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것은 산(山)뿐. 길도 없고 이웃도 없다. 새의 지저귐속에 날이 새고 물소리와 함께 하루가 저문다.
오지에 사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생계를 위해 찾아든 것이 아니다. 생을 즐기기 위해 번잡한 속세(?)를 떠나온 사람들이다. 농촌인구가 줄어든다지만 몇년새 이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 현실을 본다.
봉화군 소천면 고선리. 북쪽으로 태백산과 인접한 산골마을이다. 전원을 벗삼아 살아가는 사람들이 골골마다 있다. 예전 강(姜)씨들이 살아 붙여졌다는 강시골. 도로에서 벗어나 털털거리는 산길로 10여분 달리다 보면 숲속에 번듯한 양옥 한채가 눈에 들어온다.
호리호리한 몸매에 단아한 인상의 조모(48)씨. 평화로운 분위기를 깨는 불청객(취재진)을 반갑게 맞아줬다. 2년전만 해도 평범한 직장인이었다는 그는 40년 가까운 서울생활을 접고 지난해 말 팔순의 부모와 함께 이곳에 정착했다.
"새벽 바람을 맞으며 산책을 하고, 쏟아지는 하늘의 별을 보면서 매순간 행복을 느낍니다. 별천지라는 것이 따로 있나요" 서울생활을 정리할 때는 힘들었지만, 이곳에서 하루 몇시간씩 명상을 하고 배추, 감자 등을 가꾸면서 삶의 의미를 느낀다는 조씨.
"한달에 30만원이면 충분하게 살아갑니다. 직접 가꾸는 채소를 밥상에 올리고 쌀값, 차량유지비, 보일러 기름값만 있으면 돼요. 부족함을 못 느끼면 부자가 아니겠어요" 그에게서 도인(道人)의 풍모가 느껴졌다.
그의 이웃들은 농사를 짓는 사람도 있지만, 대개 정신수양을 하는 사람들이다. 서울에 가족을 두고 혼자 내려온 처사(處士), 구도에 정진하는 스님들… 오지마을의 주민들이다.
인근의 또다른 마을. 구마동 쪽으로 길을 잡아 6km의 산길을 달려야 한다. 좌우로 높은 산이 우뚝 서있고 산기슭에 배추·담배밭이 여기저기 널려 있다. 알프스산맥을 연상시킬 정도로 분위기가 이국적이다. 선(禪)을 하며 주민들에게 태극권을 가르친다는 이모(38)씨 가족도 이곳에 있다. 소문을 듣고 찾아간 취재진과 만나기를 거부했다. 세속의 번거로움이 싫어서일까. 정신수양을 하는 사람들이 이 마을에도 꽤 있다고 들었지만 만날 수 없었다.
소천면 남회룡리. 면소재지에서 12km 넘게 산길을 내달렸다. 길 양쪽엔 키 큰 나무들이 빽빽하게 서있어 대낮인데도 무척 어두웠다. 혼자 산길을 걷다보면 간담이 서늘해질 정도로 으스스한 기운이 감돌았다.
개내골에서 50대 여성을 만났다. 하루 3차례씩 성황당에서 기도를 하며 살아간다고 했다. "착하게 살면 복을 받을 것"이라는 충고를 몇차례 듣고 나니 이상한 기분에 휩싸였다. 슬며시 불쾌한 감정이 들기도 하고….
남쪽으로 일월산이 버티고 있는 해발 700m의 봉화군 재산면 갈산리 우련전(雨蓮田)이란 산골마을.
선한 인상에 턱수염이 인상적인 통나무집 기술자(로그빌더) 변충기(34)씨는 지난해 4월 평소 꿈꿔온 정착지를 찾아냈다. 2천평의 땅을 구입해 전망좋은 곳에 자신의 통나무집을 짓기 시작했다. 변씨는 몇달후 김천에 계신 부모님을 모셔오고 아내, 세아이와 함께 2층 통나무집에서 살아갈 희망에 부풀어 있다. "이곳에서 감자나 가꿔 먹으며 전원생활을 즐길 생각입니다"
주민들은 대구, 서울 등 도회지 사람들이 땅을 사기 위해 이곳에 가끔 찾아온다고 했다. 별장을 짓거나 자연을 벗삼아 살아가려는 사람들이란다. 그러나 땅만 돌아볼 뿐 실제로 매매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한다. 생활터전을 오지마을로 옮기는 것은 모진 결심이 필요하기 때문이 아닐까.
물론 오지마을에는 은둔생활을 즐기려는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니다. 생활을 위해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 재미있게도 산속에 넓은 농토를 가진 농민들이 꽤 많았다. 소천면 남회룡리 마당모기 마을의 권진석(51)씨는 1만3천평, 같은 마을의 송재모(50)씨는 1만5천평, 소천면 고선리 관기마을의 안상환(44)씨는 2만평. 언뜻 대지주같지만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한다. 안상환씨는 '억대 거지'라는 표현으로 농촌의 현실을 강변했다. 고랭지에 배추, 약초 등을 심고 거두어도 생활비만 빠듯하게 빠질 정도라고 했다.
예전 자그마한 땅을 갖고 있던 농민들은 대부분 오지마을을 등졌고, 외지에서 들어오거나 넓은 땅을 소유한 사람들만이 남아있다. 마당모기 마을에는 예전 20여세대가 있었지만 지금은 4가구만 있다. 그것도 여름철 농사철에만 거주할 뿐이고 겨울엔 권진석씨 혼자 마을을 지킨다(?)고 한다. 권씨는 "사람구경하기 힘들고 자식농사를 잘 지으려고 모두 영주나 안동 등에서 이중살림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농민이 떠난 오지마을을 하나 둘씩 메워가는 사람들. 그들은 진정 행복하고 즐거워 보였다. 순간 순간이 소중하고 새롭고, 삶의 재미가 솔솔 난다고도 했다. 각박하고 고달픈 현실을 참고 견디며 살아가야 하는지, 훌훌 털어버리고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지… 과연 어느 것이 스스로에게 의미있는 인생인가.
글:朴炳宣기자·사진:李埰根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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