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무인기 전시회장을 웃으며 둘러봤다. 전시된 것은 단순한 정찰용 드론 몇 대가 아니었다. 북한은 한국군 감시초소(GP)와 K9 자주포, 미군 전차 등을 본뜬 표적을 자폭형 무인기로 공격하는 장면까지 공개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파병된 북한군이 실전에서 드론 중심의 현대전을 경험하고 있다는 점까지 감안하면, 우리 군이 김정은 위원장의 단순한 행사 방문 행보로 넘길 장면이 결코 아니다.
마침 이인제 전 국회의원은 31일 오후 3시 21분쯤 페이스북을 통해 이 장면을 거론하며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현대전의 양상에 혁명적 변화가 일어났다. 드론과 무인기가 전장을 주도하게 된 것"이라고 적었다.
그러면서 한국군의 드론 생산능력과 실전배치, 전략·전술 수준을 물은 뒤 이야기를 박정희 전 대통령 시기까지 끌고 갔다.
"박정희는 유비무환(有備無患)을 강조했다. 이재명이 말하는 재래식전력 세계 5위는 박정희가 추진한 방위산업 육성의 결실이다."
이 주장, 하나씩 뜯어보면 어떨까. 오늘날 한국군은 과연 박정희 전 대통령이 만들기 시작한 자주국방의 뿌리 위에 서 있는가. 그리고 이재명 정부는 그 유산을 이어받고 있는가, 이인제 전 의원 지적대로 놓치고 있는 부분도 없잖은가.
◆박정희가 만든 건 '무기 한두 개'가 아니라 국방 시스템 자체
박정희 정부의 자주국방을 단순히 군사비 증액으로만 설명하기는 어렵다.
1960년대 말 잇따른 북한의 도발과 미국의 닉슨독트린, 주한미군 감축 움직임은 한국에 '미국이 언제까지나 대신 지켜줄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이에 1970년 국방과학연구소(ADD)가 만들어졌고 1971년 말에는 이른바 '번개사업'이 시작됐다. 소화기와 발칸포, 로켓, 탄약 등 기본 무기체계를 국내에서 직접 개발할 수 있는 능력을 확보하려는 시도였다. 1973년에는 방위산업에 관한 특별조치법이 마련됐고 이듬해부터는 대규모 전력증강계획인 '율곡사업'이 추진됐다.
더 중요한 것은 방위산업이 당시의 중화학공업 육성과 별개의 정책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철강·기계·조선·전자·화학산업을 키우는 것은 수출산업 육성이면서 동시에 탱크와 함정, 화포와 각종 군수품을 스스로 만들 수 있는 산업 기반을 구축하는 일이기도 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포항제철 건설 당시에도 철강산업을 기계·조선·자동차뿐 아니라 군수산업 육성의 기반으로 직접 언급했다.
따라서 오늘날까지 남은 박정희 국방의 가장 큰 유산을 하나만 꼽으라면 특정 무기보다 '위협이 생기면 연구개발과 산업, 군을 연결해 필요한 무기를 국내에서 만들어내는 체계'라고 할 수 있다. 오늘 한국 방위산업의 뿌리 가운데 하나가 이때 형성됐다고 볼 수 있는 이유다.
다만 그늘도 적잖게 있었다. 자주국방과 중화학공업 육성은 유신체제의 강력한 국가 동원 아래 추진됐고 과잉·중복 투자와 외채 증가 같은 부작용도 남겼다. 당시의 자주국방 역시 미국과의 동맹과 군사·기술 지원을 전제로 성장했다.
◆"세계 5위 군사력" 강조한 이재명…'자주국방' 꾸준히 천명
그런데 이재명 대통령도 '자주국방'을 반복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월 "불안정한 국제 정세 속에 자주국방은 기본 중의 기본"이라고 했고, 3월에도 외부 지원이 사라지는 경우까지 대비해 "자체적으로 방위할 수 있도록 자주국방 역량을 충실히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의 군사력에 대해서도 "세계 5위"라는 표현을 여러 차례 사용했다.
이는 미국 민간 군사력 평가기관 글로벌파이어파워(GFP)의 2026년 평가에서 한국의 재래식 군사력이 미국·러시아·중국·인도에 이어 145개국 가운데 5위를 기록한 걸 인용한 맥락이다. 다만 이는 국제기구의 공인 순위가 아니라 병력·무기·경제력·국방예산 등 60여개 지표를 종합한 민간기관 평가라는 점은 짚을 필요가 있다. 5위라는 숫자보다는 상위권이라거나 경쟁력이 있다는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
현 정부 정책에서도 자주국방 기조는 지속적으로 확인된다.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2027년 국방예산안은 73조2777억원으로 올해보다 8.2% 늘었다. 방위력개선비는 13.8% 증가한 22조7112억원으로 편성했다. KF-21과 핵추진잠수함 등 독자 전력 확충,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을 위한 핵심능력 확보, AI와 유·무인 복합체계 확대도 주요 투자 대상으로 제시했다.
방산을 산업으로 키우겠다는 방향도 명확히 나왔다. 이재명 정부는 '방산 4대 강국'을 국정 목표로 제시하고 국방반도체 육성과 획득체계 혁신 등을 추진하고 있다.
