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는 문화유적의 보고(寶庫). 아직 드러나지 않은 문화유적도 지천이다. 선조가 물려준 천년의 관광자원.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런 문화유적과 관광자원을 체계적으로 개발, 보존하려는 청사진이 없다. 개발과 보존의 틈바구니에 끼여 흔들리는 경주시가 바로 파괴자인지도 모른다.후손들의 무지는 곳곳에서 나타난다.
신라시대 최대 돌다리인 월정교는 발굴만 해놓고 복원되지 않은채 방치된 경우. 공사중 유구가 발견되면 공사중단은 물론 발굴 비용을 건축주가 부담해야돼 신고를 하지 않고 유구가무참히 파괴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최근 발생한 반월성의 석빙고 주변 아름드리 풍치림 난벌사건은 전문지식이 없는 관리부서의 즉흥 조치가 화를 부른 경우. 나무가 쓰러지면 석빙고가 다칠지도 모른다며 주위의 40여그루 나무를 아예 잘라 버렸다 한다. 기가 찬 노릇이다. 반월성 관리인 김형준씨(58)는 "전날 휴무라 쉬고 돌아와보니 폐허가 돼 있었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경주 시민들은 대개 한 장의 기왓장이나 한 줌의 흙에도 남다른 관심을 쏟는다. 천년고도의시민이란 자부심 때문일까.
그러나 각종 규제에 오랜기간 억눌려온 탓인지 시민들의 개발에 대한 욕구도 만만찮다. 도시의 기능과 역할 및 경제적 환경도 포기할 수 없다는 것.
결국 가야할 길은 문화관광 개발모형을 만들어내야 한다는데로 뜻이 모아진다. 사유재산이도시계획상 고도지역과 미관지구 등 각종 규제에 묶이자 시민들은 체계적 개발-보호 모형개발을 요구해 왔다.
각종 규제로 경주시민이 입고 있는 피해는 가늠하기조차 힘들다. 9백50만평에 이르는 문화재보호구역과 사적보존지구는 건축제한으로 마음대로 집을 고칠 수도 없다. 천마총 등 고분을 둘러싸고 있는 황남·사정 ·인왕동 일대 30만여평은 한옥지구로 묶여 주변 1천6백여 가구가 증개축을 못하고 있다. 개발이 억제되는 면적이 전체의 40%나 된다.
규제에 불만을 터뜨리는 시민들에게 경주시가 던져주는 당근도 그리 달지 않다. 주민 정모씨(50)는 "3종 미관지구에 한옥을 짓도록 권장하고 있지만 한옥 건축비가 양옥의 2배나 돼그림의 떡"이라며 시큰둥해 했다. 올해 확정된 통합도시기본계획만 보더라도 일부 주거지가완화되고 공장지역이 확장될 예정이지만 유적파괴 시비로 얼마나 많은 갈등이 생겨날지 지금으로선 아무도 모른다.
문화재가 부서지거나 버려지는 현장은 쉽게 목격된다. 경주시 내남면 월산2리 경부고속도로하행 3백69km 지점 화물주차장 설치공사 현장은 한국도로공사가 지표조사도 없이 공사하다유구가 발견되었으나 공사지연을 우려해 신고조차 하지 않았다. 경주시 이채경학예연구사는"현장에 도착했을때 하단부 석곽묘와 신라시대와 조선시대 토기 및 자기편, 봉토분 1기와절터 1기 등이 이미 파괴돼 있었다"며 아쉬워 했다. 경주시가 뒤늦게 시굴조사 결과에 따라공사계속 여부를 결정키로 했으나 이미 상당한 유물이 파괴돼 보존가치가 있을지는 미지수.경주시 동천동 토지구획정리지구도 시공사가 발굴비 부담과 공사지연을 우려해 신고를 미루는 바람에 문화재가 크게 부숴졌다.
경주고적발굴단이 맡아 추진하는 경마장 발굴조사도 난항을 겪고 있다. 유물보관고가 없어유물 4만5천여점이 가건물에 쌓여 부식되고, 발굴된 유적지가 복원되지 않은채 훼손되고 있다.
필요한 것은 문화재 보존에 대한 열정과 의지. 그리고 보존할 수 있는 체계적 시스템을 만들어야 열정과 의지도 의미가 있다.
전문가들은 "제한만으로 근본적인 문제점을 해결할 수는 없다"고 못박는다. 철저한 지표조사, 고도제한 등 규제완화와 문화재 보호구역내 사유재산 국가매입, 경주문화재연구소의 인력 강화 등 할일은 태산.
'중장비로 땅을 파보니 유적이 있더라'는 식의 현행 보존-개발방법으로는 안된다. 지표조사에 엄청난 예산이 들지 몰라도 한번 돈을 들여 보존-개발 방향을 잡으면 엄청난 돈을 절약하는 방법이 될 건 분명하다.
경주시민에게 무조건 고통만 요구해서도 안된다. 규제를 완화하고 문화재보호구역내 사유재산을 국가가 매입하는 것은 불이익을 받고 있는 시민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로 인식하고 있다. 정확한 지표조사로 사적보존지역을 최소화하고 공원녹지를 개발지로 전환시켜야 한다는의견도 있다.
대구·경북지역의 문화유적 발굴을 맡고 있는 경주문화재연구소는 장비와 인력부족으로 신고된 유적지의 발굴작업을 하기에도 힘겹다. 산재한 문화유적 지표조사는 생각지도 못하는형편.
이러한 일들은 경주시 혼자힘만으로는 벅차다. 국가가 나서서 지역을 균형있게 개발하고 문화재를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방법을 찾지 않으면 안된다. 최근 경주시민들이 고도보존법 제정과 문화재관리국 산하 사적관리사무소 개설을 요구하는 것도 바로 국가가 나서달라는 주문이다.
천년 유적지 경주는 국가의 귀중한 재산이자 시민의 삶 터이다.
〈경주·朴埈賢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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