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정아와 할머니

6세짜리 정아는 고아아닌 고아이다. 부모가 다툰후 가출해버린 탓에 차가운 방에서 폐렴으로 불덩이가 된채 사시나무 떨듯 앓고 있는 아이를 옆집 할머니가 무료진료소로 데려왔다.할머니의 기도와 의료진의 치료로 며칠후 정아는 미소를 되찾았다. 그런데 이젠 그 마음씨 착하신 옆집 할머니가 병환이 나셨다. 며느리가 있는터라 의료보호 대상도 안되는 할머니는 노구에혼자 사글세방에서 살고계신다.

지병인 고혈압과 당뇨합병증에다 위장병까지 겹쳐 식사를 할 수도, 혼자서는 걸을 수도 없게된할머니를 이번에는 꼬마 정아가 모셔왔다.

"할머니, 죽지마. 정아가 나중에 할머니 호강시켜줄게"하며 고사리손으로 할머니에게 꼬박꼬박 약을 먹게 하는 등 간호를 했다.

지난주엔 안색이 꽤 좋아지신 할머니께서 박카스 한병을 들고 오시더니 느닷없이 내 손가락이 예쁘다고 하셨다. 군살이 박힌 손가락이 예쁠 턱이 없건만 자신의 병을 치료해주는 손이 고맙다는표현이신것 같았다.

이젠 정아가 불쌍해서라도 살아야겠다고 눈물지으시던 할머니. 돈도, 집도, 젊음도 없고 병든 몸에다 아들이 있어도 없는거나 마찬가지이신 할머니는 이웃의 어린 소녀 정아때문에 살아야할 이유를 되찾으신 것이다.

모두가 '내것'만 부둥켜 안은채 개인주의로 치달아가는 요즘, 우리 모두가 더불어 살아가는 마음을 가질 수는 없을까? 내가 너의 의미가 되고 나의 가진 것이 너의 기댈 등이 될 수 있다면 이세상은 좀 더 아름답고 삶은 한층 풍요로워질 것 같다.

박 언 휘

〈경산대 내과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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