방식과 시대적 환경은 전혀 다르지만 '동맹을 유지하면서 자체 군사력과 국내 방위산업을 키운다'는 큰 틀만 놓고 보면 박정희 시대 자주국방과 이재명 정부 사이에는 오히려 연결되는 부분이 적지 않다.
◆K9·전차 많다고 끝이 아니다…시험대는 드론 전력 구축 속도?
문제는 전장이 바뀌고 있다는 점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수십억~수백억원짜리 무기체계가 수백만~수천만원짜리 드론의 공격을 받는 모습을 특이한 게 아니라 일상적인 장면으로, 전투 교범을 바꿔야 할 정도로 변화시켰다.
북한군은 러시아 파병 초기 드론전에 고전했으나, 러시아로부터 드론 조종과 전술을 전수받는 정황이 우리 정보당국에 포착됐다. 어느 정도의 인원이 얼마나 높은 수준의 전술을 습득했는지는 파악하기 어렵지만 북한이 실전 경험을 얻고 있다는 사실 자체는 중요한 변수다.
물론 한국군도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국방부는 지난 6월 한국형 장거리 자폭무인기 K-LUCAS를 당초 계획보다 앞당겨 2030년 이전 전력화하고, 근거리 정찰드론과 소형 자폭드론 등 저가·소모성 드론을 2030년까지 2만대 이상 확보하겠다고 밝혔다. 또 AI 군집드론과 대드론체계 역시 함께 개발하고 50만 '드론 전사'를 양성한다는 계획이다. 2027년 예산안에서는 AI·유무인 복합체계 예산을 올해보다 55.5% 늘렸다.
따라서 이재명 정부가 드론전에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는 주장은 사실과 맞지 않는다. 오히려 중요한 질문은 '하고 있느냐'보다 '얼마나 빨리 하고 있느냐'다.
드론은 전차나 전투기처럼 한 번 개발해 수십 년 사용하는 전통적인 무기와 성격이 다르다. 수개월 단위로 기술이 바뀌고 값싼 기체를 대량 소모한 뒤 전장에서 얻은 데이터를 반영해 곧바로 다시 개량하는 체계가 중요하다. 정부가 기존 방위사업 절차만으로는 이런 속도를 따라가기 어렵다고 보고 별도의 신속획득 제도까지 추진하는 까닭이다.
1970년대 박정희식 자주국방의 본질이 '필요한 무기를 우리 손으로 빨리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면, 반세기 뒤 이재명 정부가 그 정신을 제대로 계승하는지를 판단할 기준도 결국 예산 규모보다 전력화의 속도가 될 수 있다. 드론 전력 구축 속도가 그 핵심 지표가 될 수 있는 것.
◆박정희의 '유비무환', 지금 계승할 것과 놓쳐선 안 될 것
박정희 시대 자주국방의 유산은 겉으로 드러난 '강경한 대북 발언' 그 자체가 아니다. 국방과학연구소를 만들고, 국내에서 무기를 개발하며, 철강·기계·조선·전자산업을 방위산업과 연결하고, 장기간에 걸쳐 군 전력을 증강한 시스템이 보다 실질적인 유산이다.
그 기준으로 보면 이재명 정부도 상당 부분 그 뿌리 위에 서 있다. 자주국방을 직접 강조하고 있고 국방비와 방위력개선비를 늘리고 있다. KF-21을 비롯한 국산 첨단전력, 방위산업, AI·무인체계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이에 더해 박정희의 '유비무환'에서 제대로 교훈을 얻는다면, 북한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얻은 교훈을 얼마나 빠르게 군 전체에 확산시키는지, 값싼 자폭드론을 얼마나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는지, AI와 전자전을 어떻게 결합하는지 계속 지켜보고 대응하는 게 중요해진다. 우리 군 역시 드론 몇만 대를 구매해 실전에 배치했다는 숫자 자랑을 넘어 새 장비를 수개월 단위로 시험하고 시행착오를 겪고 다시 고치는 체제를 만들 수 있어야 한다.
박정희가 남긴 자주국방의 뿌리는 이재명 정부에서도 끊기지 않았다. 오히려 국산 첨단전력과 방위산업 육성만 놓고 보면 그 계보 위에 있다고 볼 만한 부분이 적지 않다. 다만, 1970년대 자주국방 시험지 핵심 문항이 '우리 무기를 우리 손으로 만들 수 있느냐'였다면, 지금 풀어야 할 문제가 하나 더 늘었다. '전쟁의 방식이 바뀌는 속도만큼 빠르게 우리 군도 바뀔 수 있느냐'다.






































댓글 많은 뉴스
"외국인 노동자 '송금 기계' 폄훼" 말나온 李 발언…통계 보니 "절반 이상 해외로"
박지원 "민주당 지금 잘하고 있어요"…김어준 "아니요" 즉각 반박
'247만장' 투표지 반출 완료…"야반도주하듯, 피의자 손에 증거 맡기나" 국힘 반발
국방위원장 방미도 막혔다…美, 진성준 비자 발급 '거부' "강력 유감"
[단독] 김현지 실장 남편, 세무법 위반 의혹…'이중 사무소' 불법 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