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13일 대구에서 김대중대통령이 박정희대통령 기념관 건립을 제의했다고 한다. 듣는 순간 어딘가 이상하게 느껴졌다. 기념관이 옳으냐의 여부를 떠나 김대통령이 대통령이 안되었더라도 그런 제의를 했을까? 만일 아니라고 한다면 기념관 건립의 추진은 잘못된 것이다. 진심일 수 없기 때문이다. 동서화합을 위한다는 것인데 박정희-김대중 때문에 동서가 얼마나 손해를 보았는데도 또 두 사람의 이름에 동서를 팔아야 하는가? 듣기만 해도 불쾌하다. 그리고 민주화운동을 하던 경상도사람에 대한 심각한 모욕이다. 경상도가 박정희신앙에 묶여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그것은 착각이다. 촌로들도 군사정권이 정상이 아니라는 것 쯤은 알고 있는데 기념관을 세운다고 하니 얼떨떨하다는 어느 친구의 말이 솔직한 심정일 것이다.
혹은 남아공화국 만델라의 화해정책 같은 것으로 생각할 수 있으나 다르다. 그것은 인종차별문제이다. 그리고 남아공의 화해위원회는 '진실과 화해위원회'로 화해와 진실을 동시에 추구했다. 그런데 김대통령은 진실을 위장하는 기념관을 세우려 한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화해하는 것은 훌륭한 것이고, 국민으로부터 박수도 받을 수 있다. 그렇다고 개인의 화해가 진실을 위장할 수는 없다. 또 기념관은 화해가 아니라 진실의 산물임을 알아야 한다. 진실의 산물이라면 기념관 안에 진실을 담아야 하고 진실을 담는다면 언젠가는 함석헌·장준하 등의 이야기와 유신독재와 정보부 지하실 풍경이 들어설 것을 예상해야 한다. 국비를 지원한 공공기념관이라면 그것을 막아도 안되고 막을 수도 없다. 그렇다면 화해가 아니라 분란의 기념관이 되고 만다. 결국 박대통령에게도 욕이 되고 만다.
일각에서는 이승만기념관도 거론한다고 들었다. 어느 대통령의 것이라도 공공기념관으로 건립하는 것은 거론할 시기가 아니다. 김대중기념관의 사전포석이라는 말도 있는데 물론 안된다. 통일 후가 아니면 사후 50년은 돼야 판단의 객관성을 확보할 수 있다. 그전에 필요하다면 정부지원 없이 추종자들의 사설 기념관으로 세워라. 50년정도 지나서 공공화 여부를 논의해야 한다. 혹은 그와는 별도로 청와대 안에 '대통령 전시관'은 설치할 수 있다. 전시관이나 기록관이 아니고 기념관을 세우기 시작하면 기념관 경쟁이 꼴불견을 연출하게 된다. 옛날의 생사당(生祠堂)이나 선정비(善政碑)처럼 말이다. 얼마나 추잡할 것인가? 역대 대통령들의 면면을 보라. 이유야 어떻든 퇴임할 때는 하나같이 비참했다. 물러나 앉아서는 서로 욕하기에 바쁘다. 한심하고 불쌍한 사람들이다. 거기에 기념관 경쟁까지 덮쳐 놓으면 어떻게 될 것인가?
박대통령 기념관은 더욱 안된다. 민주화운동 기념관은 거론도 않은채 누가 그런 군국주의 술사 방식의 착상을 했는지 알 수가 없다. 그의 산업화 공적은 인정한다. 인간적 동정에는 필자도 공감한다. 그러나 그는 일본군 장교로 독립군의 무대였던 중국 전선에 출동해 있었다. 광복군에 투신했다는 말이 있는데 그렇지 않다. 일본군이 패하자 광복군의 북경 잠편지대(지대장 이재현)에 기탁했던 것이 와전됐다. 해방후 국군에서도 남로당과의 관계에 이어 그후의 변절 등 이상한 구석이 많다. 그런 행적을 어떻게 추모하고 어떻게 기념하자는 것인가?
대통령 재임기간만 기념하자고 할는지 모른다. 기념관이란 그렇게 꾸밀 수가 없다. 가능하다고 해도 총든 쿠데타 정권으로 출발하여 측근자의 총에 맞아 끝을 맺었으니 서론과 결론을 만들 수가 없지 않은가. 넓은 눈으로 보아라.
(국민대 명예교수.한국사)
댓글 많은 뉴스
이준석, 전장연 성당 시위에 "사회적 약자 프레임 악용한 집단 이기주의"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5·18묘지 참배 가로막힌 한덕수 "저도 호남 사람…서로 사랑해야" 호소
민주당 "李 유죄 판단 대법관 10명 탄핵하자"…국힘 "이성 잃었다"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