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소설-타인의 시간(60)

나는 미처 옷을 입을 겨를이 없었으므로, 얼른 송수화기를 뽑아들고 화장실로 돌아왔다. 큰오빠였다.[집에 아무 일 없지?]

언제나 그렇지만 큰오빠의 덤덤한 목소리가 수화기속에서 흘러나왔다. 어디서 전화하는지 잡음이 심하게 영겨붙고 있었다.

[큰오빠, 어디야? 얼마나 기다렸다구]

나는 반갑기도 하고 섭섭하기도 하여 다소 격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래도큰오빠의 목소리는 여전히 덤덤했다.

[아버지는?]

[여태 그러고 계셨어. 작은오빠가 지금 약을 먹이고 있어. 빨리 돌아와.][그래 미안하다. 아직 일이 좀 남았어]

[무슨 일인데? 오늘도 안 들어올 거야?]

[알았어. 걱정하지 말고 자]

그리고 전화가 뚝 끊어졌다. 큰오빠는 맨날 저런식이다. 상대방 입장이나 기분은 조금도 헤아려 주지 않는다. 어떻게 걱정 안하고 잔단 말인가. 어디서무슨 일을 하는지 밝히지도 않았으면서. 그리고 오늘 들어온다는 말인지 안들어온다는 말인지 그것도 불분명했다. 그래도 연락이 왔다는 데 자위하고 나는 아쉬웠지만 송수화기의 통화 버튼을 눌렸다.

작은오빠가 약을 먹였는지 아버지의 기나긴 의식은 멎어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슬픔의 껍질이 한겹 벗겨진 느낌이었다. 이제 언니만 들어오면 오늘밤은큰 지실없이 넘어갈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러자 텔레비전을 켜 보고 싶은 마음의 여유도 생겼다. 얼핏, 열어둔 방문 너머로 보니 아버지는 방 가운데 요를 깔고 누워 계셨고, 작은 오빠가 아버지의 다리를 주물러 주고 있었다.

나는 소파에 앉아 젖은 머리를 떨었다. 그러면서도 신경은 줄곧 대문 쪽으로가 있었다. 시간은 어느새 11시 반을 넘고 있었다.

[승혜야, 정말 미안하다. 나는 집 걱정이 돼서 빨리 오려 했는데 정진 씨가자꾸 얘기 좀 더 하자고 붙들잖아. 내가 언제 이렇게 늦게 오대? 그러니 이해 좀 해 주라, 응?]

언니도 큰 오빠처럼 기어이 내 마음을 바특이 졸여야 그렇게 변명하며 현관을 들어설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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