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좋은 이웃

우리유치원 놀이터옆에는 조그만 동물사육장과 채소밭이 있다. 방과후엔 동네꼬마들이 이곳에 몰려와 신나게 논다. 가끔 병아리와 토끼를 풀어서 뛰어다니게 하는데 때로는 초등학생이나 인근 직업학교의 다 큰 아이들이 와서 꼬마들의 놀이터를 엉망으로 만들기도 한다. 할아버지.할머니들께서 손자손녀를 데리고 오셔서 집에서 버리는 음식찌꺼기를 오리먹이로 갖다주시기도 한다. 큰 애들이 야구공으로 유리창이라도 부수면 된통 혼을 내주시기도 하고채마밭의 잡초도 뽑아주시며 이웃들에게 농사짓는 방법도 가르쳐 주신다.

올여름은 유난히 비가 많이 와서 고구마도 넝쿨이 울타리바깥을 넘어가고 들깨는 어른키보다 웃자라서 무성하다. 그래서 동네분들께 따가시도록 했다. 알알이 영글어가는 양대콩을 바라보니 작년 이맘때 일이 떠오른다. 동네아주머니 한분이 유치원밭에서 양대콩잎을 따다가혼이 나셨던 모양이다. 아이들이 고사리 손으로 심어놓은걸 왜 따느냐고 야단맞으셨단 얘기를 듣고 민망스럽게 여겼던 기억이 난다.

낯선 아주머니 한분이 유치원에 찾아오셨다. 유치원을 다니다 사정이 있어 그만둔 어떤 아이의 한달치 학비를 갖고 오셨다. 그 아이네 딱한 사정과 옆집 아주머니의 이웃사랑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나는 그분의 솜털처럼 폭신한 이웃사랑을 생각하니 채마밭에 내리쬐는 가을햇살이 더욱 따사롭게 느껴진다.

누가 아파트문화를 삭막하다고만 하는가. 아무리 높이 올라가는 시멘트벽이라도 우리네 이웃사촌들은 사랑으로, 사랑으로 다 허물어 내리게 하는것을. 전명희〈예나유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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