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 댐 건설은 제가 현직에 있을때 대통령으로서 정책판단을 하고 결정했던 일이다. 안보와 관련된 문제로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현상을 전직 대통령으로서 모른척 할 수 만은 없고, 또 그것이 저와 관련된 사안인만큼, 이 기회에 평화의 댐 축조를 결정하게된 경위와 배경에 관해 말씀드리고자 한다.1953년 휴전이래 북한의 전면남침이 없었다고 해서 40년동안 매년 국가예산의 삼분의 일을 방위비에 투입하여, 북한의 전면전도발에 대비하도록 한 역대대통령들의 정책판단이 단순히 '세금의 낭비'를 가져 왔다고 비난할 수가 있겠는가.북한이 금강산주변의 산악지대에 길을 닦고 도수터널 공사를 하는 등 수상쩍은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정보를 국내외 관계기관으로부터 처음 입수한 것은 1986년초였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이어 같은해 4월에는 북한의 방송이 금강산 발전소계획을 확정했다고 발표했다.
그뒤 저들이 댐 공사의 착수를 공식 발표한 10월까지 수개월동안 북한의 동향과 의도를 면밀히 주시, 분석한 결과 금강산댐이 군사적 목적으로 만드는것일 가능성이 크다는 판단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러한 판단의 근거는 첫째 그들이 전력과 산업용수 확보를 위해 댐을 만드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화력발전소를 만들거나 다른 지역에 수력발전소를 건설하는 경우와 비교해서 전력생산단가가 3-4배 높다는 계산이 나온 것이다.
다음으로 댐이 완공되면 그들 주장대로 산업용수 확보에는 도움이 되겠지만댐건설로 인해 금강산등의 농경지가 수몰되어 22만t 정도의 미곡감산이 예상되는바, 이것은 채산성이 안맞는 얘기가 되는 것이다.
북한이 서둘러 착공한 금강산댐이 인위적으론 폭파되거나 사고로 무너질 경우 한강수계에 큰 피해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그들의 선의를 믿고 팔짱을 끼고 있을 수는 없었던 것이다.
설혹 '수공의도가 전혀 없다'는 그들의 말을 믿어 주고 싶다고 하더라도 그믿음이 1백%확실한 것이 아니고, 다만 1%의 의심이라도 남는다면, 그리고 그1%가 우리의 생존권에 위협이 된다면 국가안보를 책임진 대통령으로서는 대응책을 찾아 보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다.
더욱이 그 시기는 북한공산집단이 방송등 그들의 선전매체를 통해 "서울 올림픽을 결코 수수방관하지 않겠다"고 되풀이 위협하고 있던 상황이었다.북한의 고위당국자들이 "금강산댐을 만들어서 비상시에 문을 열어 놓으면 서울 시내에서 물에 잠기지 않는 아파트는 하나도 없다" "남조선것들이 올림픽한다고 우쭐대지만 금강산댐만 만들어 놓는 날에는 서울이 물바다가 될것"이라고 공언했다는 사실을 귀순한 북한관리들이 증언한 바 있다.국가안보를 확고히 해야 할 대통령으로서 최악의 상황, 있을 수 있는 모든위협의 가능성까지 철저히 점검해야 했다.
정부가 금강산댐에 관해 처음 발표할때 2백억t이라고 한 것은 정보입수 초기에 댐건설 현장으로 추정되는 위치의 지형자료등을 토대로 계측한 그 지역의용적의 최대치라고 이해했으며, 나중에 외국전문기관에 분석을 의뢰한 결과와도 일치한 것으로 보고 받았다.
북한이 겉으로 내세우는 건설목적과 규모야 어쨌든 일방적 댐건설이 공유하천이용에 관한 국제관례에도 어긋나는 일인만큼 정부로서는 공사를 중단하라고 여러차례 촉구하였다. 금강산댐이 그들 주장대로 전력과 산업용수를 얻기위한 것이라면, 우리 쪽에서 전력을 공급하는등 충분한 보상을 해 주겠다는대안도 제시했다.
그러나 북한은 우리의 이러한 모든 제의를 묵살한 채 공사를 강행했다. 불가피하게 정부는 대응댐의 축조를 결정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그런 가운데에서도 대응댐 공사를 2단계로 나누어 추진하자는데는 쉽게 합의를 보았다. 다시 말해 1단계로는 우선 북한이 3억t 정도 가물막이 공사를 끝냈을때의 위협에 대비하는 규모로 댐을 만들기로 한 것이다.그렇게 되면 84년 홍수때의 수량 9.4억t과 북한의 가물막이댐 3억t을 합쳐12.4억t 정도의 수량이 될 것인바, 이에 대응하는데에는 평화의 댐 5.9억t과화천댐등 기존댐의 수위조절 저수량 7억t을 합친 12.9억t으로써 최소한의응급책은 된다고 계산한 것으로 이해했다.
