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아름다운 세상 아름다운 사람-그 이후의 이야기들

누가 우리네 굶주림은 빵이 아니라 사랑이라고 했던가.

사랑이 없는 삶은 미풍에도 불안하게 흔들거리고, 때로 돌풍이라도 휘몰아치면 온통 평화를 잃은채 아비규환으로 전락한다.

그러나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인생의 본질을 잃지않는 선한 이웃이 있어 세상은 중심을 잡아나간다. 97년 11월5일부터 매주 우리에게 따스함을 전해주었던 연재물 '아름다운 세상, 아름다운 사람'에 등장한 주인공들과 그 이후의 아름다운 얘기를 모아본다.

〈편집자 주〉

■칠성시장 트리오

일도 억척, 자원봉사도 억척인 칠성시장 트리오(장군상회 박덕주, 충남상회 조덕자, 제일상회 주명옥.사진)를 모르면 원시인~.

시장판의 거친 삶에 찌들지 않고, 하루를 25시로 쪼개살며 시간만 나면 독거노인과 시설원을 찾아 봉사행을 실천하는 칠성시장 트리오는 "봉사하지 않으면 무슨 재미로"를 흥얼거릴 정도로 봉사를 사랑하는 아줌마 부대들이다.

기사가 나가고 이들의 숨은 선행을 알게된 시장사람들은 뒤늦게 "아하" 소리내며 무릎을 쳤고, 세남편들은 아내에게 굳어진 손으로 새삼 사랑의 편지를 띄웠다.

"여보, 집에서나 시장에서 고생많고, 봉사하느라 애먹는다"고 멋적은 한마디만 달랑 적은 남편 박흥순씨(55세)의 편지를 받은 주명옥씨나 "내 마누라가 자랑스럽다"고 외치는 남편들(장성기 45세·송영식씨 47세)이 있어 황홀한 중년을 수놓는 박덕주씨, 조덕자씨의 환한 표정에는 "이보다 더행복한 사람 있으면 나와보라고 해~"라고 쓰여있는듯하다. 이들은 내년부터 장애인 수용시설 가운데 특히 돌보는 이 없이 버려진 시설을 찾을 계획이다.

■음악회·연극…성탄절 함께 보내

경북 영천여성회관 자원봉사대 희망원팀(팀장 이지유)은 무늬만 '봉사'인 단체들과 달리 봉사는사랑이며, 사랑은 곧 평화라는 진리를 작은 실천으로 보여주는 봉사단체이다.

초등학생이나 유아가 딸린 30대 전후 영천지역 어머니들로 구성된 희망원팀은 한달에 한번 시설원(희망원)을 찾는 행보를 6년째 거듭, 세상을 향해 닫혀진 시설원생들의 마음의 빗장을 풀어주고있다.

사랑으로 오신 아기예수를 기리는 성탄절에는 원생들과 봉사자 자녀들이 함께 어울려 작은 음악회를 열었고, 그전에는 아름나라합창단을 초청하여 아동들이 직접 지은 시에다가 재미난 곡을 붙인 노래를 맘껏 불렀다.

동화읽는 어른모임 영천회원들은 장갑 연극을 보여주었고, 지점토로 예쁜 동물을 만들때는 누가원생이고 누가 봉사자자녀인지 구분이 없다.

인간의 미래는 누구도 알 수 없는 것. 불우한 환경으로 지금은 힘들지만 무한한 가능성을 품고있는 원생들과 고운 관계를 뜨개질하고 있는 희망원팀들 뒤로 희망의 나무가 쑥쑥 자라고 있다.

■자격증 취득·대학원 졸업 "바쁜 한해"

소아마비 장애자 부부인 곽효섭(대구시 수성구 지산1단지 지산보석) 권순기씨(효가대 보육교사과정 강사)를 보면 신체적 장애보다 마음의 장애가 진짜 장애임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어릴때 소아마비를 앓은 이들 부부가 꿈을 잃지않고 성실하게 살아온 길을 되돌아보면 사지가 멀쩡한데도 빈둥거리는 수많은 비장애인들의 '낭비 인생'과 묘한 대조를 이룬다.밤취재를 하노라고 곽씨의 가게에 앉았노라니 계산기나 시계를 고치러 온 사람, 보석을 감정하는사람, 새로 세팅하는 사람이 줄을 잇는다.

"곽선생님이 못고치는 것은 무엇입니까"라고 물으니 서슴없이 아내가 "다리요"라고 대답, 한바탕웃음을 터트리게 만드는 곽씨 부부는 IMF여서 한가로울때 또다른 준비를 하며 바쁘게 살아왔다.그동안 곽씨는 국가공인보석감정사, 미국보석감정평가사 자격증을 땄고, 특수교육학을 전공한 아내는 효가대 대학원을 졸업하고 대학강단에 섰다.

장애자 어린이집을 운영할 이들은 백수(白壽·99세)를 앞둔 큰어머니와 팔순을 앞둔 어머니 두분을 모시고 사는 효자부부로 주변의 칭찬이 자자하다.

