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봉산문화거리 중간쯤엔, 조금 독특한 이름을 지닌 복합문화공간 '꾸꿈아트센터'가 있다. 지난 3일 이곳 2층 전시공간엔 전국 각지에서 활동하는 40세 이하 작가 5명의 작품이 내걸렸다. 사진, 회화, 조각, 설치 등 장르도 다양하다. 전시 제목은 '도킹 플랫폼: 자리 찾기'다. 서로 다른 세대와 지역, 매체와 경험을 가진 예술가들이 각자의 정체성을 간직한 채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플랫폼을 표방한 전시다. 오는 22일부터는 40, 50대 중견작가 4명의 작품을 선보이는 2부 전시가 이어진다.
이 전시를 기획한 이는 경북 영천 출신 정성태(56) 사진가다. 사진가 이전 그는 조경학 박사로 지역 한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2003년 발생한 대구지하철 화재 참사를 주제로 중앙로역을 오가는 108명의 얼굴을 어안렌즈로 촬영하고 이를 지하철 역사 벽면 가득 설치한 '얼굴 타이폴로지'를 통해 사진가로서 이름을 알렸다. 2007년의 일이다.
이후 늦깎이로 경일대 대학원에 진학해 사진학을 공부하면서 원전 폭발이 있었던 우크라이나 체르노빌을 추적하거나, 타국에 사는 고려인들의 삶을 기록하는 등의 작업을 이어왔다. 그런 그가 2024년 말 꾸꿈아트센터를 연 이후 2년 동안 다양한 전시를 선보이며 기획자로서 입지를 다지고 있다.
이날 만난 정성태 꾸꿈아트센터 대표는 "'꿈을 꾸는 공간'이란 의미를 담아 문을 연 공간인 만큼, 많은 젊은 작가들이 이곳에서 자신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새로운 꿈을 꿀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대학에서 조경학을 가르치던 겸임교수 신분에서 사진가로 변신했고, 2년 전부터는 아트센터 대표이자 전시 기획자라는 직함을 추가했다. 독특한 이력이다.
▶언뜻 생각하기엔 서로 연관성이 없어 보이지만, 지난 세월을 돌이켜보면 지극히 자연스럽게 이어져온 것 같다.
사진은 조경학을 공부하면서 늘 가까이했었다. 경관미학이 전공 분야고 설계를 주로 했었는데, 경관을 시뮬레이션하기 위해선 현장 사진이 필요했기에 꾸준히 사진을 찍어왔다. 지금은 3D 모델링 프로그램을 활용하는 게 일반화됐지만 그땐 사진 촬영이 필수적이었다. 박사학위를 받은 성균관대엔 조경학과 동아리에 암실이 있어 필름 현상과 인화 작업까지 해볼 수 있었다.
대학에서 강의를 하던 시절 인도차이나 반도를 여행할 기회가 있었다. 카메라를 가져가 그곳의 풍경과 사람들을 찍었다. 당시 대구현대미술가협회 회장이던 이태현 전 대구 행복북구문화재단 대표가 제 사진을 보시더니 개인전을 해보라고 권했고, 2006년 앙코르와트 풍경사진으로 첫 개인전을 열었다. 사진가 인생의 시작이었다.
-사진가 인생은 어떻게 흘러갔나.
▶이듬해 대안공간 싹(지금의 '비영리전시공간 싹')에서 두 번째 개인전을 열었다. 앞서 대구지하철 중앙로역에서 선보인 '얼굴 타이폴로지'를 한 단계 발전시킨 작업이었다. 이 전시는 사진의 방향성을 고민하던 제가 다큐멘터리 사진을 하도록 이끌어줬다.
이후 몇 차례 더 개인전을 하게 되면서 사진 작업을 본격적으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2014년 구본창 선생이 교수로 계시던 경일대 대학원 진학을 하게 됐다. 당시 구 교수님은 대학원생을 받을 여력이 안 된다며 거절하셨는데, 세 번을 찾아가 설득한 끝에 입학할 수 있었다.
대학원 수업을 통해 구 교수님은 사진에 대해 많은 생각할 것들을 던져주셨다. 지금껏 이어지고 있는 체르노빌 작업도 그렇게 시작됐다. 체르노빌 시리즈는 원전이 폭발한 지역의 현재를 기록하는 작업인데 처음 4년간은 우크라이나를 12차례나 방문했다.
