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의 수도중 하나였던 중국 지안(集安). 고구려 700여년의 역사중 400여년 정도는 지안이 주무대였다. 곳곳에 고구려 유적들이 널려 있다. 3~4세기 고구려 무덤의 집합소인 환도산성에는 1천400여개의 크고 작은 고분들이 있다.
지안시 여행국 우용(41)국장은 "시 전체에 고구려 고분이 1만2천여개로 추정된다"며 "이중 임금이나 장군들의 것으로 추정되는 큰 무덤만 37개"라고 말했다.
중국 정부는 1961년 고구려 고분을 대대적으로 정비했는데 이미 도굴이 끝난 상황이어서 소장품은 거의 없었다고 한다.
청룡·백호·주작·현무가 그려져 있는 고구려 벽화로 잘 알려진 오호문 오호묘에도 발견 당시 유물은 모두 도굴된 상태. 천장 부근에는 박혀 있던 4개의 야광주도 없어졌다. 오호문 오호묘 맞은 편에 있는 오호문 사호묘는 지난 93년 한차례 개방됐다가 이후 중국 정부가 개방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고분이 훼손된다는 것이 주요한 이유였다.
고분 내부를 촬영하려 했으나 안내를 맡았던 중국 관리는 거절했다. 만약 촬영을 하면 갖고 있던 필름까지 압수하겠다고 했다. 뇌물만 주면 안되는 것이 없다고 알려진 중국. 그러나 그들이 반드시 지켜야 할 원칙은 철저했다.
장수왕의 무덤으로 추정되며 고구려 고분중 가장 잘 알려진 장군총. 길이 5.5m, 폭1m짜리 돌 1천100개를 정교하게 쌓아 오랜 세월에도 원형을 거의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빗장을 열고 들어가 보니 보존 상태가 엉망이었다. 겉으로는 문제가 없는 듯 보였으나 능 내부는 50t에 달하는 천장석이 부패되고 있었다. 위에서 빗물이 새고 있었으며 내부에는 습기가 가득했다. 곳곳에 곰팡이가 슬고 썩는 냄새가 진동했다.
장군총은 한면에 3개씩 총 12개의 대형 지주석이 있었으나 뒷부분에 있는 대형 지주석은 발견 당시부터 없었다. 안내인은 "이 때문에 장군총 뒷부분이 조금씩 허물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훼손이 가장 심한 곳은 광개토대왕능으로 추정되는 고분. 아직 국내 학자들 사이에는 장군총과 이곳을 두고 의견이 분분한 상태이지만 중국은 분명히 광개토대왕능으로 확신하는 곳.
중국인들이 광개토대왕능이라고 믿는 근거는 1960년대에 이곳에서 '원태왕능안여산고여악(愿太王陵安如山固如岳)'이라고 적힌 기왓장이 발견됐기 때문. 산과 같이 안전하고 견고한 광개토대왕의 무덤을 만든다는 뜻이 담겨 있다.
중국인들은 이곳을 '호태왕능'이라 부르고 있다. 위치는 집안시에서 압록강쪽으로 20분 거리. 광개토대왕비와 자동차로 2~3분 거리에 있다.
능의 규모로 미뤄볼 때 최소한 왕릉인 점은 확실한 것 같다. 이런 왕릉이 관리가 전혀 안돼 계속 허물어지고 있다. 이곳은 초등학교(호태왕능초등학교) 안에 위치해 있어 아이들의 놀이터로도 쓰일 정도다.
장군총과 마찬가지로 이곳도 능 내부에 있는 유물은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다. 왕릉이란 것을 사전에 간파한 사람들이 유물을 도굴해 간 것으로 보인다. 천장은 부패해 썩어가고 있었고 곳곳에 물이 스며 들었다. 잘 보존되는 신라왕능들과 비교가 되지 않았다.
더 큰 문제는 왕릉 주위에 박혀 있는 대형 고압전주였다. 3개의 전주가 고분에 박혀 있었다. 취재팀과 함께 이곳을 찾은 한국불교 태고종 구룡사 주지 성범스님과 영탑사 주지 도선스님은 "오른쪽 날개 부위와 왼쪽 어깨 위에 전주가 박혀 있는 형국"이라며 "풍수지리학적 측면에서라도 전주 제거가 시급하다"고 설명했다.
18세에 등극, 왕성한 정복활동으로 거대한 요동벌을 차지하는 한편 신라의 요청으로 한반도 남쪽을 침범한 왜구를 물리치는 등 우리 역사에 가장 위대한 왕 중의 한분으로 추앙받는 광개토대왕. 장사(長史), 사마(司馬), 참군(參軍) 등의 중앙관직을 신설하고 불교를 장려하는 등 내치에도 성공한 왕. 이런 분의 무덤일 가능성이 높은 고분이 어떻게 이런 정도로 방치될 수 있는가.
이 뿐만 아니다. 결이 고운 잔디는 어디에도 없이 고분 전체에 잡초만 무성하다. 능 바로 옆에는 공장들이 있어 폐수가 이곳으로 흘러든다. 여름철이면 고인 폐수 주변으로 모기와 해충들이 들끓어 아예 드나들지를 못할 정도다.
역시 취재팀과 동행한 자민련 정책위 윤상웅 부의장(대구 동구을 지구당 위원장)은 "후손들로서 부끄럽기 짝이 없다"며 "조속한 복원을 추진해 보겠다"고 말했다.현재 민간 차원에서 전주 이설 및 복원 작업이 추진되고 있기는 하다. 대구의 테마관광여행사 권혁종(41)사장이 추진하고 있는 이 사업은 중국 당국과 상당한 의견 접근을 본 상태.
지난해 중국을 여행하다가 이 사실을 알게 된 권사장은 길림성 및 집안시 고위관리들과 온갖 정성을 들인 끝에 친분을 맺고 전주 이설을 추진중이다. 권사장을 신뢰한 중국측은 최대한 지원을 약속하기도 했다.
전주 이설과 고분 복원을 위해 현재까지 투입된 자금은 7천만원정도. 앞으로 1천700여만원의 돈이 더 들어야 가능하다. 집안시 당국에서 버스를 사달라고 요구하고 있기 때문.
그러나 이것도 돼봐야 안다. 중국측은 지난해 12월말 전주를 이설하기로 권사장과 합의했으나 추위 등을 이유로 오는 3월로 연기를 해버렸다.
한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전주 이설 뿐만 아니라 잔디를 이식하고 주변을 정리하는데 2억원 이상의 자금이 필요하다. 경주대 고구려 고분벽화 전문가인 정병모교수는 "새 천년 민족 도약을 위한 광개토대왕릉 정비에 각계의 성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중국 지안에서 崔正岩·金泰亨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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