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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훈 기자의 아웃도어 라이프] 해발 0m에서 정상까지…한라산 오르는 또 다른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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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 삼각봉 대피소를 찾은 등산객들이 구름 사이로 잠시 모습을 드러낸 삼각봉을 사진에 담으며 정상에 오르지 못하는 아쉬움을 달래고 있다. 김도훈 기자
한라산 삼각봉 대피소를 찾은 등산객들이 구름 사이로 잠시 모습을 드러낸 삼각봉을 사진에 담으며 정상에 오르지 못하는 아쉬움을 달래고 있다. 김도훈 기자

씨투써밋(Sea to Summit). 해수면에서 시작해 산의 정상까지 오르는 산행의 한 방식이다. 2013년 고(故) 김창호 대장이 해발 0m 지점인 인도 콜카타에서 카야킹과 사이클링, 트레킹으로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에 도착한 뒤 정상(8848m)에 오른 게 씨투써밋의 대표적 사례다.

처음부터 한라산 씨투써밋을 작정 한 건 아니었다. 한라산을 떠올리다 문득 해발 0m, 제주항에서 시작해 한라산 정상(1,947m)인 백록담까지 오르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하루 30㎞가 넘는 산행을 통해 자신의 한계를 시험해보자는 생각에서였다. 이 산행을 계획하면서 좀 더 도전적인 여행을 원하는 MZ세대를 중심으로 씨투써밋이 유행한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대략적인 계획은 이랬다. 제주도 북쪽 제주항 용진교에서 출발해 관음사 탐방로 입구까지 도로구간을 걷는다. 관음사 탐방로로 백록담을 오른 뒤 성판악 탐방로로 하산한다. 도로 구간 12㎞, 산행 19㎞, 총 31㎞ 규모의 장거리 코스다.

동틀 무렵 랜턴을 켜고 한라산을 오르는 등산객들. 김도훈 기자
동틀 무렵 랜턴을 켜고 한라산을 오르는 등산객들. 김도훈 기자

◆새벽 제주항서 시작한 도전

전날 밤 숙소에서 2시간쯤 눈을 붙인 뒤 자정 쯤 눈을 떴다. 짐을 챙겨 출발지점인 제주항 인근 용진교에 도착한 시각은 오전 1시 40분. 비가 올 것이라는 예보와는 달리 비는 내리지 않았고 기온도 포근했다.

네이버지도를 열었다. 관음사 탐방로 입구까지 도보로 4시간쯤 걸린다는 것을 확인한 뒤 한라산으로 향했다. 동문시장, 제주시청, 제주대학교…. 제주 시내를 관통하는 길을 빠르게 지나쳤다. 8㎞지점에 있는 마지막 편의점에서 아침식사용 김밥과 이온음료를 포함한 간식을 산 뒤 10분 정도 휴식을 취했다.

도심을 지나 중산간 지역에 접어들면서 가로등이 하나 둘 줄어들었다. 서서히 땅의 기울기도 가팔라졌다. 어느새 인도가 사라지고 갓길을 따라 뚜벅뚜벅 걸었다.

일요일이었던 만큼 '씨투써밋'을 하는 이들 서너 명쯤은 만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4시가 넘도록 등산객은 보이지 않았다. 조금은 의아하다고 생각했지만 그때만 해도 이 시각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었는지 알지 못했다.

한 시간 가까이 이어진 아스팔트 산길에 지쳐갈 즈음 '씽' 하고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자동차에 자꾸만 눈길이 갔다. 히치하이킹을 하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누르고 묵묵히 걷다보니 관음사 탐방로 입구다. 계획한 3시간 30분 만에 출발지점에 도착했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한라산 등산로엔 해발고도를 새겨둔 바위가 곳곳에 있다. 김도훈 기자
한라산 등산로엔 해발고도를 새겨둔 바위가 곳곳에 있다. 김도훈 기자

◆체력 안배, 속도 조절이 성패 갈라

조금씩 빗방울이 떨어졌다. 차에서 내린 등산객들이 하나 둘 산행을 시작한다. 약간의 휴식 후 오전 5시 20분쯤 다시 산행을 시작했다. 랜턴 불빛만 빛나는 캄캄한 숲길을 걸으며 3년 전 겨울 이 코스를 올랐던 기억을 떠올렸다.

