯 하고 근무 시간에 골프도 치고 오후에는 아내의 수호천사가 될 수 있었습니다.
A 판사는 해명하는 과정에서도 천룡인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줬습니다. 매일신문은 A 판사에게 해명을 듣기 위해 전화와 문자를 보냈지만 답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지난 1일 9시가 다 돼 출근을 준비하는 그를 직접 찾아갔습니다. "어떻게 오후에 그렇게 일찍 퇴근을 하는가" 물었습니다. 그는 "오후에 일찍 퇴근하는 건 공무원 '육아시간'을 활용해서 그런 것"이라고 해명했습니다. 공무원 육아시간 제도란 하루 최대 2시간까지 늦게 출근하거나 일찍 퇴근할 수 있는 제도입니다.
매일신문은 "그렇다면 오후 4시부터 퇴근이 가능한데 왜 7월23일에는 오후 3시에 퇴근을 하고 골프를 치러 나갔나" 물었습니다. 그는 "휴가를 쓰고 골프를 치러 갔다"고 해명했습니다.
안타깝게도 7월23일 A 판사는 지각이었지만 출근은 했었습니다. 휴가를 썼다면 출근을 하지 않았을 겁니다. 이에 대해 물으려 하자 A 판사는 빠른 속도로 현장에서 사라졌습니다. 왜 늘 지각을 하는지는 묻지도 못했습니다.
매일신문은 A 판사에게 다시 문자로 "골프 치러 간 날 휴가를 냈다고 말씀하셨는데 확인해 보니 출근을 하셨었다. 휴가신청서를 공개해 줄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묵묵부답이었습니다.
매일신문은 15일 다시 한 번 A 판사를 찾아가 휴가신청서를 공개할 의향이 있는지 여부를 물었습니다. 그는 인터뷰를 거부했습니다.
만약 A 판사의 근태가 정상이었다면 "휴가를 쓰고 골프를 치러 갔다"는 해명은 설득력이 있었을 겁니다. 문제는 매일신문이 취재를 시작한 7월20일부터 취재를 종료한 9월1일까지 평일 기준 총 32일 동안 A 판사가 지각을 하지 않은 날은 거의 없었다는 점입니다. 매일신문이 처음 그를 찾아갔던 1일 이후에도 A 판사의 지각은 계속 됐습니다. 언론 지적에도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매일신문은 대법원에 물었습니다. "판사의 출결 관리를 대체 어떻게 하길래 이런 식으로 지각과 근무지 이탈을 해도 문제가 없는 것이냐." 대법원 측은 "연 1회 이상의 복무실태점검을 한다"고 답했습니다. 이에 "공무원증 태그 방식, 차량 입출차 기록, 컴퓨터 로그인 확인 등의 방식 가운데 어떤 방식으로 복무실태를 점검하냐" 물었습니다. 답은 없었습니다. 판사 소유 차량의 입출차 기록을 요구하자 대법원은 "따로 관리하지 않는다"고 답했습니다. 아예 판사 관련된 건 관리 자체를 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전직 판사에게 진짜 법원이 이런 식으로 판사를 관리하는 게 맞느냐고 물었습니다. 한 전직 판사는 "관리라고 할 게 없다"며 "그래도 보통 판사는 성실하다. 다만 이런 시스템을 악용하는 사람이 좀 있는 편"이라고 했습니다.
이를 전해 들은 현직 검사는 푸념하듯 말했습니다. "판사가 지각과 조퇴를 밥 먹듯 하는 건 법조계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다. 그래서 이 문제를 지적하면 판사는 늘 '우리는 밤새워 일해서 그래도 돼'라고 답한다. 검사는 밤새워 일 안 하나. 그런데 우리는 근태 관리를 받는다. 천룡인이 어디에 있나 궁금한가. 판사를 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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