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농어촌 지역의 공공 거점인 우체국이 빠르게 자취를 감추고 있다.
최근 5년간 대구경북에서만 22곳의 우체국이 폐국되거나 민간 취급국으로 격하됐다. 우정당국은 경영 효율화와 적자 보전을 내세우지만, 시중은행 점포조차 드문 농어촌 면 단위에서 우체국 철수는 초고령층을 '금융 난민'으로 몰아넣는다는 지적이다.
◆멈춰 선 금융 창구, 200m 너머 농협도 '남의 집'
1966년 개국해 60년간 경북 봉화군 물야면의 우편·금융 거점이던 봉화물야우체국이 2027년 1월 1일 자로 폐국될 예정이다. 별정우체국장 승계자 부재로 폐쇄 수순을 밟자, 고령층 등 주민 2천800여 명은 반대 서명부 제출과 집회에 나섰다. 단순 이용률을 떠나 지역 대표 관공서가 사라진다는 상징적 우려 때문이다.
주민들은 직영우체국 전환이나 출장소 운영을 요구하고 있지만, 우정당국과의 소통은 형식적 절차에 그쳤다. 우정청은 지난 8월 19일 봉화군의회의장 및 봉화군수 면담을 시작으로 적극 협의했다고 밝혔지만 정작 주민 대상 설명회는 열리지 못했다.
지난 9월 16일 이장협의회 대표단 면담으로 주민설명회가 대체됐고, 사흘 뒤 우편취급국 모집 공고가 강행됐다. 고령층 주민과 지자체를 상대로 한 의견 수렴이나 사전 공청회 없는 '통보식 우정 행정'이라는 지적이다.
인근 주민(80대·여)은 "통장에 농민수당과 용돈을 받아왔는데 금융이 막히면 읍내까지 나가야 한다"며 "인도도 없는 길을 따라 거래 은행이 다른 곳으로 가라는 건 글씨도 안 보이는 어르신들에겐 까마득한 거리"라고 토로했다..
이에 대해 우정당국은 "금융 수요가 적고 200m 거리에 농협이 있다"며 "민간 '우편취급국' 전환 공모 결과를 보고 최종 결정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응모자가 전무한 데다 직원들마저 폐국을 염두에 두고 있어, 이대로면 완전 폐쇄 절차를 밟게 된다.
◆수술대 올라간 대구경북 농우정망
봉화물야우체국 사태는 단발성 사건이 아닌 대구경북 전체 농어촌 우정 인프라가 연쇄적으로 해체되는 구조적 위기의 단면이다.
25일 경북지방우정청에 따르면 최근 5년간(2021~2026년) 대구경북에서 구조조정된 우체국은 총 22곳에 달한다. 완전 폐국된 14곳(직영 7곳·별정 7곳) 중 대구 6곳, 경북 8곳이다. 우편만 전담하는 우편취급국으로 전환된 8곳(직영 2곳·별정 6곳) 중 대구 1곳, 경북 7곳이다. 전체 22곳 중 15곳(68%)이 경북에 집중돼 있다.
도심과 달리 농촌 면 단위에서 폐국 또는 우편취급국으로 전환될 경우 주민들은 큰 불편을 겪는다.
우체국이 완전 폐국되면 우편물 수령 및 발송, 택배 접수 등 기본적인 우편 서비스조차 지역 내에서 이용할 수 없게 된다. 이로 인해 주민들은 이웃 읍·면 거점 우체국까지 먼 거리를 이동해야 하는 교통 불편을 떠안게 된다.
우편취급국으로 전환되면 우편 서비스는 유지되지만 예·적금, 보험, 공과금 수납 등 모든 금융 업무가 전면 중단된다.
도시 지역은 대체 시중은행이나 관공서가 인근에 밀집해 있지만, 면 단위 농어촌에서는 우체국 금융 철수가 곧 '금융 기능의 상실'을 의미한다.
전체 구조조정 대상 22곳 중 별정우체국이 13곳에 달해, 민간 위탁자의 사정에 따라 농어촌 금융 안전망이 손쉽게 허물어지는 구조적 취약성도 여실히 드러났다.
◆'스마트 ATM' 대안의 허구성과 절차적 깜깜이
우정사업본부는 초고령 주민의 금융 배제를 최소화하기 위해 우편취급국 내 일반 ATM이나 스마트 ATM기기를 설치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이 역시 현장을 모르는 탁상행정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쏟아진다.
농어촌 버스 배차 간격이 길어 읍내까지 왕복 2시간 이상 소요되는 교통 취약지역에서, 모바일 뱅킹이나 복잡한 기기 조작이 불가능한 80대 이상 초고령층에게 ATM기기는 대안이 될 수 없다.
별정우체국 폐국 시 직영 전환 여부를 결정하는 내부 심사 평가 기준(배점표)을 공개하지 않는 점도 논란을 키운다. '대체 금융기관 인정 거리'나 '금융 수요'에 대한 객관적 규정 없이 깜깜이 심사로 민간 격하를 결정하면서 주민들의 알 권리와 불복 절차를 봉쇄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 독립채산제의 그늘…법 개정 취지 무색하게 하는 예산 배정
우정당국은 독립채산제로 운영되는 우편사업특별회계의 적자 보전을 이유로 내세운다. 그러나 지난 5월 '우정사업 운영에 관한 특례법'이 개정되면서 우체국예금 이익금을 우편사업 적자 보전에 활용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한층 강화됐다.
내부 재원을 통해 농어촌 지역의 보편적 우정서비스를 유지할 수 있는 길이 열렸음에도, 농어촌 소멸위기 지역의 우체국 창구망 유지(직영화)를 위한 직접 예산 배정은 지극히 미미한 실정이다. 우정사업본부가 경영 효율성만을 강조하며 공공재적 책무를 외면하는 사이, 농어촌 지역의 기초 인프라가 철수하고 이는 다시 인구 유출을 가속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지역 시민단체 관계자는 "교통과 금융 취약지역 주민의 공공서비스 접근성은 지자체와 우정당국이 함께 책임져야 할 국가의 최소한의 의무"라며 "적자 논리로 농어촌 공공 서비스를 걷어내는 것은 정부의 지역균형발전 기조를 스스로 부정하는 처사"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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