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 50주년의 기념행사를 축소하겠다는 정부의 방침은 지금과같은 참담한 수재속에선 너무나 당연한 조치로 여겨진다. 그러나 일제(日帝)35년의 질곡과 6·25전쟁의 참화속에 민족과국가의 명맥이 끊어져가던 그때를 생각하면 지난 50년은 결코 헛된 세월이 아니었고 국가탄생 반백년(半百年)의 애환을 풀어내는 국민적 경축을 마음껏 벌여봄직도하다. 경축의 목소리를 낮출 수밖에 없게만든 기상이변이 원망스럽다.
그렇지만 하늘을 원망하기에 앞서 수재가 없었더라도 건국 50주년을 마냥 축제 한마당으로즐길 수만 있었을까. 나라를 빼앗겼고 폐허의 절망속에 버려졌던 우리가 비록 분단된 국토를 회복지는 못했어도 세계10위권에 이르는 경제력을 가지게된 것은 무한히 자랑스러웠지만IMF관리체제하에 놓인 지금 아직 그 긍지를 간직하기엔 스스로 부끄럽다. 더욱 안타까운것은 경제주권을 상실한 현실에서 우리는 지금 가고있는 방향이 올바른지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없는 것이다. 그동안의 발전을 자축하기에 앞서 자책과 반성이 더 절실하지 않을까.외국언론들은 한국이 아직도 번영의 기적을 가져왔던 국민적 가치를 지니고 있기때문에 다시 일어설 것이란 낙관론을 펴기도 하지만 그같은 격려에 쉽게 귀가 솔깃해지지 않는다. 지난 연말 IMF와 약정했던 외환보유고보다 여유있게 달러를 보유하고있고 환율은 오히려 지나칠 정도의 하향안정세를 보이고있다. 금리도 기대치만큼 낮아졌고 금융과 공기업구조조정이 시작돼 해외투자가들에게 신인도를 높여주기도했다. 또 외채상환목적의 금모으기와 수재속에 나타난 의인들과 숱한 성금행렬은 국민단합의 건재를 과시했고 박세리 선수가 세계골프를 제패하는등 희망과 약진의 조짐들이 나타나고 있는 것도 분명하다. 그럼에도 외국언론의 낙관론에 마음이 가지않는 것은 우리의 앞길에 그같은 청신호보다 적신호가 기분 나쁘게도 빛이 더 강하게 비치기 때문이다.
그러한 적신호 가운데 가장 비관적인 것은 국가지도층의 도덕성 상실과 국가경영의 불투명한 비전을 들 수 있다.
나라가 온통 천재·인재(天災·人災)에 빠져 대책과 처방이 시급한데도 갖은 구실로 국회를열지않고 정쟁에만 열중하는 국회와 정치권, 대형경제비리만 불거졌다하면 어김없이 드러나는 정치인 연루, 경제위기속에서도 놀고먹는 여당의원에게 떡값을 나눠준 청와대, 경제를 망친 장본인들을 초청해서 베푼 청와대만찬등을 어떤 눈으로 보아야할까. 우리의 정치지도층은 대부분의 국민들이 가진 도덕적 잣대와 정서를 공유하고있지않는 것일까. 국민들은 이들이 이끌어가는 국정에 과연 신뢰를 가져도 좋을 것인지 회의를 갖지않을 수 없다. 그리고구조조정과 개혁이 국가와 국민의 당면과제라지만 국민 개개인이 그같은 목표에 맞는 삶의방향을 제대로 체득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구조조정에 반발하는 근로자들의 목소리에 국정책임자들의 설득력이 떨어지는 것도 그 때문이 아닐까.
또 수해의 참상이 빚어지고있는 날 골프장이 초만원을 이뤘다는 보도는 그렇다치고 '달러를빼돌릴 분을 찾습니다'는 스위스 뱅커들의 서울방문러시는 무엇을 뜻하는가. 정치·경제의지도층이 이래서야 날개없는 추락이 두렵지않을 수 없다.
건국 50주년. 말로만 제2건국을 외칠때가 아니다. 지도층부터 의식을 혁신하는 새로운 나라세우기가 있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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