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4년 LA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딴 방대두(45.현 레슬링 그레코로만형 국가대표 감독)는 금메달리스트가 아닌 선수로는 이례적으로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당시 국가대표 맏형(32살)으로 주장을 맡은데다 어느 선수보다 땀을 많이 흘린 그의 성실함 덕분이었다.
방대두는 누구보다도 아쉬움이 많은 선수생활을 했다. LA올림픽을 끝으로 은퇴할 때까지 그는 주요 대회에서 매번 주저앉아 '만년 3위'라는 꼬리표를 달았다.
레슬링은 시작부터 늦었다. 고향(경산시 남산면) 인근 자인중에서 씨름선수로 인정받아 대구 영신고로 진학했으나 키 160㎝, 몸무게 50㎏에 불과한 왜소한 체격 때문에 모래판에서는 적응할 수가 없었다.
이때 전해섭씨(76년 몬트리올올림픽 레슬링 동메달리스트)의 추천으로 서울 한영고로 전학, 씨름에서 키운 상체 힘을 바탕으로 레슬링의 유망주로 급성장했다. 입문 3년만인 74년 테헤란 아시안게임에서 동메달을 획득, 주위를 놀라게 했다. 국제 레슬링 무대에서 향토선수가 메달을 딴 것 또한 대사건이었다.
이후 77년 불가리아 유니버시아드 4위, 80년 루마니아 유시버시아드 3위, 82년 폴란드세계선수권 3위 등으로 그의 존재를 알렸다.
방대두는 그러나 28살로 전성기였던 80년, 모스크바 올림픽 출전 좌절이라는 아픔을 맛봤다. 또 83년 스웨덴 메라컵과 터키 야사도구컵에서 잇따라 우승하며 노장 투혼을 불태웠으나 메라컵에서 당한 팔꿈치 부상 때문에 모두가 믿었던 84년 올림픽 금메달을 다시 놓쳤다.
그렇지만 특유의 성실함으로 좌절과 부상, 나이를 극복해 온 방대두는 선수생활 내내 한국레슬링의 대들보로 활약했다. 그는 지금 세계가 주목하는 명감독의 대열에 올라 있다. 방감독은 지난달 그리스 그레코로만형 99세계선수권대회에서 금 2, 은 1개를 수확, 지도자로서도 능력을 인정받았다. 방감독은 이 대회 금메달리스트 김인섭(경북체고 졸)과 손상필, 은메달리스트 하태연(달서고 졸)이 내년 시드니올림픽에서 우승, 자신이 못 이룬 꿈을 이뤄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방감독은 올해 한국체육기자연맹이 선정하는 체육대상 지도자상을 수상했다.
金敎盛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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