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오전 11시30분 붉은 제복과 검은 털가죽 모자를 쓴 영국 왕실 근위병들이 버킹엄궁 앞에서펼치는 교대식 모습은 1천여년 전통을 지닌 영국 왕실의 권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화려한 겉모습과 달리 심각한 약물중독·기강 해이·범죄 등에 찌들어 있는 것으로 보도되고 있는일부 근위병들의 모습은 갈수록 위신이 떨어지는 영국 왕실의 현주소를 보여주는듯 하다.런던시 서부 웨스트민스터에 있는 고색창연한 버킹엄궁. 1837년 빅토리아 여왕 즉위때부터 왕궁으로 사용된 이 유서깊은 건물은 런던의 내로라하는 언론사 기자들이 24시간 눈을 떼지 않는 뉴스의 산실이다. 고(故) 다이애나 왕세자빈의 사망 원인이 악명높은 파파라초(프리랜서 사진기자)의 추격을 따돌리려다 발생한 교통사고였던 것만 봐도 버킹엄궁을 둘러싼 기자들의 취재 경쟁이거의 전쟁을 방불케할 정도로 치열함을 알수 있다.
하지만 왕실의 기품을 유지하며 영국민의 존경을 받아온 엘리자베스 여왕과 달리 찰스 왕세자와다이애나의 이혼으로 대변되는 왕실 가족의 온갖 추문들은 버킹엄궁을 뉴스보다 '스캔들의 산실'로 전락시키고 있다.
사실 버킹엄궁에서는 이따금씩 여왕의 행사 일정이나 왕실 문제 등 특정 사안에 관한 대변인의발표가 있을뿐 기자들을 위한 정례 뉴스 브리핑같은 것은 없다. 그러다보니 기자들의 눈은 자연히 비밀로 감춰진 왕가 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에 쏠리기 마련. 본인의 희망과 관계없이 왕가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이 '스캔들 메이커'로 언론의 도마위에 오르내리고 있다.
이혼으로 얼룩진 자녀들의 삶과 달리 모범적인 가정생활을 보여준 엘리자베스 여왕도 며느리인다이애나의 아버지와 한때 로맨스에 빠졌었다는 사실이 언론에 보도됐었다. 최근에는 과거 영국의 식민지였던 인도에서 '3류 국가'의 수장으로 보도되는 봉변을 당해야 했다.그녀의 남편 필립공도 한때 간통설에 휘말렸으며, 3남1녀중 장남인 찰스 왕세자는 이혼녀 카밀라파커볼스와의 재혼문제로 왕위 계승 자격 논란에 시달려야했다. 둘째 아들인 앤드루 왕자는 지난해 자유분방한 퍼거슨 왕자비와 이혼한뒤 에이즈 감염설로 곤욕을 치렀다. 외동딸인 앤 공주는결혼 19년만인 92년 남편 마크 필립스 대위와 이혼한뒤 한달만에 티모시 로렌스 해군중령과의 약혼을 전격 발표, 세인을 놀라게 했다.
이같은 스캔들에 염증이 난 영국민들은 '세금만 축내는 왕실은 폐지돼야 한다'는 비난까지 서슴지 않고 있다. 지난 8월초 가디언지가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영국 왕실의 존속을 원한 영국민은48%%로 3년전의 70%%보다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 왕실은 이같이 실추된 명예를 바로 세우기 위해 왕실에 대한 국고 지원 중단, 왕위계승 규정의 현대화 등 대변혁을 시도하고 있다. 과연 '스캔들 메이커'로 전락한 영국 왕실이 국민들의정신적 지주로 거듭날수 있을지 주목된다.
〈金英修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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