■40대 노총각 결혼 새 삶 꾸려

지금은 폐교된 중앙초등학교 네거리에 위치한 공평약국과 그 앞의 꽃파는 신군 아니 신씨 아저씨. 하루에 말 두마디도 채 않으면서 온동네의 궂은일은 도맡아하는 신군이 지난 3월 장가가던날공평동 일대 로드백화점(노점상)은 일제히 철시를 하고, 정장을 하고 예식장으로 모여들었다.하루 벌어서 하루 사는 로드백화점의 일요일은 황금어장. 그런데도 그 중요한 삶의 터전을 잠시접어둔채 곰같은 40대 노총각의 결혼식에 얼굴을 내밀었던 공평동 노점상들은 신씨가 착한 아내와 재미나게 사는 모습이 살갑고, 꽃꽂이에 쓸 부목을 구할 산을 찾고 있다는 소식이 반갑다.IMF여서 모두들 힘들지만 억척 삶속에 흐르는 훈훈한 인정마저는 결코 다운사이징하지 하지 않는 보석같은 삶을 꾸리고 있다.

■14년간 5만여개 복주머니 전해

"한땀한땀 복을 담은 복주머니를 드립니다"

경북 청도에 사는 박해선할머니(74세)는 14년간 국내외로 무려 5만여개의 복주머니를 전한 사랑의 전령사이다.

기계로 박는들 그렇게 정교할까마는 밤을 지새 목단과 수복강령 등 문자를 수놓는 박할머니의 복주머니에는 자식을 키우고 남편을 내조하며 곧게 한평생을 살아온 한 노인의 기원과 바람이 녹아있다.

편찮은 허리를 감싸면서도 아들의 사업이 풀리지않는다는 어머니, 결혼못한 노처녀, 입시에 떠는수험생들이 원하면 복주머니를 기꺼이 보내주었던 박할머니는 수바늘은 조각나고 이빨빠진 마음들을 곱게 깁는 마력을 지니고 있다.

■새회원 가입 노숙자 급식나서

시골집 돌담 언저리에 꿋꿋히 피어나는 고운 꽃, 민들레같은 사람들이 있다.

장미처럼 화려하지도, 백합처럼 고고하지도 않지만 소박한 봉사로 우리 이웃들을 위로하는 민들레회 회원들.

지난 5월 보도가 나간 이후 4명의 회원이 새롭게 가입해 모임의 활력을 더했다. 11월부터는 지산종합사회복지관의 협조를 얻어 수성못에서 노숙자와 결식 노인들을 대상으로 이동급식을 시작했다.

하지만 재정적인 어려움 때문에 새로운 사업을 시도하기에는 역부족.

"거창한 봉사를 생각한 것은 아니니까 주변에서 우리들의 도시락 배달을 원하는 사람들이 사라질때까지 그저 꾸준히 할 뿐이죠"

양혜주 총무의 설명처럼 회원들은 오랫동안 이웃들의 마음을 녹여줄 수 있는 따뜻한 활동을 꿈꾸며 오늘도 불우한 이웃들의 집 대문을 두드린다.

■주위도움 마당딸린 집으로 이사

'감나무골 나섬(나눔과 섬김)의 집'을 운영하며 대현동지역 불우 어린이들을 돌보는 대학생들의모임인 '이삼회' 회원들은 요즘 봉사활동이 더욱 즐겁다.

아이들이 뛰어놀 공간이 부족해 좀 더 넓은 공부방을 마련하는 것이 이들의 숙원. 보도가 나간뒤 얼마되지 않아 주위 분들의 도움으로 1천5백만원을 마련해 지난 11월20일 이사를 했기 때문이다.

새로 옮긴 곳은 조그만 마당이 딸린 대지 30여평의 단독주택.

넉넉한 이들의 눈에는 작은 집이겠지만 이삼회 회원들과 이들을 '이모, 삼촌'으로 부르며 따르는어린이들에게는 한없이 큰 공간이다.

"방이 네 개나 있어요. 회원들이 아이들을 가르치고 쉴 공간조차 부족했던 옛날 공부방과 비교가안되죠"

오세영회장의 자랑. '넒은 공간 마련'이라는 오랜 목표를 이룬만큼 내년부터는 더욱 봉사에 힘을쏟을 계획이다.

■프린터 도입 점역작업 해결

들의 입에서는 벌써부터 '일복이 터졌다'는 즐거운 비명이 새나오고 있다.

올해 1억2천만원짜리 점자 프린터기를 들여놔 이제까지 시설부족으로 다른 지역 봉사기관에 의뢰했던 점역작업을 자체 해결하게 됐기 때문이다.

목표는 내년부터 한달에 10권 정도의 책을 점자로 번역하는 것.

녹음실도 하나 더 만들어 점자를 모르는 시각장애인들이 좀더 다양한 정보를 접할 수 있도록 할예정이다.

일이 늘어난만큼 더많은 자원봉사자들이 필요한 것은 당연지사. 목청좋고 컴퓨터 워드프로세서에능한 이들의 참여를 언제나 환영하고 있다.

〈崔美和·金嘉榮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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