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랑 나누는 실직자들

제 살길 찾기도 힘든 세상. 유난히 찬 올 겨울바람 속에 관심의 발걸음이 끊어지다시피한 사회복지시설과 불우이웃에 따스한 손길을 내민 이들은 다름아닌 실직자들이었다. 실직보다 더 큰 고통이 바로 소외라는 것을 이들은 알기 때문이다.

대구시 북구 산격동 천광보육원 원생 57명이 올겨울 처음 맞은 손님은 실직자훈련기관인 보성요리학원(원장 이한용.45) 수강생들이었다. 지난 5일 정성스레 장만한 음식과 밑반찬을 들고 보육원을 찾은 실직자들은 오랜만에 원생들과 나눔의 기쁨을 누렸다. 불고기 1백20인분과 갖가지 요리를 만들어 아이들을 먹이고 김장 재료도 다듬어 주었다. 재료비는 학원측이 부담했다. 수강생들은그간 배워온 요리솜씨를 한껏 자랑했다.

수강생 주부 권오순씨(43.대구시 달서구 용산동)는 "남편없이 혼자 살림을 꾸려가느라 지금껏 주위를 보살필 여유도 없이 살아왔다"며 "오히려 실직이란 어려움에 처해보니 소외받은 이들의 고통이 어떠했으리란 것을 조금이나마 알게됐다"고 말했다.

이달 들어 불우이웃을 도우려는 실직자들의 발길이 부쩍 늘었다. 제일요리학원 수강생들은 지난9일 화성양로원과 14일 산격복지관을 찾아 외로운 이웃들에게 요리를 대접했고 오는 16일엔 대구신망애원을 방문할 예정이다. 영남직업전문학교 수강생 80여명은 오는 23일 두산경로당을 찾아전기 등 건물시설도 점검하고 이미용 기술을 배운 실직자들은 노인들에게 퍼머와 커트도 해 줄계획이다.

특히 오는 17일에는 경북산업직업전문학교를 비롯한 대구지역 15개 실직자훈련기관의 수강생 1백60여명이 남산종합사회복지관을 찾아간다. 독거노인과 장애인 가정을 찾아 도배도 해주고 지체장애 가정에는 휠체어도 무상으로 제공할 계획이다. 대부분 12평 임대아파트에 사는 이들은 부부가장애인이거나 칠순 노모와 1급 장애인 아들이 사는 가정, 부모가 없이 아이들끼리 사는 가정들이다.

경북산업직업전문학교 곽승호 교장은 "제 앞가림도 못하는 사람들이 무슨 봉사냐며 비웃는 이들도 있다"며 "하지만 실직자들에게는 현장실습을 하는 좋은 기회가 될 뿐 아니라 어려움 속에도남을 도울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는 계기가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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