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박홍규의 필름세계-리처드 아텐보로 '간디'

나는 최근 평생을 두고 사숙한 두 사람의 조국을 방문하는 행운을 누렸다. 바로 톨스토이와 간디였다. 1909년 간디는 남아프리카에 톨스토이농장을 세우고 서구기계문명에 대항하는 마을공동체생활을 시작한 뒤 비폭력 불복종주의자로 평생을 살았다. 간디는 그것을 불패불멸의 인도가 갖는가장 고유한 가치라고 보았다. 이집트, 그리스, 로마등의 모든 고대문명이 망했으나 수천년간 인도만이 지속된 이유를 그것에서 찾았다. 그의 정신은 지금 인도에서도 지속되고 있다. 델리에는아직도 톨스토이 하우스가 있다. 남아프리카에서 시작되어 평생을 걸친 그의 비폭력 무저항주의는 만델라에게 계승되었고 미국의 마틴 루터 킹과 녹색당의 켈리에게도 전승되어 오늘의 평화 생태운동의 정신기조가 되었다.

인도는 역사상 최대 최고의 면직산업 국가였으나 식민국인 영국의 산업혁명에 의해 거꾸로 면직물시장으로 전락했고 직공들은 실업자로 방랑했다. 인도 총독조차 19세기 초엽에 '그 참상은 경제사상 유례가 없다. 목면 직공의 뼈는 인도의 들판을 하얗게 물들이고 있다'고 보고했다. 남아프리카에서 45세의 나이로 인도에 돌아온 간디는 바로 공동체인 아슐람을 열고 금욕과 비폭력 무저항의 민족해방투쟁으로 평생을 일관했다. 파괴적 침략문명을 상징하는 기계에 등을 돌려 스스로물레로 실을 잣고, 자기 손으로 짠 흰색 허리천만을 두른 간디의 모습은 인도 민중의 상징이 되었다.

50년전인 1947년 8월15일, 그의 평생에 걸친 노력으로 인도는 영국으로부터 독립했다. 그러나 77세의 간디는 자유통일인도라고 하는 그의 평생의 꿈이 소름끼치는 악몽으로 뒤바뀌는 것을 목격했다. 가공할 살육이 자행되는 가운데 조국인 인도가 두개의 적대국으로 분열된 것이다. 그 분열을 막고자 노력한 그는 결국 총탄에 맞아 숨졌다. 영화 '간디'는 그의 평생을 기록한 영국인 감독의 영화이나 결코 식민주의자 영국인의 그것이 아니라 철저히 사실에 입각한 것으로서 몹시 감동적이다.

인도 분열의 역사는 우리와는 달랐다. 그것은 회교국과 힌두교국이라고 하는 종교적 분열이었고그 뿌리는 깊었다. 8세기부터 인도를 침략한 회교도들은 힌두왕국을 철저히 파괴하고 강력한 무굴제국을 건설했고 영국이 식민지로 경략하기 전인 17세기까지 유지되었다. 타지마할을 비롯하여우리가 인도에서 볼수 있는 대부분의 유적은 바로 무굴의 흔적들이다. 영국식민지하에서 보다 속세적인 힌두교도들은 부와 권력을 차지했으나 종교적인 회교도들은 소외되었다. 결국 회교도들은인도가 아닌 파키스탄으로 독립했고 1971년에 파키스탄은 다시 둘로 쪼개어져 방글라데시가 독립했다. 뒤따른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3백만명 이상이 죽었고 사람들은 여전히 빈곤에 허덕이고있다. 간디와 인도인들은 모든 다양한 문명의 공존을 믿었으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여 종교분쟁은지금도 불씨를 그대로 갖고 있다.

〈영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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