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가장 아름다운 때는 언제일까. 여러 경우를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아무래도 감사하다는 마음을 가질 때와 감사하다는 모습을 보일 때일 것이다. 설날은 온 국민이 감사한 마음과 감사하다는 모습을 보이는 날이다. 소크라테스가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당부했다는 말이 '너 자신을 알라'라 전해지고 있다. 이 말을 석학들은 여러가지로 해석하고 있지만, 나는 '감사할줄 알라'고 해석하고 싶다. 왜냐하면 감사하다는 마음만큼, 숭고하고 순수한말이 없으니 말이다. 인간으로 도달해야 할 완성된 슬기의 절정이 아닐까.이 세상을 하직하는 출구에서 '감사합니다'라는 한 마디 말이 마음속에서 우러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의 지나온 자취가 아무리 화려하고, 남들 보기에찬란했다 하더라도, 그야말로 헛되고 헛된 생애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설날의 여러가지 효능이랄까, 뜻이 있겠지만 감사하다는 생각과 모습이 가장 진하게 표현되는 날이란 것이 소중한 보람이다. 이 귀한, 감사하다는 생각이해마다 연례행사처럼 민족대이동이란 소란을 벌어지게 하고, 세찬과 세주를마련하느라 부산을 떨게한다. 또 각처에서 흩어져 살던 일가 친척들이 장손집에 모여 제사, 다례를 지낸다. 제사나 다례를 지낸 뒤에는 세배와 성묘도잊지 않는다. 세배에는 반드시 덕담이 따른다. '새해에 복 많이 받으십시오'라는 덕담이 있기 마련이다. 나는 꽤 오랫동안 이 덕담이 그대로 수용되지않았었다. 복도 주지 않으면서 받으라 하는가. 저항감도 느꼈었다. 그것도많이 받으라니 어디서 받으라는 것인가. 상당히 오랫동안 순수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어릴 때는 그래도 얼마간의 세뱃돈으로 흐뭇한 느낌이 느껴지기는 하였다. 그러나 어린이 영역을 벗어나고부터는 세뱃돈도 받지 못하고보니, 아무래도 빈말 같고, 부도수표의 남발 쯤으로 여겨지는 것이 솔직한심정이었다. 그러나 역시 세월은 허송되는 것이 아니다. 슬기랄까, 깨달음이란 귀한 선물을 눈에 보이지 않게 실어다 준 셈이다. 생각해 보면 산다는 것이 정말로 아슬아슬한 줄타기의 연속이 아닌가.하루도 거르지 않고, 사건과 사고의 연속인 세파 속에서 오늘날까지 크게 어려움도, 비굴함도 없이 지낼 수 있었다는 것은 나의 재능이나 힘으로 버티어온 것은 아니다. 위로는 창조주의 축복과 조상들의 음덕과, 주위 친지들의염려와 배려의 덕택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눈에 보이지는 않으나 복 많이받으라는 이런 축복이 모이고 모여서, 어지럽고 험한 세파 속에서 오늘날까지 버팀목이 되어왔다. 이런 생각에 이르게 될 때, 덕담이 그냥 스쳐지나가는 덕담이 아니란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이번 설날에는 진정으로 우러나는 '새해에 복 많이 받으라'는 덕담을 할 것이다. 고서에는 설날을 신일이라기도 하였다. 또는 담도라고도 하였다. 조심하여 경거망동을 삼가라는 뜻이리라. 묵은 해를 무사히 보내고, 새해가 시작되는 날이니 경건한 마음으로새해 첫날을 맞이해야 한다는 생각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겠다.모든 일에는 시작이 중요하다는 것은 동서나 고금이 변함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일년의 계획은 원단에 달렸다는 말이 옛부터 전해오고 있을 것이다. 동국세시기에는 벽에다 닭과 호랑이를 그려 붙이고, 액신을 물리치려 했다는고사가 있으나, 요즘은 보기 어렵게 되었다. 또 야광이란 귀신이 있어서 이날 밤 인가에 내려와서 벗어놓은 신을 신어보고 자기 발에 맞는 신을 신고가면, 신을 잃어버린 사람의 신수에 불길이 따른다 하여 자기 전에 신을 모두 감추어버리고 마루벽이나 뜰에 체를 걸어두었다 한다. 야광신이 체의 구멍을 세느라고 신을 훔칠 생각을 잊어버리고 있는 사이에 새벽 닭이 울면 허둥지둥 도망을 쳤다 하였다. 무사히 밤을 넘긴 식구들은 즐거운 마음으로 윷놀이, 널뛰기, 연날리기, 씨름 등으로 즐기며 설날을 보내고 새해를 기쁨으로 맞이한 것이다.
우리의 생활은 외형상으로는 변함없는 반복의 나날이다. 어제의 일을 오늘도되풀이하고, 오늘이 바로 내일인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내면적으로는 변신의 연속이기도 하다. 이런 이치를 어떤 철학자는 날마다 거듭난다 하였다.어제의 나는 죽고, 오늘의 나는 새로 거듭난다 하였다. 거듭난다는 것은 묵은 껍질을 벗어버리고 새 형체를 갖춘다는 것이다. 알에서 병아리가 태어나고, 번데기가 탈피하여 나비가 되는 형상이라 하겠다. 본디 성장은 눈에는띄지 않으나, 사실은 모든 생명체는 부단히 성장을 거듭하는 것이 본질이다.성장하고 변신하는 것이 우리의 생활이고 역사의 흐름이다. 한해를 보내고새해를 맞는 설날의 뜻도 여기에 있다. 한 마디의 매듭을 딛고 새 가지를 키워나가는 것이다. 이번 설날을 맞이하면서 또 한번의 탈피를 경험하게 되는셈이다. 그래서 보이는 것은 잠깐이고, 보이지 않는 것이야말로 영원하다는슬기에 접근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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