관음사 코스는 한라산 탐방로 가운데 가장 높은 난이도의 코스로 꼽힌다. 탐라계곡 목교 전까지는 걷기 좋은 숲길이 1시간 정도 계속된다. 목교를 지난 후부터 본격적인 오르막길이 시작되며 삼각봉 대피소까지 거의 쉴 틈 없이 가파른 구간이 이어진다. 개미등이라고 불리는 3㎞ 정도 거리의 이 오르막은 관음사 코스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정도로 힘든 구간이다.

개미등이 시작될 무렵 어둠이 서서히 걷혔다. 차곡차곡 고도를 높이며 가파른 언덕을 올랐다. 12㎞에 이르는 도로구간을 세 시간 넘게 걸어온 탓인지 다리가 무거웠다. 최대한 컨디션을 조절하며 오르다 쉬기를 반복했다.

삼각봉 대피소를 500m쯤 남겨뒀을 무렵, 조금씩 떨어지던 빗방울은 옷이 젖을 정도의 비로 바뀌고 있었다. 그곳에서 산을 내려오고 있는 키 큰 외국인을 만났다. 등산로 입구에서 트레일러닝 복장을 하고 빠르게 산을 오르던 이였다. '2시간 만에 정상에 올랐다가 이곳까지 내려올 수 있을까.' 이런 의문이 들어 그가 산을 오른 속도를 계산해보려 했지만, 그게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에 이내 포기하고 말았다.

그렇게 걷기를 30여분. 오랜 오르막 끝에 멀리 삼각봉 대피소가 보였다. 그 뒤로 하늘을 찌를 듯 뾰족한 원뿔 모양의 삼각봉은 구름에 가려 보이질 않았다. 대피소 앞에서 비는 바람에 이리저리 흩날리고 있었다. 삼각봉대 피소까지 이어진 오르막을 무사히 오른 것을 자축하며 시계를 살폈다. 오전 7시 50분. 관음사 탐방로에서 산행을 시작한지 2시간 30분만이었다.

한라산 삼각봉 대피소를 찾은 등산객들이 구름 사이로 잠시 모습을 드러낸 삼각봉을 사진에 담으며 정상에 오르지 못하는 아쉬움을 달래고 있다. 김도훈 기자
한라산 삼각봉 대피소를 찾은 등산객들이 구름 사이로 잠시 모습을 드러낸 삼각봉을 사진에 담으며 정상에 오르지 못하는 아쉬움을 달래고 있다. 김도훈 기자

◆씨투써밋…나 자신을 확인하는 과정

대피소엔 10명쯤 되는 등산객이 각자 가져온 음식을 먹으며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김밥을 꺼내 아침 식사를 하며 '계획한 대로 진행 중이다' '이대로만 가면 문제없겠다'며 안도했다.

음식을 먹으며 휴식을 취해서인지 컨디션이 금세 올라왔다. 이곳에서 좀 더 휴식을 취한 뒤 오전 8시 30분쯤 정상으로 출발할 계획을 세웠다. 그때 옆자리에 있던 등산객의 대화소리가 어렴풋이 들렸다. '입산통제가 풀릴 것 같냐'는 얘기였다.

'이게 무슨 소리지'하는 생각에 옆자리 등산객에 물었더니 "새벽에 한라산국립공원에서 보낸 카카오톡 메시지를 못 받았냐"는 답이 돌아왔다. 휴대전화기를 꺼내 확인해보니 오전 4시 41분쯤 다음과 같은 메시지가 와있었다. "기상특보(기상악화)로 삼각봉 대피소 까지만 탐방이 가능합니다. 자세한 탐방로 통제 여부는 한라산국립공원 홈페이지에서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예정된 시간에 관음사 탐방로 입구에 도착하기 위해 정신없이 걷고 있던 탓에 미처 카카오톡 메시지를 확인하지 못한 것이었다. 도심 구간에서 '씨투써밋'을 하는 이들을 왜 만나지 못했는지, 외국인 등산객이 그렇게 빨리 하산할 수 있었는지 하는 의문도 그제야 풀렸다.

