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장애인 봉사대원 한잠선씨

"장애인 돕기는 성한 이의 의무"

10년 전 꼭 이맘때의 어느날. 대구시 서구 내당동 영세민촌에 우연히 들렀던 마흔살의 한 아주머니는 충격에 휩싸였다. 열다섯살을 갓 넘긴 뇌성마비 장애 소년이 엄마가 일 나간 사이 잠긴 다락방에서 하루를 보내고 있는 모습 때문이었다. 인기척에 문을연 이 소년의 어눌한 표정, 간절한눈길을 보고는 기어코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한잠선(韓潛先·50·대구시 남구 이천동)씨. 2녀1남을 둔 평범한 주부. 그러나 10년전 방에 갇힌이 뇌성마비 소년을 본 뒤 남을 위해 살기 시작했다. 운명적 만남이었던가.

"쌀·연탄은 물론 김치조차 없는 소년의 집을 2년동안 찾아 다녔어요. 불쌍하다는생각에서가 아니라 인간의 당연한 의무라고 느꼈습니다".

이 소년이 가족과 어디론가 훌쩍 떠나버린 뒤부터 한씨는 동네 홀로 사는 노인들을 찾아 다니며청소를 해주고 쌀과 반찬, 라면을 갖다 주었다. 처음에는 '헛된 일'이라던 동네 사람들도 한씨의진실한 활동에 감동해 하나 둘 동참하기 시작했다.

"힘이 안 들리야 없지요. 그러나 도움 받은 사람들의 환한 미소 한번이면 고생이 금세 보람으로바뀝니다".

소문없이 장애인을 돕는 주부들은 한씨 외에도 있었다. 이들은 일년전 모여 '개나리봉사대'를 만들었다. 지난해 맹인복지회 '흰지팡이의 날' 행사 때 7백명분의 오징어덮밥을 준비하느라 봉사대원들은 오징어 다듬기에만도 꼬박 밤을 지샜다. 복지시설 애활원 음식바자땐 무려 8백70접시나되는 전을 부쳤다. 깻잎 50단, 부추 70단, 고추10근이 들어갔다. 대원 모두가 손에 화상을 입어야할 정도였다.

"우리의 수고쯤이야 아무것도 아니지요. 소외받는 사람들이 기뻐할 수만 있다면 며칠간 몸살 앓는 것쯤은 웃어 넘길 수 있습니다. 대원들 모두 같은 마음입니다".

한씨의 가장 어려운 상대는 지체장애인과 시각장애인. 음식을 나눠 줄 때 다른 사람과 조금만 양이 달라도 트집을 잡는다. 어느 정도 사물을 볼 수 있는 '약시' 시각장애인들은 행사가 끝난 뒤짐정리 하는 것을 보고 "남은 음식을 당신들이 다 챙겨 가느냐"고 시비를 걸곤 한다. 베푸는 것보다 받는 것에 익숙해진 일부 시설 장애인들. 그래도 이들을 사랑으로 감싸야 한다는 게 한씨의믿음이다.

남을 위해 사는 사람들은 가정에 소홀해지기 쉽다. 가족들의 도움이 필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한씨는 외출할 때마다 냉장고 앞에 반찬목록과 하루 일과를 상세히 적어놓는다. 두 딸과 막내 아들도 어릴 때는 엄마가 집에 없다고 투정했지만 요즘은'열성팬'으로 변했다. 남편 김강우씨(52) 역시 물심양면으로 한씨를 후원한다. 가족전체가 함께 활동에 나서는 경우도 잦아졌다."장애인 돕는 일은 돈 있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돈 몇푼 내고 얼굴이나 내려는 사람들은 오히려묵묵히 돕는 사람들을 욕되게 합니다. 소외된 사람들과 삶을 나누려는 자세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장애인들이 모여 살 수 있는 집 한 칸 마련하는 게 남은 꿈이라는 한씨. 며칠 뒤 새색시가 될 딸(26)도 이웃과 희로애락(喜怒哀樂)을 나누는 '봉사지기'가 되리라 기대하고 있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