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년전 시댁 어른들이 쓰시던 서랍장을 사포로 닦아내고 새칠을 해서 서재에 들여놨어요. 그서랍장을 남편이 쓰는 걸 보면 아버님의 체온이 느껴져요"
불혹을 넘긴 강갑순씨(42.경산시 옥산2지구 태왕맨션)는 야무락진 '보통'주부이다. 살림살면서 자기개발에다 봉사활동까지 무척 바쁘지만 하나도 버릴 게 없는 '경쟁력있는' 주부이다.건강관리를 위하여 매일 아침 일찍 에어로빅을 다녀오면, 일주일 단위로 짜여진 일정에 따라 움직인다. 월요일은 빨래와 대청소를 하고, 화요일과 목요일은 서각을 즐기고(대구동부여성문화회관953-5112), 수요일에는 일주일 먹을 밑반찬을 만든다. 금요일에는 남편의 와이셔츠를 다림질하고,토요일은 요리(대백프라자)를 배운다.
올해로 결혼 20년째. 어지간한 주부들은 슬슬 '해봤자 표안나는' 살림살이에 진저리를 낸다지만강씨의 하루하루는 신혼주부처럼 윤기가 흐른다. 요령껏 집안을 챙기고, 나머지 시간은 자신과 이웃을 위해서 과감하게 재투자한다. 말하자면 살림에도 전략이 필요함을 일찌감치 깨달은 셈이다.강씨의 즐거운 하루는 가족과 사회의 보이지 않는 힘으로 작용한다.
"서각실에 나가서 나무를 만지면서부터 제 인생이 달라졌어요. 이웃에서 버리는 나무란 나무는다 재활용해요".
지난 95년 11월에 개관한 대구동부여성문화회관(관장 신현자)이 목공예실(현 서각반, 지도강사 이주강)을 열었을때 등록한게 서각과 인연이 맺어진 계기이다.
"서각을 하면서 나무와 친해졌고, 손바닥이 자극돼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는 강씨의 데뷔작은 서재에 걸려있는' 百忍千思'. 백번이상 인내하고 수천번 이상 심사숙고하라는 메시지가 마음에 와닿았다. 도시락을 싸고, 버스를 두번씩 갈아타면서 배운 서각은 실생활에도 많은 도움을 주었다.부산시누이(조남계)가 이사를 갔을때, 또 얼마전 조카가 생일을 맞았을때도 직접 소품을 만들어선물했다. 울산여고에서 교편을 잡는 시동생(조금제씨) 내외의 생일기념 서각품도 준비했다."서각을 배우고, 집안 모든 일에 겁이 없어졌다"고 털어놓는 그는 20만원의 인건비를 달라는 방4칸의 니스를 직접 칠했다. 소요경비는 겨우 1만2천원. 거실의 커튼도 동촌사회복지관에서 배워 직접 만들었다.
"어른들이 쓰던 고가구를 그냥 버려두는게 안타까웠다"는 그가 헌 뒤주를 사포로 밀고, 라카칠을하자 요즘 유행하는 '앤틱'(골동품)이 따로 없었다. 시아버지가 쓰던 서랍장도 손봐서 서재에 들여놨다. 서랍이 가지런히 붙어있는 앉은뱅이 서랍장은 남편(조운제.국민은행 동대구지점 과장)의애장품이다.
길거리에 버려져있던 전선감는 북을 이용해서 차탁자도 만들었다. 나무북을 차탁자로 만드는데 든 돈은 1만원 미만. 탁자 상판으로 쓴 나무를 사서 제재소에서 둥그렇게 자르고 거기에다송(茶頌)을 새긴뒤 유리로 덮었다.
대구동부여성문화회관 서각동우회 회장까지 맡고 있는 강씨는 매달 첫째 화요일, 서각칼을 잡는대신 회원들과 함께 달성군 가창에 있는 불우시설 '사랑의 집'에서 봉사활동을 편다."주로 밭일이나 집안청소를 합니다. 크레졸로 바닥을 청소하고 목욕도 시키죠"강씨는 봉사활동을하면서 우리사회가 제대로 되려면 가진자, 배운자들이 제 몫을 해주어야한다고 새삼 마음을 다잡는다.
많은 걸 가졌으면서도 마음의 행복을 모르는 이들에게 짜투리 시간이라도 활용해서 봉사활동을해볼 것을 권유하는 강씨는 또 경산복지회관에서 봉사할 일감을 달라고 신청해 둔 상태이다. 수요일 오후에 남는 시간을 봉사활동으로 쓰려는 생각에서이다.
"일에 얽매여 너무 바쁜 직장여성들, 하나도 안부러워요"라고 서슴없이 말하는 강씨는 "습관은 나무껍질에 새긴 문자같아서 나무가 자람에 따라 확대된다"며 수시로 마음밭을 갈고 닦는다.〈崔美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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