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풍-밝은 햇살은 언제쯤이나

열흘 남짓 지나면 김영삼정부는 가고 김대중정부가 탄생한다. 김영삼정부는 '문민정부'임을 표방했는데, 차기정부는 '국민의 정부'로 이름 지은 모양이다. 새로운 정권들이 어떤 이름으로 국민에게 선보이고 어떤 이미지를 심으려 노력하든 그건 그것 자체의 의미만 있을 뿐이다. 포장지가 그럴싸하면 내용물도 좋으리라는 판단은 매우 잘못된 것임을 '문민정부'에서 톡톡히 배웠기 때문에'국민의 정부'란 호칭에 대해서도 국민들은 일찌감치 큰 기대를 하지 않고있다.한 정부가 바뀌면 반성과 회고가 있을 만하건만, 어째 세상 돌아가는 것이 뒤돌아 볼 마음의 여유를 주지않는다. 사실상 두 대통령을 모시고 지나온 지가 작년 12월 대선(18일) 이튿날부터였고, 실제로는 대통령집무는 벌써부터 김대중당선자가 맡아온 듯해, 차기대통령취임일(이달 25일)이 그리새삼스러울 것도 없다는 생각이 앞선다.

불과 1.7%%의 승리로 집권하게 된 김대중진영은 승리에 보탬이 돼 주었던 요인들에 감사할 시간도 없이 물에 빠져 허우적대는 나라와 국민을 건져올릴 일이 태산같다. 구 소련에서 사회주의가붕괴되고 새로운 서방식 정치실험이 시작됐을때 보리스 옐친은 "헤엄치는 방법도 배우지 않고 자본주의란 바다에 뛰어든 셈"이라고 말하면서 선진국의 경제적 지원을 호소한 바 있듯이 우리는지금 IMF바다에서 헤엄치는 방법도 모른채 어느날 갑자기 창세기 첫구절의 표현처럼 혼돈과 공허(formless and desolate)의 바다에 빠진 것이다.

그런 와중에 정부인수자측에선 비교적 재빠른 대응에 나서 현정부와 공동으로 다각적인 경제대책을 수립해온 것은 어느정도 해난(海難)에서의 구조가능성을 점치게 한다. 그래서 IMF바다에 빠졌다가 되살아난 나라들의 처방을 배우려 며칠전에도 신정부팀이 멕시코를 다녀와 곧 종합보고서를내고 정책에도 적극 반영한다는 것이다. 경제관련학자와 연구원들에 따라 조금씩 표현의 차이는있어도 멕시코는 대체로 세번 외환위기를 겪었다. 1980년대 초반에는 기득권층의 강력한 저항으로구조개혁에 성공하지 못했고 국가부도사태를 맞은 80년대말은 미국이 입안한 계획대로 구조조정을 추진했으나 국민고통은 이루 말할수 없었다. 결국 94년12월 또다시 외환위기가 닥치자 두어번의 경험을 거울삼아 적극 대응에 나선바 96년부터는 점차 회복되기 시작했다.

멕시코의 교훈에서 얻을 수 있는 바와 같이 그들보다 더 강도높고 진지한 구조개혁을 단행할 경우 2년정도 지나면 경제가 회생할수 있다고 본다. '2년'이란 얘기는 주한 일본대사가 한국경제상황에 대해자국정부에 공식보고하는 자리에서도 나온 수치다. 그렇다면 결국 2년정도만 허리띠 졸라매면 좋은 세월이 온다는 낙관론이 적지 않다는 뜻인데, 대다수 국민들은 아직도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심정에는 조금도 변함이 없는 것 같다.

우리가 김대중 차기대통령에게 부탁하고싶은 것은 취임식날 현란한 어휘구사의 취임사보다는 이러이렇게하면 1년이 걸립니다, 또는 2년이 걸립니다…, 정부.기업.근로자가 대타협의 정신을 저버리고 뿔뿔이 흩어진다면 3년이 아니라 5년도 더 걸립니다…고 분명하고 확신에 찬 어조로 호소해주기를 고대하는 것이다. 물론 대통령으로서 여러가지 공약도 내놔야겠지만, 국민 대다수는 IMF통할이 언제까지 갈 것이냐에 대해 최고지도자로서의 확고한 입장표명을 기다리고 있다고 봐야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실업(失業)대책이다. 프랑스가 3백50만명의 실업자 때문에 국가적 어려움에 처해있음은 다 아는 사실이다. 연일 관공서를 불태우는등 폭동이 벌어지고 있다. 인도네시아도 생필품배급 상황에 처해있다. 배고파 빵을 훔치고, 실직한 가장이 자살하고 강절도가 들끓기시작하고…그래서 거리로 몰려나온 실직자들이 끝내 폭력화하는 장면은 상상하기도 두렵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