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다시 불붙는 현철 불씨

한보사건이 검찰의 수사 조기종결로 여론의 관심에서 서서히 벗어남에 따라 꺼져가는 듯하던 '현철씨'불씨가 다시 살아오르기 시작했다. 어쩌면 물증은 없이 소문만 무성하던 이전의 불씨보다더 큰 불을 낼 가능성마저 엿보이고 있다.

10일 한겨레신문에 따르면 김영삼대통령의 차남 현철씨가 그동안 완강하게 부인해 왔던 인사개입과 여권을 포함한 언론계 등 중요 국정에 대한 보고를 듣고 있었음이 확인됐다는 것이다.한겨레는 그 근거로 지난 95년 1월 케이블뉴스채널인 YTN(연합텔레비전뉴스) 초대사장 임명에김우석전건설부장관을 앉히기 위해 이원종 당시 정무수석과 협의를 벌였고 오인환공보처장관과도사실여부를 확인한 현철씨의 전화통화 내용을 공개했다. 또 녹취내용에는 그같은 사실에 대해 보안유지에 신경을 쓰는등의 대화가 담겨있다.

이는 그동안 인사개입 등 국정운영과 관련한 현철씨의 '역할'과 관련한 갖가지 소문에 대한 첫번째 물증이라는 점에서 파장이 적지 않을 전망이다. 적어도 인사개입에 대한 현철씨의 일관된 부인은 거짓임이 입증됐기 때문이다.

야당은 일제히 김대통령의 대국민사과담화와 시간의 흐름 그리고 여권의 개편등을 거치면서 꺼져가는 듯하던 불씨를 다시 살릴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압박을 가하기 시작했다. 자민련의 안택수대변인은 10일 논평에서"현철씨가 인사와 이권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하나씩 사실로 밝혀지기 시작했다"며 "한보특위에 반드시 현철씨를 증인으로 내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국민회의는 현철씨가 이전수석과의 협의사실, 오장관과 현철씨의 전화 그리고 현소환연합통신 사장에 대한 개인성향 보고청취 등이 담긴 통화 내용을 근거로 보고 있다. 국민회의는 "현철씨가인사개입은 물론 국정을 주기적으로 청취, 영향력을 미쳤음을 알 수 있다"며 특위출석을 요구했다.

이에 따라 현재 현철씨 출석문제를 이유로 일정조차 잡지 못하고 있는 한보특위와 관련한 여야간공방은 더 뜨거워질 전망이다.

여권일각에서 청와대에 현철씨의 증인출석을 건의했다는 루머도 전혀 근거가 없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일단 서청원신한국당원내총무는 10일 고위당직자회의에서 "전혀 사실무근"이라고 부인했다. 서총무는 또 9일 총무접촉에서"현철씨와 관련해 증거가 없는데 출석을 못한다"며 청와대 건의 가능성도 일축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름에도 여론의 의혹과 불만은 별로 가시지 않았고 결국 보궐선거에서 표로 입증됐다는 판단을 하고 있는 신한국당에서 현철씨 문제에 대한 정면돌파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른다. 여기에는 또 시간을 끌면 끌수록 불리해진다는 사실이 작용하고 있다.신한국당의 경선등 정치일정과 맞물릴 경우 축제에 찬물을 끼얹는 효과를 낼 우려도 없지 않다.특위 증인으로 출석, 의혹을 해명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그보다"어차피 맞을 매라면 빨리 맞는 것이 더 낫다"는 표현이 더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또 "이번에 나서는 것이다음 정권에서 다시 문제가 돼 증언대에 서는 것보다는 더 나은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오고있다.

그러나 이같은 논의가 전체의견으로 채택될 가능성은 아직 낮아 보인다. 다수가 야당의 정치공세의 장으로 변할 청문회에 현철씨를 내보냈다가는 도저히 수습할 수 없는 상황이 도래할 지도 모른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YTN사장 선임건처럼 현철씨와 관련한 사실이 하나 둘씩 밝혀질 경우 여권이 선택할 수 있는 여지는 점점 좁아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여권의 고민이다.〈李東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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