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지막한 싸리문을 열고 너른 마당을 가로질러 들어선 서예가 박혁수(44·영천시 대창면 용전리)씨네 집. 집주인이 아랫목으로 오라며 손짓한다.
아랫목. 중앙집중식 난방에 익숙해져 오랫동안 듣지 못했던 반가운 단어였다.
"친구·이웃들과 함께 지은 집입니다. 나무를 구해와 직접 기둥을 세우고 마당의 황토를 파 벽을발랐습니다. 꼬박 1년이 걸렸죠"
엉거주춤 앉은 아랫목이 울퉁불퉁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더 정겹다.
달과 별을 벗삼아, 국화꽃·복사꽃을 이웃 삼아 신선처럼 사는 박씨네 가족들.하지만 6년전만 해도 이들 역시 매연을 향수삼아 살던 도시인들이었다.
"어느날 문득, 이렇게 살아야할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모든 것을 훌훌 털고 이곳에와 '채약서당(採藥書堂)'을 열었습니다. 대구와 용전에서 서예를 가르치고 복숭아 농사도 짓습니다"
자연과 더불어 살기위해 이곳을 찾은 이들. 때문에 집짓는 법도, 자녀교육도 자연을 닮았다. 서너개의 과외와 성적에 얽매어 사는 도시 아이들과 달리 현종(중2년), 세등(초등 4년) 남매는 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산다.
"어른, 아이 할 것없이 감각이 좋아졌습니다. 계절이 바뀌고 달이 뜨는 현상. 도시에도 분명 있던일인데 더 선명하게 느껴져요. 둥근 달이 산등성이에 걸려있는 모습은 혼자 보기가 아까울 지경입니다"
돈문제, 자녀교육 문제에 대해서 의외로 담담하다.
"없으면 없는대로 살아야죠. 어떤 분들은 '여유가 생기면 이곳으로 이사오겠다'하시는데 그래선평생 이런 즐거움을 못누립니다. 교육문제요? 큰 도시에 가야 자녀가 잘된다면 대도시 학생들은모두 훌륭한 사람이 되겠네요? 어른 욕심에 애를 잡는 거지요. 어른공경하고 아랫사람을 사랑할줄 아는게 중요합니다. 바른 생각이 우선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생활의 불편문제에 이르러서는 박씨도 말문이 막힌다. 시골생활이 주부에게 여간 불편한것이 아닌데다 손님들이 끊이지 않기 때문이다. '집사람의 이해가 없다면 이곳에 이사오지 못했을 것'이라는 말로 미안한 마음을 대신한다.
"아궁이에 장작을 때서 난방을 하는데 맨처음엔 연기가 너무 매워 부엌에서 뛰쳐나온 적도 있었어요. 하지만 감기를 달고 살던 애들이 감기 한번 안걸리고 건강하니까 좋다싶어요"부인 김정희씨(41)가 남편의 말에 이렇게 화답한다.
"내 가족에 너무 집착하다보면 가족이기주의로 빠지기 쉽죠. 가족뿐 아니라 이웃이 가족처럼 더불어 살 수 있어야 사회가 바로 서는 것 아닙니까. 우리 가족이 그 중심에 서고 싶습니다"도연명처럼 국화 꽃잎에 맺힌 이슬을 따 글을 쓰려고 지난해 울타리 주변에 국화를 빼곡이 심었다는 박혁수씨가 말하는 남다른 가족관이다.
〈金嘉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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