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선과 공간-한국건축의 미학

종묘(宗廟)는 조선왕조의 역대 왕과 왕비, 사후에 추존된 왕과 왕비의 신주(神主)를 모신 사당으로 유교사회인 조선시대 왕실의 제례를 지내는 가장 중요한 공간이었다.

극도로 절제된 건축미가 돋보이는 종묘는 조선시대 건축가운데 가장 정제되고 장엄한 건축물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이런 소중한 가치때문에 지난 9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WHC) 총회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전세계 550여점의 문화재와 함께 보존관리되고 있다.

오늘날에도 매년 한차례 종묘제례가 거행되는 이 곳은 서울시 종로구 훈정동 시끄러운 도심 한가운데 위치해 있으면서도 시간의 흐름이 멎은듯 유현한 분위기가 감도는 초월의 공간으로 객들을 맞고 있다.

태묘, 대묘로도 불리는 종묘는 '주례(周禮)'의 '장인(匠人)조'에 "임금이 궁궐을 중심으로 남쪽으로 향했을때 왼쪽에 종묘, 오른쪽에 사직을 둔다(左廟右社)"는 원칙에 따라 지어졌다. 창경궁의 정전인 '명정전'처럼 동쪽을 향한 예외도 있지만 예로부터 임금이 남쪽을 향해 정치를 하는 것은 모두 정(正)을 근본으로 했기 때문이다.

태조 3년(1394) 10월 한양으로 천도후 가장 먼저 건축된 종묘는 천도 10개월만인 1395년 9월에 준공됐다. 이때 종묘에는 태조의 4대 조상이자 왕으로 추존된 목(穆)·익(翼)·도(度)·환(桓)왕의 신위가 봉안됐다.

세종때 별묘인 영녕전(永寧殿)이 완공된후 명종, 선조, 현종, 헌종 재위시 몇차례 증축을 거쳐 독특하고 고유한 격식을 갖게된 종묘는 기본적으로 한국건축의 일반적 특성인 '비대칭적 대칭'배치를 따르고 있다.

각 영역내의 건물은 전체적으로 볼때 대칭에 바탕을 둔 배치를 하고 있으나 개별적으로는 대칭을 벗어난 배치를 하고 있다. 이는 제례용 건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구조다.

일정한 축에 따라 건물이 배치된 통일된 구성이 아니라 자연지세에 어울리게 건물들을 적절하게 배치한 구성으로 각 영역을 이루는 건물별로 개별적인 축을 따라 지어졌다.

종묘의 중심건물로 가로로 긴 건물인 정전(正殿·국보 제227호)은 우리 전통건축물중 단일건물로 가장 규모가 큰 건축물이다. 창건당시 정전은 현재와 달리 정면 7칸 규모였다.

신위가 늘어남에 따라 증축을 거듭했는데 헌종재위시 3차 증축때 정전, 영녕전 모두 확장공사를 거쳐 정전은 모두 19칸, 영녕전은 정실 4칸과 동서협실 각 6칸 규모로 지어져 현재의 규모가 됐다.

정전은 사람키보다 훨씬 높은 네모난 담으로 둘러쳐져 있다. 정전의 주문인 신문을 들어서면 눈높이에 동서 109m, 남북 69m의 월대가 넓게 펼쳐진다.

상월대 북쪽의 기단위에 서 있는 정전 건물은 신위를 모신 감실 열아홉칸과 좌우에 이어진 협실 각 두칸, 협실 양끝에서 남으로 직각으로 꺾여 나온 동·서월랑 다섯칸으로 구성돼 있다.

정전과 별묘인 영녕전은 묘당(廟堂)건축의 특징에 따라 전면에 툇간(退間·집채밖에 딴 기둥을 세워 붙여지은 간살)을 만들고 나머지 세 면은 벽체로 감싸 내부공간을 어둡게 함으로써 신성한 영역임을 강조하고 있다.

정전내부는 벽체 칸막이로 나누지 않고 전체가 하나의 공간으로 되어있으며 감실만 칸으로 나눠 신주를 모셨다.

당은 같으나 실은 달리하는 동당이실(同堂異室)구조다. 서쪽을 상으로(以西爲上) 제1실인 서쪽 첫칸에 태조의 신위를 모시고 차례로 역대 왕과 왕비 마흔아홉 신위를 열아홉 감실에 모셨다.

종묘건축은 의례공간의 위계질서를 반영해 기단과 처마, 지붕의 높이를 위계에 따라 각기 달리했다. 신실과 좌우 협실, 동·서월랑의 순으로 점차 낮아지는 건축구조로 이들이 만들어내는 공간과 조형의 미는 종묘건축의 의도를 완벽하게 구현하고 있다.

또 단청까지 삼갈 만큼 단순하고 절제된 건축구성은 종묘를 자체 완결적이고 기품있는 건축물로 완성해내고 있다. 신로, 월대, 기단, 담등 꼭 있어야할 것만 두고 필요한 공간만 담은 구성과 구조, 장식, 색채의 간결함은 종묘건축을 상징적 차원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이같은 건축기법에 대해 성균관대 이상해교수(건축공학과)는 "건축구성이 복잡하고 화려한 장식을 한 중국의 태묘와 달리 종묘는 장식이 배제된 건축구조와 과감히 생략된 조형과, 단순한 구성등 건축의도가 철저하게 지켜진 건축물"이라고 평가했다.

종묘는 뛰어난 건축물뿐아니라 종묘제례악과 일무(佾舞)의 산실이기도하다. 장중하고 도도한 기상을 담아 제례 절차에 권위와 격조를 더하고 있는 '종묘제례악'과 단순하면서도 우아한 동작으로 조선왕조 500년의 빛나는 이상과 높은 예술정신을 표현한 일무가 매년 이곳에서 펼쳐지고 있다.

600년이라는 시간의 흐름마저 초월한듯 보이는 종묘. 죽음과 삶이 한데 어우러지는 공간으로 현대인의 삶에 독특한 정서로 다가서는 우리의 문화유산이다.

〈글·徐琮澈기자 사진·李京勳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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