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구를 책읽는 도시로 4.위인들의 선택

고구려 고국천왕조 대막리지(국무총리)를 지낸 을파소는 밤낮 가리지 않고 책을 읽다 아내에게바가지를 자주 긁혔다. 하루는 폭우가 쏟아져 멍석에 널어놓은 보리가 죄다 떠내려가도 그는 책을 읽느라 몰랐다. 화가 난 부인이 친정으로 가버렸다. 하지만 평소 을파소에게 지혜로운 얘기를많이 들은 좌물촌 사람들은 그를 왕에게 추천, 진대법을 만드는 계기를 마련했다.조선 세종조 영의정 맹사성(孟思誠)은 날쌘 말보다 느릿느릿 걷는 소를 좋아했다. 말 위에서는 책을 읽을 수 없지만 소 등에서는 독서 뿐 아니라 사색에 잠길 수 있었기 때문. 맹 고불(古佛.호)의옆에 책이 있었기에 결국 현명한 재상이 됐다.

백범(白凡) 김구선생이 사형선고를 받고도 의연할 수 있었던 것은 대학(大學)과 함께 한 덕택. 교수대에 끌려나갈 시간이 바싹 다가왔으나 목숨이 다하는 순간까지 성현과 동행하리라 마음먹고대학을 읽었다. 대학을 교과서 삼아 무지한 조선 죄수들을 가르치는 일도 게을리 않았다. 겨레의장래가 교육(독서)에 달렸다고 선생은 굳게 믿었다. (백범일지 중에서)

'책은 읽히고 싶습니다'

〈崔在王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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