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재즈세계-프리재즈(3)

"57년 뉴포트페스티벌서 싹터" 콜먼이 본격적인 재즈무대 전면에 나서기 조금 이전인 1957년, 뉴 포트 재즈 페스티벌에 출연한일부 재즈맨들이 색다른 시도를 하고 있었다.

그들은 24세미만으로 구성된 젊은이들로 세실 테일러(피아노), 스티브 레이시(트럼펫), 뷰엘 니들링거(베이스), 데니스 찰스(드럼)등이었다. 이들의 음악을 꼭 프리 재즈라고 규정짓기는 힘들었지만 당시의 평론가들은 '아방 가르드'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이 연주의 주역이었던 테일러는 후에프리 재즈를 완성시키는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그러나 오네트 콜먼(1930~ )이 프리재즈를 주도했으며 그로 인해 재즈 역사상 가장 많은 논란을불러 일으킨 뮤지션이라는 데는 이의가 없을 것이다. 그의 파격은 많은 선후배들로부터 질타와충고, 격려를 받았고 어느 한 순간 재즈의 당당한 주류로 인정받게 됐다. 재즈계에 대체로 10대후반에 입문하게 된다고 본다면 콜먼의 10대후반~20대 중반까지는 별 볼일이 없었다. 몇몇 그룹을전전하다가 해고되고 연주 방식으로 인해 비난을 받았다. 막노동을 하기도 하고 생계를 위해 다양한 일을 벌이다가 결혼한 부인으로부터 19세의 젊은 트럼페터 돈 체리를 소개받은 것은 58년이었다.

〈鄭知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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