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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공간속 도용 "국경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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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 익스프레스'는 미국에서 널리 알려진 신용카드 이름이다. 그런데 몇년 전 미국의 어느 고무제조업체가 '아메리칸 익스프레스'라는 똑같은이름을 가진 콘돔을 상품으로 내놓았다. 신용카드 '아메리칸 익스프레스'가상표권을 문제삼아 콘돔제조업체를 제소한 것은 당연한 일.콘돔제조업체는 신용카드와 콘돔은 상품의 성격이 너무 판이한 것이어서같은 이름의 상표를 사용해도 소비자들 사이에 혼란을 일으키지 않으므로 콘돔 상표로 '아메리칸 익스프레스'는 법적으로 하자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미법원은 '아메리칸 익스프레스'가 너무 많이 알려진 상표이기 때문에 콘돔의 상표로 다시 사용해서는 안된다고 판결했다.문제는 상표 도용이나 가짜 위조상품 수준이 아니라 바로 '국경없는 가상공간' 인터넷의 등장이다. 누구도 통제할 수 없는 세계적인 컴퓨터 통신망은기존 등록상표의 개념 자체를 근본적으로 뒤흔들고 있다. 미국의 기업들은가상공간 속의 등록상표 문제로 심각한 고민에 빠져있다.

'MTV'는 유명한 팝음악프로그램 전문방송이다. 그러나 인터넷을 접속해MTV라는 이름을 찾아보면 40여개가 주루루 쏟아져 나온다. 그 가운데는 독일기쎈 지방의 농구팀 팬클럽도 있고, 미콜로라도대에서 운영하는 음악, 비디오 등 오락전문 동호회도 있다.

미국의 명문 프린스턴대도 인터넷 속의 이름 도용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있다. 프린스턴대는 일찍이 인터넷에 활발히 참여, 현재 이 대학 안에서만약2백개의 도메인이 인터넷에 접속돼 '인터넷 명문' 자리를 굳히고 있다.프린스턴대가 제공하는 GMAT시험 정보를 비롯,학술잡지 '프린스턴 리뷰',유서깊은 유머잡지 '프린스턴 타이거' 등 종류도 매우 다양하다.그러나 문제는 프린스턴대의 인터넷 도메인 이름을 본뜬 비슷한 이름의 다른 도메인들이 끼어들어 그 명성을 도용하고 있는 것. 그 중에는 '프린스턴컨설팅 컴퍼니'라는 기업컨설팅 회사도 있고 호주에 있는 중고자동차 매매상도 끼어있다. 무엇보다 컨설팅 회사나 컴퓨터서비스업체와 같이 프린스턴이란 이름의 전문성을 한껏 살릴 수 있는 업종의 이름 도용이 문제가 되고 있다.

"인터넷 속의 등록상표는 새로운 문제로 남아있습니다. 유명한 상표이름을도메인 이름으로 차용하는 사례가 매우 많이 발견되나 인터넷 속의 문제는국적을 달리하는 국제적인 문제라서 뚜렷한 해결책이 없는 형편입니다"지적재산권 부문에서 매우 강력한 로비단체인 지적재산권위원회(IPC)의자크 골린 회장은 이렇게 실토한다.

인터넷은 가상공간 속의 황금시장으로 떠오르고 있으나 그 속에서 상표도용이 예사로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가상공간 속에서 고유상표를 지키는 것은 아직 불가능한 일.

이와관련 미연방저작권사무소의 메리 피터스씨는 "인터넷과 같은 네트워크속에서 발생하는 상표권이나 저작권의 침해에는 국경이 없다"며 "현재의 저작권법이나 상표보호법은 해당국가의 국경 내에서 적용되는 게 현실이어서인터넷 속의 상표침해 사범에 대해서는 누가 제소할 것인지 어느 나라 법원이 관할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해답이 없는 상태"라고 고개를 젓는다.그렇다고 해서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한 노력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민간단체를 중심으로 인터넷 속에서의 상표보호를 위한 대책이 다각적으로 모색되고 있다. 네트워크 솔루션사(NSI)의 사례는 그 좋은 보기가 된다NSI는 미국 국립과학재단의 인정을 받아 미국내에서 인터넷 도메인 이름등록을 총괄하는 역할을 맡고 있는 단체. NSI는 등록 상표권자와 도메인 이름 사용자 사이의 분쟁이 늘어나자 지난 9월 새로운 대책을 마련했다. 그 원칙은 이름을 얼마나 많이 사용했느냐를 보여주는 증거를 바탕으로 인터넷 속에서도 상표권을 인정한다는 것이다

그 절차는 이렇다. 상표권자는인터넷 속에서 자신의 상표와 같은 이름의도메인이 발견되면 그 도메인 이름을 자신의 상호로 얼마나 많이 사용해 왔는가를 증명할 수 있는 증거를 제출한다. NSI는 도메인 이름 사용자에 대해같은 내용의 증거 제시를 요구한다. 도메인 사용자가 충분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면 NSI는 도메인 이름을 다른 이름으로 바꾸도록 일정기간의 '유예기간'을 준다. 이와 관련 법원에서의 최종 판결이 날때까지 이 도메인 이름은누구도 사용할수 없도록 유보된다.

이 제도는 미국내에서도메인 이름 사용자나 등록상표 상표권자의 입장을모두 적절히 고려한 중립적인 방법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그러나 또다른 문제는 이 제도가 오직 미국내에서만 적용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미국의 등록상표를 미국에 있는 도메인 운영자가 그의 도메인 이름으로 차용했을 때만조정이 가능한 것. 예를들어 미국의 음악방송 MTV가 독일의 농구팀 팬클럽도메인 MTV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했을때 이 제도는 아무런 쓸모가 없다는 말이다.

인터넷 네트워크에 제공되는 정보의 내용과 성격은 물론 도메인 이름을 포함한 모든 정보원에 대해 어느 정도의 통제를 가해야 하느냐, 아니면 지금처럼 어떠한 통제도 없이 완전히 자유로운 상태로 놓아둬야 하느냐를 놓고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인터넷 속의 등록상표 문제는 그 논쟁의 한 부문에 불과하다. 그러나인터넷의 확산은 등록상표를 포함한 지적재산권 보호와 관련, 근본적으로 새로운 논의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시애틀·워싱턴 공훈의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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