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놓고 보면 세월처럼 빠른 물건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선인들도 물처럼 흘러간 세월이라 해서 세월여류(歲月如流)라고 읊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요즘엔 지나고 나니 빨랐다는 다분히 영탄조의 읊조림차원이 아니라 흐르는 세월이 눈앞에 바로 보이는 시절을 살고있는 느낌이다. 어느 직장의 하급직원들 의식조사를 보면 가장 일할맛이 떨어지는 상사의 말로 '시키는대로 하지 왜 그리 말이 많아'로 나왔다. 명색도 거창하게 '창의성을 가로막는 말'로 후배들에 의해 지적된 것. 어느 직장 할 것 없이 40대후반에서 50대초반의 중.고급간부라면 이 말에서 적잖은 상실감에 젖어들었을 게 뻔하다. 갓 입사해서부터는 그야말로 장님 3년, 벙어리 3년, 귀머거리 3년, 도합 9년의 모진 시집살이를 살고 초급간부를 거쳐 이제 목소리를 제대로 가다듬어 보려고 하니 후배들의 의식은 완전히 달라져 제대로 된 시어머니 노릇한번 변변히 못해보고 새 세월, 새 의식을 따라가기에 허덕거리는 것이 자신들의 자화상일듯. 두번째로 그들이 듣기 싫어하는 말은 '규정에 있는대로 해'다. 새로운 시도와 창조적 발상을 인정하기 어려운 것이 기성의 질서이고 사고패턴 이겠지만 아무튼 기존관념을 깡그리 부정하는것 같아 입맛이 씁쓸한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다음은 '다른 부서는 어떻게 했나 알아봐', 그 다음은 '그런다고 월급 더주냐, 승진을 시켜주냐'등이다. 말인즉 크게 틀린것 같지는 않다. 신진들의 눈에는 상사들이 대체로 눈치보기에 능하다거나 무사안일에 젖어 있다거나 해서 이미 존경받는 선배들이 아님은 대체로 분명해진 것 같다. 선배들은 왜 이런 대접(?)을 받아야하는지 따져보고 싶지만 그것도 '소경이 그르냐 개천이 그르냐'식에 다름아니다. 하지만 선배들이 정말 발분도강(發憤圖强)해야 할 대목은 '책임질 일은 피하는 게 상책이야',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가지'로 모아진다.
선배들이 직장생활중 알게 모르게 후배들에게 요령이랍시고 이런 소리를 했다면 가슴을 쥐어뜯고 반성할 일이다.
최창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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