우크라이나에서 통역을 맡은 이는 고려인이었다. 이 인연으로 '꼬레이스키(고려사람들)' 시리즈가 시작됐다. 고려인 중에서도 가장 먼 우크라이나로 이주한 이들의 삶에서 한국사의 상흔과 짙은 그리움의 정서를 사진으로 기록한 작업이다. 이 또한 저의 대표적인 작업 중 하나다.
-전시 기획은 어떤 계기로 시작했나.
▶이전부터 뜻을 품고 있었거나 의도했던 일은 아니었다. 이 또한 자연스럽게 이뤄졌다. 이들 두 작업으로 우크라이나에서 전시를 하게 되면서 현지에 있는 기획자나 예술계 인사들을 많이 알게 됐다. 이후 한 전시 기획자로부터 양국 간 문화교류를 위한 전시를 열어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게 됐다. 그렇게 2018년 현지에서 '한국·우크라이나 현대 예술전(KUCA)'을 열게 되면서 전시 기획에 발을 딛게 됐다. 30명 안팎의 한국 작가가 참여한 규모 있는 전시였다. 이 전시는 2021년까지 4년 동안 이어지다가 러·우 전쟁으로 중단된 상태다.
-이후 본격적으로 전시 기획 일을 할 계획으로 꾸꿈아트센터를 연 건가.
▶아니다. 처음엔 대구에 작업실을 마련할 생각이었다. 터를 알아보던 중 50년 동안 이 자리를 지켜왔다는 할머니를 우연히 만나게 됐고, 집을 팔지 않으시려는 할머니를 설득해 어렵게 계약을 하게 됐다. 처음엔 할머니가 쓰던 한옥을 개조해 작업실로 쓸 생각이었는데, 당시 여러 가지 상황이 맞물리며 뜻하지 않게 4층 건물을 올리게 되면서 일이 커지게 됐다.
신축을 하겠다고 마음먹은 뒤엔, 1층엔 제가 좋아하는 커피를 마시며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라운지가, 2층엔 갤러리가, 3층엔 저의 작업실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설계를 의뢰했다. 그렇게 문을 연 꾸꿈아트센터는 연면적 373.45㎡(약 113평) 규모로 1층은 카페, 2층은 전시장, 3층은 사진스튜디오가 자리 잡았다. 4층은 워크숍을 하거나 타 지역 작가들이 하루쯤 쉬어갈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사진가가 운영하는 전시공간이지만, 사진에 한정하지 않고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돌이켜보면 제 삶의 궤적이 그렇게 이끈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사진으로 첫 개인전을 하고 2년 뒤쯤 대구현대미술가협회 회원이 됐다. 지금은 희석되긴 했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대구현대미술가협회는 대구미술협회에 조금은 반하는 집단이었다. 예술계에 첫 발을 디딘 단체가 그런 집단이었던 거다. 게다가 첫 번째와 두 번째 개인전을, 변방의 예술가들에게 공간을 내어주던 대안공간에서 했다. 사진작업 경향도 파인아트가 아니라 다큐멘터리다.
제가 사진가로 성장해온 여정이 이렇다보니 이 공간도 다양한 장르의 젊은 작가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했다. 이들에게 제가 어떤 길을 열어 주진 못하지만 그걸 펼칠 수 있는 장은 제공해 줄 수 있다는 생각으로 전시를 기획하고 있다.
-꾸꿈아트센터가 문을 연 지 만 2년이 돼 간다. 어떤 공간으로 자리 잡길 원하나.
▶이번 전시에 '꾸꿈아트센터의 글로벌 아트 프로젝트 첫 번째 전시'라는 수식어를 붙였다. '글로벌'이란 단어가 좀 거창해보이긴 하지만, 이 전시를 시작으로 매년 해외 작가와 한국 작가를 매칭해 전시를 열 계획이다. 관람객들에게 현 시점의 현대미술 경향을 보여준다는 의미도 있지만 참여 작가들에게도 서로 자극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 떠올린 기획이다.
서로 다른 예술적 언어를 지닌 작가들의 작품이 한 공간에서 만나면 묘한 긴장감이 일어난다. 작가는 그 속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을 수도 있다. 기획자로서 그런 역할을 하고 싶다.
꾸꿈아트센터는 '꿈을 꾸는 공간'이란 의미를 담아 문을 연 공간이다. 많은 작가들이 이곳에서 자신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새로운 꿈을 꿀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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