2단계공사는 금강산댐의 최종적인 규모를 확인해가면서 그들의 공사진도에맞추어 추가하여 순차적으로 추진할 계획이었던 것이다.
현재 1단계공사가 끝난 상태로 있는 평화의 댐이 물을 담고 있지 않은 모습으로 있어서, 일부에서는 "막대한 국민성금을 삼킨채 쓸모없이 서 있는 거대한 시멘트 구조물"이라고 비판적으로 얘기하고 있지만, 덩그렇게 그런 모습으로 서 있는 것 자체가 평화의 댐의 본래의 '쓸모'인 것이다.그 당시와 비슷한 상황에서는 2백억t이 아니라 수억t만 더 쏟아져 내려와도큰 피해를 입게 될 것이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뿐만 아니라금강산댐으로부터 2백억t의 물이 쏟아져 내려 오거나 70억t의 물이 쏟아져내려오거나 서울이 마비될 정도의 피해를 입게 되는것은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1단계공사를 조기에 착공한 것은 북한이 초기에는 5만 병력을 투입했으나 86년가을에는 15만명의 투입을 결정하는등 공사를 급히 서두르는 징후가 나타났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러한 동향은 단기적 군사목적에 따라 움직이는 것으로 보았고 그것은 곧 서울올림픽을 겨냥한 것이 아니냐하는 우려를 갖게 한 것이다.
당국의 분석으로는 3억t정도의 저수량인 가물막이 댐은 북한이 5개월 안에만들수 있다는 계산이었고 따라서 정부로서는 올림픽이 열리는 88년 우기이전에 최소한 10억t 안팎의 수공만이라도 막을 수 있는 5.9억t 규모의 1단계 댐을 조기착공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일부 잘못 알려져 있듯이 공사를 하다가 흐지부지 중단된 것이 아니고, 예정했던 1단계 공사는 당초 계획대로 88년 6월 완공된 것이며, 현재도 공사가 계속되고 있는 북한쪽의 공사진도에 따라 2단계공사를 계속할수 있도록 계획이서 있다.
지난해에만 해도 김일성과 김정일이 금강산댐에 관한 교시를 발표하고 건설사령관인 인민무력부장에게 군병력의 집중투입을 지시하는등 직접 공사를 독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금강산댐과 수공위협의 가능성은 분명히 실체가 있는 것이다.
평화의 댐이 지금은 우리의 시급한 관심사가 아니라고 해서, 또 평화의 댐을건설할수밖에 없었던 당시의 상황을 지금에 와서는 실감할 수 없다고 해서그때의 일들을 부정적으로만 볼 수 없다고 생각한다.
저는 단임의 실현으로 우리 헌정사상 초유의 평화적 정부이양을 이룩하는 것이 최대의 역사적 사명이라는 신념을 시종일관해서 지켜왔고 또 실천했다. 평화의 댐 건설을 착공할 당시 저로서는 잔여임기를 불과 1년 남짓 앞둔 시기였다.
당시의 시국이 다소 어려웠다고 하더라도, 있지도 않은 북한의 위협을 날조해가면서까지 1년남은 정권을 유지해야 할 만큼 그렇게 허약하고 부도덕한 정부는 아니었다고 저는 믿고 있고 또 주장하고 싶은 것이다.제가 재임중에 정부와 공직자가 한 모든 일은 그것이 어떤 경로로 입안되어어떻게 실행되었든, 그것을 최종보고받고 결정하고 지시한 것은 대통령이었던 나였다.
따라서 그 책임은 비록 퇴임한 후인 지금에 와서도 모두 저에게 귀착된다.일부 실무자나 전문가들의 보고, 건의와는 다른 내용의 결정을 내린 경우도없지 않을 것이다. 평화의 댐과 관련한 사항도, 모든 정보보고와 판단자료를 제가 검토하고 심사숙고해서 최종적으로 결정하고 지시한 것임을 다시한번분명히 밝혀 두고자 한다.
댓글 많은 뉴스
이준석, 전장연 성당 시위에 "사회적 약자 프레임 악용한 집단 이기주의"
5·18묘지 참배 가로막힌 한덕수 "저도 호남 사람…서로 사랑해야" 호소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민주당 "李 유죄 판단 대법관 10명 탄핵하자"…국힘 "이성 잃었다"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