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와 전망
김대중 대통령이 남북경제협력에 내건 정경분리원칙에 대해 북한 김정일 당 총비서겸 국방위원회위원장이 과연 '김정일식 정경분리'로 화답한 것일까.
30일 북한 최고지도자 김정일 총비서가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을 만난 배경에 북한 특유의 속셈과 고민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 많다.
김총비서는 지난 9월 5일 제10기 최고인민회의 1차회의로 '조문통치'를 마감, 국가체제의 정상 가동에 들어감으로써 명실상부하게 북한 최고지도자가 됐다. 그는 대남관계에서 남한 당국을 철저히 배제하는 가운데 변화된 남한 대북정책의 틈새를오히려 파고들어 명분과 실리를 동시에 누리겠다는 포석을 두고 있다.
북한 출신의 성공한 남한 기업인 정 명예회장으로 대표되는 현대그룹이 추진하는 금강산관광사업을 매개로 통일이라는 명분을 살리겠다는 것이다. 동시에 관광수입과 종합개발사업을 통해 달러를 확보함으로써 화급한 경제난을 극복하자는 의도를읽을 수 있다.
외부인사와 공개 접견을 꺼리는 김총비서가 '민간급에서 진행되는 금강산관광사업과 여러 분야의경제협력사업이 잘 되도록' 이례적으로 정 명예회장을 만나준 데는 그만한 까닭이 있다는 풀이다.
이번 만남으로 현대측은 김총비서로부터 상당한 선물을 약속받았을 것으로 관측된다.여기에는 지난 6월 정 명예회장 1차방북 이후 잠수함 사건 등 우여곡절 끝에 금강산관광 유람선사업 추진에 종지부를 찍는 한편 9억달러 규모의 금강산종합개발사업권을 따내는 성과가 포함돼있다. 또 북한 최고지도자의 '보증'을 통해 금강산관광관련 사업의 지속성을 담보함은 물론 서해안공단 조성 및 자동차조립공장 건설 등 각종 대북경협사업의 본격 추진도 들어 있을 것이다.그 선물 보따리는 고김일성주석이 김우중 대우그룹회장에게 허용한 남포공단보다 훨씬 더 큰 규모라는 게 전문가들의 일치된 예상이다. 그래야만 국내의 다른 대기업에 자극제가 될 수 있다는설명이다.
그러나 김총비서와 정 명예회장의 만남은 일종의 대외과시용 성격을 갖고 있다. 김정일시대의 새이미지를 구축하려는 북측과 국내 대기업 가운데 대북경협사업으로 IMF상황 속에서 확고한 우위를 점하려는 현대측의 계산이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물론 남북간 교류에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게다가 일방적이지만 정기적인 직접왕래를 최초로실현시킨 것은 남북경협을 한 단계 끌어올린 선례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측에서 주장하는 민간급 남북경협에 대한 의지를 액면 그대로 받아 들이기에는 아직 이르다. 또 남북관계의 현실을 앞서가는 현대측의 대북사업 추진 속도는 일부 보수층의 반대 여론을 자아낼 가능성이 아주 높다.
한 대북경제전문가는 "김정일체제가 현대를 통해 시험 케이스로 남북관계 개선의 필요성을 타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진정한 정경분리원칙과 시장원리 실현을 좀더 지켜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통일부 황하수 교류협력국장은 "공고한 바탕 위에서 금강산관광사업을 추진하는 의미는 있으나남북관계 전반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확대해석하기는 다소 성급하다"고 밝혔다.그러나 결과적으로 김정일-정주영 양인의 만남이 남북관계의 해빙에 중대한 계기가 될 것이라는기대가 적지 않다. 미국의 대북 포용정책에 대한 미의회 보수파들의 반대 분위기가 드세지고 있는 상황에서 남북한 당국의 동상이몽이 과연 어떤 그림으로 나타날지는 더 지켜봐야 알것 같다.◆두사람 무슨 얘기 나눴을까
정주영(鄭周永) 현대 명예회장과 북한 최고지도자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간의 역사적인 만남이이뤄짐으로써 두 사람 사이에 어떤 얘기가 오갔을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현재로서는 구체적인 대화 내용이 확인되지 않고 있으나 현대와 북한이 추진중인 경제협력사업에대한 상호간의 의지 확인과 총괄적인 협력 다짐이 주를 이루었을것이라는 게 현대 및 대북관계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관측이다.
현대와 북한간의 경제협력사업은 이미 금강산관광개발과 서해안공단조성 등 5대사업으로 큰 줄기가 잡혀 있는데다 구체적인 사항들은 실무선에서 충분한 협의가 이뤄졌기 때문이다.실제로 두 사람의 만남은 그 자체로서 상징적인 의미를 가질 뿐 두사람이 직접협의하거나 해소해야 할 이견이 많아 추진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특히 김위원장이 대외인사와 접촉을 꺼리고 정명예회장 역시 귀가 잘 안들려 옆에서 누가 도와주지 않으면 대화가 어려운 만큼 많은 얘기가 오가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관측이다.이에 따라 두 사람이 나눈 얘기의 핵심은 '양측이 경협을 성공시켜 통일에 이바지하자'는 내용이됐을 가능성이 많다. 즉, 북-현대의 경협사업에 대해 포괄적으로'잘해보자'는 얘기가 오갔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한편 이 과정에서 정명예회장을 통해 정부의 메시지가 김위원장에게 전달됐을것인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정부 관계자들은 물론 한국인들이 김위원장을 직접 만날 수 있는 기회가 거의없는데다 그동안 관계당국이 남측 인사의 방북시 북한 최고위층에 대한 메시지 전달을 시도해온 전례를 감안할 때정명예회장이 이번에도 그같은 역할을 했을 가능성이없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 1차 방북 이후인 지난 8월 정명예회장이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을 직접 만난 적이있는 만큼정명예회장이 김대통령의 메시지를 직접 전달했을 가능성도 없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만약 정명예회장이 김대통령의 메시지를 전달했을 경우 그 내용은 남북 최고 당국자간 회담과 관련된 것일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 지배적인 시각이다. 그렇지 않더라도 김대통령이 표방해온 정경분리원칙, 이른바 '포용정책' 등의 '진의'가 전달됐을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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