한라산 삼각봉 대피소를 찾은 등산객들이 구름 사이로 잠시 모습을 드러낸 삼각봉을 사진에 담으며 정상에 오르지 못하는 아쉬움을 달래고 있다. 김도훈 기자
한라산 삼각봉 대피소를 찾은 등산객들이 구름 사이로 잠시 모습을 드러낸 삼각봉을 사진에 담으며 정상에 오르지 못하는 아쉬움을 달래고 있다. 김도훈 기자

이번 산행이 기록을 달성하거나 인증을 위해 기획한 것은 아니었지만 '혹시나' 하는 생각에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기사를 어떻게 쓸지도 걱정이었다. 삼각봉 대피소의 동절기 정상 구간 입산 제한 시간이 오전 11시 30분인 만큼 오전 10시까지는 기다려보기로 했다. 그사이 대피소에 있던 등산객들은 하나 둘 발길을 돌렸다.

오전 10시가 되도록 입산 통제는 풀리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기상 어플을 통해 날씨가 좋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한 뒤 하산을 시작했다.

한라산 정상은 이미 수차례 올랐었기에 크게 아쉽지는 않았다. 대피소에서 정상까지 2.7㎞ 구간을 오르지 못했으니, 총 31㎞ 가운데 25㎞를 큰 무리 없이 올랐다는 것만으로도 그럭저럭 만족스러웠다. 하산하는 내내 이 정도 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갖게 된 자신이 대견하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런 마음의 여유도 잠시 뿐. 탐방로 입구가 가까워지면서 거셌던 비바람이 잔잔해졌다. 이따금씩 구름 사이로 파란 하늘도 보였다. '대피소에서 조금 더 기다려봤어야 했나'하는 미련이 올라왔다. 탐방로 입구에 다다른 뒤 통제소 직원에게 물었다. "정상 구간 입산 통제 풀렸나요?" 그런 자신의 모습에 '아직 멀었구나' 싶었다.

한라산 씨투써밋 출발점인 제주항 인근 용진교. 김도훈 기자
한라산 씨투써밋 출발점인 제주항 인근 용진교. 김도훈 기자

[한라산 씨투써밋 TIP]

바다에서 출발해 한라산 정상을 오르려면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하루 12시간을 써도 빠듯하다. 구간별 시간 계획을 미리 세워두면 큰 도움이 된다.

용진교부터 관음사 탐방로 입구까지 12㎞ 구간은 3시간 30분 정도로 잡으면 적당하다. 관음사 탐방로 입구부터 삼각봉대피소까지 6㎞ 구간은 경사가 심한 오르막 구간이 있어 개인별 시간 편차가 심한 편이다. 대략 3시간 정도로 잡으면 넉넉하다. 삼각봉 대피소에서 정상까지 이어진 3㎞ 구간은 2시간이면 충분하다. 정상에서 진달래밭 대피소를 거쳐 성판악 탐방로 입구로 내려오는 10㎞ 구간은 4시간 정도로 잡으면 적당하다.

한라산 정상을 오르기 위해서는 한라산국립공원 홈페이지(visithalla.jeju.go.kr)를 통한 탐방 예약이 필수다. 매월 1일 오전 9시부터 다음 달 이용 예약 신청을 받는다. 1인당 본인 포함 4명까지 신청할 수 있다. 탐방 이용료는 무료다. 성수기나 연휴 때는 빠르게 마감되기에 오픈시간에 맞춰 예약을 시도 하는 편이 좋다.

입산 시작 시간은 동절기(10월~3월)와 하절기(4월~9월) 모두 오전 5시다. 입산 시간은 탐방 예약 시 1타임(오전 5~8시)과 2타임(오전 8시~11시30분) 중 선택할 수 있다. 탐방 예약은 입산 탐방로를 기준으로 한다. 하산 시에는 탐방 예약과 상관없이 원하는 코스로 내려오면 된다.

한라산은 당일 산행을 원칙으로 하기에, 일몰 전 모든 탐방객이 하산을 완료할 수 있도록 대피소와 정상에서 통과시간과 하산시간을 규제하고 있다. 동절기 기준 대피소 통과 통제 시간은 오전 11시 30분, 정상 하산 시간은 오후 1시 30분, 대피소 하산 시간은 오후 3시 30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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