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본사 송광호특파원 방북기

"평양 지금은…(5)"

북한에서는 누가 골프를 즐기는가.

지난 89년 평양 부근 태성골프장이 첫선을 보인후 8년이 지난 오늘에도 북에서의 골프란 그림의떡으로만 여겨지고 있다.

이후 95년초 평양 서산호텔옆에 골프연습장이 하나 더 생기기는 했으나 이를 이용하는 손님은 전부 외국인이라고 북측 골프관계자는 밝히고 있다.

현재 북에서의 골프인구는 모두 40여명. 평양골프연습장의 최창괄(34) 골프기술봉사원은 "우리나라 현직 정식 골프지도원은 태성골프장의 경기지도원 1명과 자신 등 2명뿐"이라고 말했다.그는 북에는 골프를 다른 체육 경기와는 달리 사치스런 특수운동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골프 인구나 골프 수준 향상은 당분간 기대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한 예로 김일성 사망후 3년간의 애도기간에 북한 골프인들은 골프채를 손에도 못댔고, 이제 비로소 북한체육위원회에서 골프협회 결성 등을 시도하는 중이라고 전했다.

최봉사원은 "요즘 양각도호텔 옆과 모란봉 근처에 미니골프장(9홀) 두군데를 새로 개설중에 있다"며 "골프장 영업시간은 낮12시부터 밤9시까지이나 외국손님들이 늘어나면 영업시간 등을 조절할계획"이라고 말했다.

최봉사원이 골프를 배우게 된 동기는 전혀 자의에 의한 것이 아니다. 군대 제대후 운좋게(?) 당국으로부터 배치받아 우연히 골프에 접하게 됐으며 골프 9년 경력을 갖고 있으나 평균 86타에 그칠뿐이라고 한다.

또 그는 북에서 골프를 가장 잘 치는 사람이 72~74타 정도이며 북한 고위층 간부는 누구도 골프에 관심을 갖거나 골프를 하려고 하는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단지 해외주재의 북한대사들만이 외교적 모임으로 흔히 그 나라 장관 등 고위급 인사들과 골프경기를 갖는데 골프를 치지못해 애로점이 크다고 가끔 하소연한다고 귀띔했다.골프와는 달리 여자축구는 북한내에서 인기종목으로 급부상되고 있다.

평양의 한 체육인은 "이제 우리는 남자축구보다 여자축구에 더 기대가 크다"며 "국제적 추세탓인지 수년내 여자축구 인구가 급격히 늘었다"고 밝혔다.

현재 북한여자축구팀은 1부와 2부로 나뉘어져 각 부마다 8개팀으로 구성, 시즌(금년은 10월 10일까지)마다 리그전을 벌여 우승팀 및 우수선수를 선발한다고 한다. 북한여자국가대표축구팀은 매일평양 양각도 축구경기장에서의 맹훈련을 통해 앞으로의 국제경기에 대비하고 있다. 현재 북한 여자축구팀이 차지하는 국제적 위치는 중국, 스웨덴 및 노르웨이, 미국 다음으로 세계 4위를 점하고있다. 아시아팀들인 중국, 일본, 대만, 홍콩, 말레이시아, 한국 등 국가보다는 단연 상위팀으로 인정받는다고 강조했다.

지난 85년경에 처음 선을 보인 이 여자축구를 북한은 국가차원에서 장려, 짧은 기간에 부쩍 선수들의 실력이 향상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과거 유명 북한 축구인으로 평양기관차선수체육단의코치를 맡고 있는 양찬근씨(44)는 "선수 연령을 17세부터 23~24세까지 두고 본격적인 훈련을 하고 있으나, 실은 그 이전 자질 평가를 위해 12세부터 선수 양성을 한다"고 말했다.또 그는 "그동안 종합팀(국가대표팀) 선수로 이름을 날렸던 양이순, 박애경, 계순희 등은 은퇴했지만 장래가 유망한 새 선수들의 보강으로 국제경기에서 충분한 승산이 있다"고 설명했다.한편 북한여자축구팀은 1년중 3번 북한내에서 전국적인 큰 대회를 갖는다고 한다. 김일성 탄생기념일, 조국승리기념일, 공화국선수권대회 등인데 이때 경기를 통해 신인을 발굴하고, 선수자질에따라 대표선수로까지 뽑히는 경우도 있다.

북에서는 의외로 여자선수를 원하는 사람이 많아 가까운 장래 북한여자축구의 세계제패까지 바라본다.

양코치는 "유명선수가 되면 국가차원의 배려가 크고 집, 승용차, 명예칭호까지 얻게 되니 모든 청년이 체육인에 대해 선망의 꿈을 지니고 있다"고 전했다. 북한여자축구대표팀은 미국과의 초청경기를 갖기 위해 10월전 미국으로 떠날 예정이라고 말했다.

한편 기자는 북한체재기간중 아침만 빼놓고는 거의 매일 점심·저녁때 반주로 술을 마셨다. 이는기자가 술을 좋아해서라기보다는 잠자는 시간을 빼고는 안내원이 계속 기자와 함께 있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술은 서먹서먹함과 무로함을 없애준다. 실상 안내원은 나로 인해 집에서 나와 호텔바로 옆방에 기거하며 체류마지막 일정까지 함께 있었다. 이는 기자뿐이 아니라 누구든 외국에서손님이 오면 안내원은 평양에 집이 있어도 같은 호텔 옆방에서 손님을 위해 있어야 하는 것이 그들 규정인 듯했다.

술도 잘 하지 못하면서 매일 술을 들이키니 3일째부터는 배탈이 나고 설사가 시작됐다. 그런데도계속 술을 마시니 가져간 정로환이나 항생제까지 먹었는데도 설사가 멎지 않았다. 거기다 3년째끊었던 담배까지 다시 피우게 됐다.

이는 스트레스가 쌓인 탓이기도 했지만 그들과 술과 담배 등을 함께 하고 싶은 생각이 든 때문인지 모르겠다.

커피숍의 접대원은 가끔 기자가 배를 쓰다듬으면서도 맥주(일본 병맥주 아사히나 삿뽀로, 한병에4달러)를 마시고 있는 나를 보고 재미있는듯 웃으면서도 "건강 조심하라"고 걱정스런 눈길로 바라보았다.

"접대원 동무, 오늘은 외상이요. 나중 계산합시다"

"네. 걱정마시고 한꺼번에 하세요"(북한에서 '동무'란 표현은 친구나 아랫사람에게 부르는 말이다.자기보다 직위가 높거나 나이가 많은 사람에게는 '동지'라고 부른다)

숙소에서 외상거래가 트일만(?)하니 체류일정이 끝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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