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섭이나 흥정을 하는 방식은 세가지가 있다. 첫째는 나는 불리하게 되어도좋으니 어떻게 해서라도 상대방에게 더 큰 불리함을 주어서 {공멸}하는 {네가티브섬 게임}방식이고, 둘째는 상대방에게 손해를 입힘으로써 그만큼 내가이익을 더 얻고자하는 {제로섬 게임}방식이고, 셋째는 나에게도 유리한 동시에 상대방에게도 유리한 방식을 모색하는 {포지티브섬 게임}방식이다. 첫째와둘째방식은 교섭이 아니고 적과 싸우는 태도이고, 셋째방식은 진정한 교섭과흥정방식이다. 여기서 {쌍방에 다같이 유리한 방안}이란 단기적인 것이 아니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양자에게 서로 도움이 되는 방안을 말한다. 이러한 {장기적인 관점에서 쌍방에 유리한 방안}을 찾다가 보면 단기적으로는 서로 약간의 불편을 겪어야만 할때도 있다. 이것이 민주주의시대의 교섭방식이다.그런데 최근의 노사분규 과정에서는 {그들}, {동지들}, {투쟁}등 선량한 시민들에게 무서움과 살기마저 느끼게 하는 혁명적 용어들이 자주 흘러나온다.즉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책동을 분쇄하여야 하고, 그것을 위해선 {동지들}은 끝까지 {투쟁}해야 한다는 혁명군의 독전명령이다. 따라서이러한 분위기 속에서는 {상대방의 몫을 내가 더 많이 차지하는 제로섬 게임}이 되든지 혹은 직장이 없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물러설 수 없다는 {공멸}의길을 택하든지 두가지중에 한가지 방법 밖에는 없다. 즉 상대방이 항복을 해야 결과가 나게 되어있다.피.아의 구분은 공멸뿐-{사회주의 혁명}을 위하여 {적}과 대항하여 싸울때에비슷한 용어들을 듣는다. 몇년전 학생데모가 한창 과격했을 때에는 {적}이라는 용어가 자주 쓰여졌다. {혁명}을 위해 대중을 독전할때에는 구체적인 {적}이 있어야 하고, 싸울 {적}이 없으면 일사불란한 혁명대열이 유지되지 않는다. 그래서 항상 그러한 {적}을 내부에서 찾아야 하고, 내부의 적이 다 소멸되었으면 외부에서 적을 찾아야 한다. 즉 공산주의체제가 유지되려면 항상 적이 있어야 한다. 인민들의 마음속에 적이 없어지면 공산주의는 그 이상 존속할 수 없다. 몇년전에 고르바초프 당시 소련대통령과 같이 통역으로 한국에왔던 재소련 교포도 구소련붕괴의 원인으로 바로 이점을 지적하였었다.투쟁할 적이 있어야 존속할 수 있는 사회는 결코 오래가지 못한다. 적을 정해 두고 그 적과의 투쟁을 독려하면서 긴장속에서 살아가는 사회는 이제 지구상에 두곳밖에 없고 그것마저 언제 소멸될는지 모르는 상태에 있다. 민주주의사회는 투쟁할 {적}이 없이 발전하는 사회이다. 오늘날의 선진국들은 다 그렇게 발전되어 왔다.
민주사회에서의 노동운동은 자본가를 타도하기 위한 사회주의운동과는 달라야 한다. {대립}의 개념에서가 아니라 {공생}의 개념에서 출발하여야 한다.비록 개인이 창설하였다 하더라도 기업이 어느정도 이상 커지면 수많은 종업원과 하청업체의 종업원 및 그들 가족들의 생계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므로 싫건 좋건간에 기업은 {사회적 존재}가 되고만다. 이때에 기업의 목적은 {이윤의 극대화}가 아니고 {기업의 존속을 위한 적절한 발전}이 된다. 주식이 분산되고 독점자본가 대신에 보험회사, 연금공단, 우리사주등이 대주주가 되면 자본주의는 있어도 자본가는 사라지게 되어 {연금자본주의 시대}가 된다. 그 연금은 회사 종업원이 내는 돈이다.
투쟁대신 토론하라-이러한 상태하에서는 {그들}대신에 {우리}라야 하며 {동지들}대신에 {모두들}이라야 하고 {투쟁}대신에 {토론}이라야 한다. 그속에서라야만 모두에게 다 유리한 {포지티브섬} 방안이 나온다. 필자는 공산당 출신시장 치하의 로마에서 살았지만 머리에 붉은 띠를 두르고 {그들과의 투쟁}을외치는 광경은 공산당이 지배하던 로마의 각종 파업에서도 볼 수가 없었다.시대가 변하면 노사협상의 방식도 변하여야 한다. 우리의 방식은 너무나 구식이고 영웅주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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