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을 타고 내리는 빗방울은 지난 시간을 돌아보게 한다. 비가 주는 시간에 젖어 지난날을 돌아보는 여유. 비록 내가 도시에 살지만 비를 좋아하는 특별한 이유이기도 하다.
어딜 적에는 농사 때문에 그렇게도 비를 기다리곤 했었다. 그 때의 절실함은 아니지만 때때로 이 도시에서도 비에 대한 그리움은 간절해진다. 아마 새로울 것 없고, 돌아볼 곳 없는 도시일지라도 비에 젖은 모습이 산을 닮아서인가 보다.
산에 올라가 뒤돌아보면 지나온 그 길은 그렇게 굽어져 이어있다. 발자국 소리가 낙엽과 섞여 들려오고, 물은 물대로, 길은 길대로, 바위는 바위대로 모두가 생긴대로 온전하다. 나뭇가지는 바람이 불기에 흔들리다 바람이 멎으면 저도 멎는다. 그 속의 산사(山寺)는 그 모든 것을 거슬리지 않은 채 포용하고 있어서 넉넉하다.비가 오는 도시도 그렇다. 비가 와도 발자국이 패지 않는 아스팔트나 시멘트 포장길에서, 돌아볼 이유없는 길이지만, 비가 오면 물이 튈까 땅도 바라보고, 언제쯤 그칠까 하늘도 바라본다. 그러면서 앞만을 향해 살아온 우리에게 앞이 아닌 다른 곳을 바라볼 여유를 준다.
지나온 발자국마다 빗물이 고이는 모습, 빨간 우산이 없어 찢어진 우산이라도 소중했던 날들. 폴짝폴짝 뛰며 지나온 발자국을 돌아보던 시기는 아마 자신의 뒤를 돌아볼 여유가 있던 때였을 것이다. 그때 처마의 빗방울이 만들어내는 동그란 웅덩이를 보면서 작은 것이 가진 힘과 인내를 배웠으리라. 그런데 지금, 우리는 흔적을 남기지 않는 도시의 길에서 산다고 삶조차 흔적없는 것처럼 책임을 느끼지 못하고 겸손을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
돌아볼 것도 돌아볼 시간도 없는 지금의 우리. 그래서 요즘의 아이들을 리셋(reset)세대라고 부르는지도 모른다. 스위치만 누르면 다시 원상태로 돌아갈 듯한 환상을 가지는 세대, 그래서 타인을 배려하지 않았다는 죄책감보다는 다시 하면 되지 라며 이익이 되는 것에만 매달리는 이기적 적극성.
오늘 내리는 이 비와 더불어 낯선 우리를 서로 가깝게 만들어 줄, 그래서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고, 서로의 우산이 되어 가려주고 받쳐주는 여유와 배려의 비도 함께 왔으면 좋겠다. 그 비를 기다리며, 벗어놓은 신발을 보며 자신을 살피라는 조고각하(照顧脚下)를 되새기고자 경전을 편다.
〈보현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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